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자본과 만나는 종이신문, 국내 상황은?
IT자본과 만나는 종이신문, 국내 상황은?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9.01.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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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안은 아마존, 미디어 환경 변화 맞물려 이종간 결합 잇따라...한국 주요 신문사 지분구조상 한계

[더피알=문용필 기자] 2013년 8월 초, 글로벌 미디어 업계가 주목할 만한 뉴스가 전 세계에 타전됐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워싱턴포스트(이하 WP)를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베조스는 2억5000만 달러의 인수가격으로 1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주요 일간지를 품에 안았다.

사실 WP의 매각은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모바일 등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전통미디어인 신문 산업의 몰락을 가속화시켰고 미국 신문업계를 호령하던 WP 역시 이 고고한 흐름 속에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에 아마존을 디지털 상거래 업계의 글로벌 절대 강자로 키워낸 베조스가 과연 WP를 재건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후에도 거대 IT자본의 올드미디어 인수 소식이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2015년 12월에는 중국 최대의 디지털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홍콩의 영자지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이하 SCMP)를 인수했다. SCMP는 지난 1903년에 설립돼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동아시아의 유력지다. 1993년 말레이시아의 화교 부호의 소유 하에 있다가 20여년 만에 새 주인을 맞았다.

차이충신(Joseph Tsai) 알리바바 부사장은 당시 SCMP와의 인터뷰에서 “신문 산업이 사양길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우리(알리바바)의 기술 전문성과 디지털 자산을 이용해 이전에는 본 적 없는 뉴스유통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고 밝혔다. 자사의 디지털 역량을 언론사업과 접목할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지난해 9월에는 글로벌 시사주간지 타임이 매각됐다. 1억9000만 달러로 타임을 소유하게 된 이는 실리콘밸리의 거부인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 부부였다. 베니오프가 1999년 설립한 세일즈포스는 실리콘밸리의 클라우드 컴퓨터 솔루션 기업. 현재 디지털 고객관계관리(CRM) 분야에서 선두 주자로 손꼽힌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하나의 ‘트렌드’로까지 바라보고 있다.

IT자본의 미디어 인수 행보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레거시 미디어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디지털 혁신’이 지상 과제임은 부인하지 못하지만 뉴욕타임스 등 몇몇 회사를 제외하면 딱히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디지털에 최적화된 IT자본이 유입된다면 판을 바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언론 산업은 수익을 크게 창출할 수 없는 구조가 돼 버렸다. 언론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언론 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수익을 떠나 지속적으로 자금을 댈 수 있는 소위 ‘전주’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윤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IT기업은 기존 언론사들이 약한 데이터 분석에 강점을 보인다. 게다가 IT기업은 이용자 기반이 자산인데 언론사는 그런 면에 취약하지 않느냐”며 “고객 친화력이 높아지면서 독자 지향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실제로 WP는 베조스를 새로운 오너로 맞이한 뒤 완벽하게 부활했다. 이와 관련, 지성욱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기고한 리포트를 통해 “WP는 저널리즘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테크놀로지와 엔지니어를 중시하여 철저한 디지털 상품을 만드는 회사로 변화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들을 설명했다.

우선, 다양한 신문사의 뉴스 콘텐츠를 WP 웹사이트에서 접할 수 있는 ‘모닝믹스(Morning Mix)’ 서비스를 통해 경쟁사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독자 참여형 블로그인 ‘포스트 에브리씽(Post Everything)’도 운영한다. 또 다양한 지역신문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저변을 확대시켰고 MSN과 플립보드, 페이스북 등 디지털 플랫폼과 제휴를 맺고 디지털 독자들을 늘려나갔다. 자체 개발한 콘텐츠 제작관리 시스템을 지역신문에 판매하는 등 디지털 기업으로 변모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뉴스룸 조직도 크게 달라졌다. 지 교수는 “50여명의 IT 전문가 및 기술 개발자가 뉴스룸에 영입돼 기자 및 편집 인력들과 함께 혁신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기술 인력은 최고의 대접을 받으면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구현하고 판매하는 단계까지, 기사 생산 및 유통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행보는 트래픽의 급상승이라는 달콤한 결과로 이어졌다. 심지어 인수된 지 2년 여 만에 뉴욕타임스의 온라인 트래픽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올드미디어가 IT기업 CEO를 새 주인으로 맞아 환골탈태한 셈이다.

다만, 베조스의 성공을 감안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누구보다 디지털 트렌드를 명민하게 관찰하고 해당 분야에서 얼마든지 ‘블루오션’을 창출할 역량이 있는 IT자본이 굳이 막대한 돈을 들여 사양산업에 눈을 돌릴 이유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사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베조스에 앞서 지난 2012년 시사주간지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을 인수했던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크리스 휴즈(Chris Hughes)는 참담한 실패를 맛본 바 있다. 그럼에도 IT자본이 꾸준히 언론에 유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 정윤혁 교수는 “IT기업에게는 무엇보다 콘텐츠가 중요한데 플랫폼은 강하지만 콘텐츠는 약한 측면이 있다. 언론만큼 강하고 좋은 콘텐츠가 어디 있느냐”며 “그걸 내부화해서 활용하는 것이 대단한 장점이 될 것”이라고 봤다.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도 베조스 사례를 언급하며 “언론사 자체는 비즈니스적으로 매력적이진 않다. 하지만 아마존 생태계에서 언론 콘텐츠는 부가적 콘텐츠로서 상당히 매력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국내 언론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더피알의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국내 IT기업의 레거시 미디어 인수 가능성을 낙관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만큼은 아니지만 글로벌 무대로 발을 넓히는 IT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는데도 이같은 시각들이 나타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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