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 충족-인터뷰이 배려 균형 잃어…사과도 쿨하지 못해
[더피알=문용필 기자] 19일 저녁 MBC 뉴스데스크의 오프닝. 왕종명 앵커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카메라 앞에 섰다. 배우 윤지오 씨에 대한 ‘인터뷰 논란’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왕 앵커는 인터뷰이였던 배우 윤 씨와 시청자를 향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윤 씨는 고(故)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인물. 전날 방송된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왕 앵커와 대담했다.
그런데 인터뷰 도중 왕 앵커는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 관련, 윤 씨가 검경에 진술한 인물들의 실명을 물었다. 윤 씨는 “(그분들이) 명예훼손으로 절 고소하면 피의자로서 배상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분들에겐 단 1원도 쓰고싶지 않다”며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
문제는 다음 대목이었다. 왕 앵커는 “생방송 뉴스에서 이름을 밝히는 것이 진실을 밝히는데 더 빠른 걸음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해봤느냐”고 재차 윤 씨를 설득했다.
그러자 윤 씨는 “제가 발설하면 (왕 앵커가) 책임질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 부분에 대해 경찰과 검찰에 일관되게 말씀드렸고 검경이 밝혀내야 하는 부분”이라며 “일반 시민으로서 증언자로서 제가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못 박았다.
방송이 나간 직후 왕 앵커를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인터뷰이를 배려하지 않고 너무 무리하게 주문한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해당 방송분을 모니터링 하면서 이를 ‘무례한 인터뷰’로 규정하기도 했다.
물론 왕 앵커 입장에서 생각하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언론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특종을 잡기 위한 기자적 본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장자연 사건은 10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민적 관심사다. 20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1.7%가 특검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힌 것은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많은 국민이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이 누구인지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왕 앵커는 알권리에 천착한 나머지 인터뷰이에 대한 배려를 간과했다. 윤 씨는 ‘목격자’로서 자신을 스스로 세상에 드러낸 인물이다. 모름지기 기자라면 취재원의 신변안전 보호에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도 리스트 실명까지 밝히라고 캐물은 건 분명 무리수였다. ‘알권리 충족’과 ‘취재원 보호’,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왕 앵커는 한쪽으로 치우치고 말았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답지 않은 행동이다.
논란 이후 왕 앵커의 사과도 아쉽다.
그는 “출연자에 대한 배려 없이 무례하고 부적절하게 질문했다는 시청자 비판이 많았다”며 “이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이 시간을 빌어 윤지오 씨와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시청자 비판이 있었기에 사과한다는 뉘앙스로 비쳐질 수 있는 지점이다. 차라리 군더더기 없이 “출연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고 부적절한 질문을 한 점을 사과드린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아무리 기자가 자존심을 먹고 사는 직업인이라지만 실수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겸손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 뉴스의 대표 앵커라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