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포토라인이 뭐길래
도대체 포토라인이 뭐길래
  • 양재규 (eselltree92@hotmail.com)
  • 승인 2019.01.18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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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 존폐 논란 재점화, 취재진-취재원 ‘자율적 취재제한선’ 의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포토라인 패싱(passing)으로 법조계 안팎에서 포토라인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주장과 무죄추정 원칙에 반한 제도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현직 검사장 및 부장판사들까지 나서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를 망신주는 수단에 불과하다며 포토라인 폐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는 이런 논의가 없다가 법조인이 비판받자 제 식구 감싸기에 들어간 것이라며 불편해하는 시각이 대립하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포토라인이 뭐길래 새삼 갑론을박이 불거지는 걸까요? 양재규 변호사가 쓴 지난 칼럼에서 포토라인의 진짜 의미를 복기해 볼 수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양재규] ‘포토라인에 선 ○○○’ ‘△△△ 또 포토라인에’… 요즘 흔히 접하는 기사 제목들이다. 이른바 공인이라 일컬어지는 인사와 그 가족들이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는 일이 잦아지면서 매번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포토라인’이다. 포토라인 자체가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정착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쯤 되면 ‘포토라인에 서다’를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에 출석했음’을 뜻하는 새로운 관용어로 여길 수도 있을 법하다.

포토라인이 도입된 것은 대략 1995년부터다. 돌발 사고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93년 1월,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국민당 대표)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청에 출석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느 기자의 카메라에 긁혀 이마가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던 것.

그 달 16일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검찰청 현관 입구에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취재진 50여명이 정 회장을 한꺼번에 에워싸는 바람에 회장 측 인사들과 취재진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북새통 속에서 부상을 입게 됐다. 다수의 취재진이 과열된 취재 경쟁을 벌인 결과였다.

포토라인이 국내에 도입된 건 1990년대 중반으로, 1993년 1월 15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당시 국민당 대표)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출석 중 카메라에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한겨레 기사(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포토라인이 국내에 도입된 건 1990년대 중반으로, 1993년 1월 15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국민당 대표)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출석 중 카메라에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한겨레 기사(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와 한국사진기자협회가 공동으로 포토라인 제정에 관한 논의에 착수했고 이듬해인 1994년 12월,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발표했다. 포토라인은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인한 폐단을 경험한 언론의 자성적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그 후 선포문 제정을 주도했던 두 개 협회에 한국인터넷기자협회까지 더해져 3개 언론단체가 보다 발전적 형태의 포토라인 준칙 제정에 합의, 2006년 8월 ‘포토라인 시행 준칙’이 만들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포토라인에 얽힌 배경을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포토라인의 본질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도입 경위와 준칙 내용을 고려할 때 포토라인은 일종의 ‘자율적 취재제한선’이다. 앞서 언급한 1993년도 정주영 회장 부상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을 막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자율적 가이드라인→유죄추정 낙인효과

포토라인의 핵심적 장치는 취재진과 취재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다. 이 거리가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취재원이 있는 위치에는 통상적으로 노란색 삼각형을 표시해두고 그 앞으로 통제선을 설치한다.

하지만 이 물리적 거리와 통제선은 생각만큼 견고하지 못하다는 함정이 있다. 협회 소속 회원사에 대해서는 그나마 준칙의 준수를 요구할 수 있고 위반 시 협회 차원의 제재 또한 가능하지만 소속 회원사 아닌 언론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범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포토라인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별다른 제재조차 할 수 없다.

한계가 있는 것은 취재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공인 신분의 피의자라고 해서 포토라인 위에서 반드시 멈춰서거나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포토라인은 과열 취재경쟁의 폐단을 줄이기 위한 자율적 가이드라인일 뿐이니 말이다.

아울러 현재의 포토라인 운영방식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언젠가 포토라인이 설치된 현장에 캠핑용 간이의자를 놓고 쪽잠을 자는 취재진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대형 사건의 경우 출두하기 며칠 전부터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한 취재 경쟁이 치열하기에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고생해서 자리를 사수하더라도 정작 포토라인에 선 사람의 입에서 의미 있는 말이 나오는 장면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송구하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 같은 판에 박힌 말뿐이다. 그 뻔한 몇 마디를 듣기 위한 선점 경쟁이라니 솔직히 허무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포토라인의 의미를 일종의 사회적 형벌로 간주하고 ‘모욕주기’ 내지는 ‘낙인찍기’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법적으로는 ‘무죄추정’이지만 현실에서는 ‘유죄추정’이기에 검찰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이 보도되는 순간, 사람들의 뇌리에 ‘저 사람이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라는 유죄의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는 것이다.

포토라인의 부정적 낙인효과는 특히 정치적 성격의 사건에서 두드러지는데, 언론플레이를 시도하려는 수사기관에 의해 활용될 소지도 있다. 이런 이유로 원칙적으로 유무죄 판단이 내려지기 전 포토라인에서의 촬영 행위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파격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이진국, 언론의 범죄보도와 형사법적 문제점,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총서(2002), 98쪽)

*이 칼럼은 2018년 8월 9일자에 게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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