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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핑리뷰] 시청자가 미안해지는 넷플릭스 영화
[클리핑리뷰] 시청자가 미안해지는 넷플릭스 영화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9.01.08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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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인터랙티브 콘텐츠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게 나오는 초속 무한의 시대. 책, 영화, 제품, 팝업스토어 등 그냥 지나쳐버리기엔 아까운 것들을 핵심 내용 중심으로 클리핑합니다.

넷플릭스 '블랙 미러:밴더스내치' 한 장면. 주인공 스테판에게 시리얼을 고르라는 아빠. 사진=조성미 기자
넷플릭스 '블랙 미러:밴더스내치' 한 장면. 주인공 스테판에게 시리얼을 고르라는 아빠. 사진=조성미 기자

[더피알=이윤주 기자] 영화 속 주인공이 내가 선택한 음식을 먹고 노래를 듣는다면? 넷플릭스에서는 가능하다.

지난해 말 넷플릭스가 공개한 오리지널 콘텐츠 ‘블랙미러:밴더스내치’를 (시청이 아니라) 경험해 봤다. 안타깝지만 청소년은 관람 불가. 여러 스토리 전개 중 하나의 스포일러가 포함됐으니 싫으신 독자 분들은 뒤로가기를..  

이 인터랙티브 필름은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집니다. 시청하는 동안 여러분이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오면 화면 아래쪽에 표시됩니다. 선택하려면 한쪽을 탭하세요. 태블릿이나 전화기를 계속 들고 계세요. 이해했나요?

<네><아니요>

시작부터 보통 영화와는 달랐다. 위와 같은 안내 문구가 뜨면서 시청자 역할을 설명한다. 

블랙미러는 미디어나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를 에피소드로 만든 영화다. ‘밴더스내치’편은 1984년도가 배경이다. 팩맨(pacman)을 뛰어넘을 게임을 개발하려는 주인공 스테판이 등장한다.

스테판이 아침부터 뒤적거리는 책 이름은 ‘밴더스내치’. 주인공의 말을 빌리자면 모험을 선택하는 책으로, 내가 캐릭터 행동을 결정해 마치 게임과도 같다.

스테판은 이를 토대로 게임을 제작하려 한다.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암시하는 듯하다. 주인공의 아빠는 “흥미롭네. 시리얼도 한번 골라보지그래?”라며 두 개의 시리얼을 내민다. 그리고 화면 하단에 첫 번째 선택지가 등장한다.

<슈가 퍼프>   or   <프로스티>

이후로도 주인공이 들을 음악 테이프, 일할 장소, 컴퓨터를 어떻게 망가뜨릴지, 누군가를 따라갈지 말지 등 스무 개 이상의 선택지가 등장한다. 물론 선택지에 따라 영화의 러닝타임은 달라진다. 목표는 크리스마스 전까지 스테판이 게임을 완성되게 하는 것. 예상치 못한 걸림돌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한 장면.
넷플릭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한 장면.

이 중에는 선택지가 하나인 것도 있고, 어떤 걸 택하든 결과가 같아지는 장면도 있다. 선택의 순간이 되면 으레 등장하는 BGM의 압박도 상당히 크다.

‘만약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면?’이란 호기심 충족은 원천봉쇄다. ‘10초 되돌리기’를 누르지 않도록 버튼이 비활성화돼 있다. 고민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일시 정지 버튼조차 없다.

현실처럼 영화 속 시간도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고 말하면서 선택의 궁지에 몰아넣는 듯하다. 영화가 끝나는 시간을 알 수 없으니 타임라인바도 당연히 없다.

어느 타이밍에 선택지가 나타날지 모르니 화면에서 눈과 손을 뗄 수 없다. 넷플릭스 영상을 틀어놓은 채 곧잘 딴짓하던 평소보다 집중도가 높아졌다. 스토리가 마음에 들던 안 들던 때가 되면 반드시 선택을 해야 했고, 다음 주인공의 행동을 기다렸다.

다만 한 가지 서글픈 점을 꼽으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거절하고 싶은 욕구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아닌 남이 나를 조정하는 것 같아요”라며 혼란스러워할 때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스토리에 참여해 주인공에게 넷플릭스에 대해 설명해주는 기회가 오지만, ‘스트리밍’이라는 단어는 그를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결국 기자의 밴더스내치는 대혼란으로 결말을 맞이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테판 미안해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나도 내가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못 고르고 있는데 내가 니 인생을 책임지고 있어”

“나: 자, 다시 바로잡아보자!     
(잠시 뒤)
나: 아빠를 절단해!”

많은 이들이 새로운 엔딩을 보기 위해 영상을 처음부터 재생한다. 심지어 경험으로 알게 된 스토리를 맵으로 제작해 공유하고 착한 엔딩(?)을 찾도록 돕는 사람들도 있다. 

이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법한데 경험자들의 커뮤니티까지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기자도 주변에 밴더스내치를 전파했고, 결말에 대해 함께 절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러셀 매클레인 밴더스내치 프로듀서는 제작 후기 영상을 통해 “(밴더스내치는) 영화 제작이기도 하고 소프트웨어 개발과도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회상했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며 그에 맞는 스토리, 대본, 촬영 등이 이뤄졌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는 프린세스메이커 게임과 한 편의 잔혹한 영화의 조합과도 같다.

넷플릭스 프로덕트 혁신 부사장인 토드 옐린은 “넷플릭스에서 가장 신나는 일은 인터넷 TV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정의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방식을 개척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의 무게가 크다. 우리가 양방향(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고민하기 시작한 이유”라고 밝혔다. 

국내 방송사들이 통신사와 연합해서 넷플릭스에 대항할만한 ‘무언가’를 모색 중이라고 한다.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넷플릭스의 보폭이 콘텐츠를 중심으로 종횡무진하는 것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국형 넷플릭스 구호나 새로울 것 없는 방송 포맷에서 벗어나 진짜 혁신적인 맵을 제시해줄 사람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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