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이 매번 불안한 이유
국민건강이 매번 불안한 이유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9.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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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안정성 논란, 주무부처 공식 발표조차 못믿어
국민건강 이슈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터진다. 혼란한 상황에서 매번 정부는 비슷한 대책과 사과를 반복하며 국민불신을 키우고 있다.  

[더피알=박형재 기자] 발암물질이나 이물질 등 국민건강 이슈가 한 달에 한번 꼴로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한다. 생활과 밀접한 식품·의약품 등의 안전성 논란이 잇따르지만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할 정부는 미숙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왜 관리되지 않는지 현황을 집중 점검했다.

①국민건강이 매번 불안한 이유
②국민건강 위한 컨트롤타워는?
③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과학적 커뮤니케이션 

먼저 아래 <표>를 살펴보자. 최근 1년새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주요 이슈들이다. 침대, 생리대, 온수매트 등 라돈 관련 이슈가 4건이고, 나머지는 식품 의약품 생활용품과 관련 있다. 대부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이고 방사능물질만 원자력안전위원회 담당이다.

최근 1년 발생한 국민 건강 이슈

사건명 날짜 사건요약 조치 주무부처
라돈 대진침대 18.05 대진침대에서 1급 발암물질 라돈성분이 기준치 이상 검출 리콜 명령 원자력안전위원회
고혈압약 발암물질 18.07 식약처에서 발암물질 성분 가능성이 있는 고혈압약 219개 제품에 대해 잠정 판매 중지 결정 판매 중지 식품의약품안전처
풀무원 초코케이크 식중독 18.09 부산·경남 지역 등에서 풀무원이 제조·공급한 급식 초코케이크를 먹은 학생 2000여명이 살모넬라균에 의한 식중독 감염  원인 조사 중  식품의약품안전처
세균 런천미트 18.10 대상 청정원이 제조·판매하는 런천미트 햄에서 대장균 검출 제품 회수 식품의약품안전처
라돈 생리대 18.10 오늘습관 생리대에서 라돈 성분 검출 제품 교환 식품의약품안전처
라돈 온수매트 18.11 하이젠 온수매트에서도 라돈 성분 검출 제품 회수 식품의약품안전처
일회용 면봉 18.11 일회용 면봉 33개 중 6개에서 세균 및 형광증백제 기준치 초과  자발적 회수 및 판매 중단 식품의약품안전처
타미플루 부작용 18.12 독감에 걸려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중학생이 환각증상을 보이다 아파트 12층에서 추락사  주의 요구 식품의약품안전처
남양유업 곰팡이주스 19.01 남양유업 어린이용 주스에서 곰팡이 발견 자발적 회수 및 판매 중단 식품의약품안전처
대장균 갈비군만두 19.01 CJ갈비군만두 일부 제품에서 대장균 기준치 초과 검출 일부제품 판매 중단 및 회수 식품의약품안전처
라돈 씰리침대  19.02 씰리침대에서 라돈성분 기준치 이상 검출 자발적 회수 원자력안전위원회
달걀껍데기 산란일자 표기 19.02 2월 23일 산란일자 표기 시행 앞두고 대한양계협회와 식약처 대립   식품의약품안전처
인공혈관 사태  19.03

영유아 심장병 수술에 없어서는 안 될 인공혈관 재고 품절 문제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슈화됨.
인공혈관을 독점 생산하는 미국 고어사가 2017년 정부와 가격협상에 실패한 뒤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벌어진 사건으로 식약처 책임론도 제기됨. 

공급 재개 식품의약품안전

국민 건강 이슈가 확산되는 패턴은 매번 비슷하다. 소비자 제보나 언론보도를 통해 문제가 제기되고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하며 주목도가 높아진다. 이후 논란이 커지면 정부 차원에서 점검에 들어가고 조사기간 동안 국민적 혼란이 계속된다.

주무부처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대책을 내놓지만 이는 크게 언급되지 않는다. “이미 제품을 썼는데 뒤늦게 회수하면 뭘 하느냐”라며 사후약방문식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발표를 불신하고 시민단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더 믿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사전점검보다 사후검열

복수의 전문가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의 뒷북 대응과 국민 불신이 반복되는 이유는 크게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식약처는 구조적으로 사전점검보다 사후규제에 특화된 조직이다. 사전점검으로 불량 제품들을 모두 잡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천~수만개에 이르는 제품을 전수조사할 수 없는 만큼 식약처는 기업의 대표 상품 위주로 샘플링을 통해 점검한다.

식품공전(제조 및 규격을 정리해 놓은 기준서) 등에 따라 기업이 생산·판매하고 문제가 불거지면 그제야 리콜 등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이 식약처의 주요 업무다. 그러나 국민들은 규제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관리를 기대하니 인식차가 생긴다.

관련 법령과 예산도 사전점검보다 사후관리에 몰려있다. 식품의약품 관련 법령을 보면 업체에서 생산한 불량제품을 적발했을 때 어떻게 제재할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공무원들은 법에 따라 움직이는데 예방 규정이 부족하니 당연히 법적 근거가 뚜렷한 사후규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자체 모니터링 조직이 있지만 인력과 예산 문제로 모든 제품을 일일이 들여다보기란 사실상 어렵다. 평소 사전검열, 위생점검 등으로 국민이 위해물질을 접하지 못하도록 살펴보고 있으나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라돈침대' 이슈가 불거진 당시 해당 제품을 회수해 가는 모습. 뉴시스

둘째, 국민 정서와 감정을 고려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부족하다. 정부는 과학적 검증에 따라 각종 유해성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만 국민의 심리적 저항에 부딪혀 비난 받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식약처는 2017년 ‘발암물질 생리대’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하루에 7.5개씩 한 달에 7일간 평생 사용하더라도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말했다. ‘살충제 계란 사태’ 때는 “평생 매일 2.6개씩 먹어도 무해하다”고 언급해 원성을 샀다.

과학적 근거에 의한 발표지만 시민환경단체 등은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 자체가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또한 만일 기준치가 1인데 0.8이 검출됐다면 그걸 안전하게 볼 수 있겠냐는 지적도 나왔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위험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유해물질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에 따른 분노(outrage), 나와의 연관성, 미래세대에 미칠 영향 같은 다양한 감정촉발 요인을 포함해 나타난다”며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지점을 파악하고 세밀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식약처는 과학적 증거만으로 커뮤니케이션하니 국민 생각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심리적 저항 외면한 기술적 설명

셋째, 정부 발표가 종종 부정확하고 관리 시스템이 미흡하다. 물론 위해성 조사도 사람이 하다보니 숫자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불안함을 느낀다.

지난해 7월 7일(토요일) 식약처는 발암물질인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혈압 약 219개의 판매와 수입을 잠정 중지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고혈압약 제품 중 91개 품목에 이상 없다며 판매 금지를 해제했다. 그 사이 식약처 홈페이지는 문제의 약 목록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접속 중단됐고,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하는 고혈압약 환자들은 주말 동안 문 닫은 병원과 약국에서 새 처방전을 받느라 불편을 겪었다. 이를 두고 식약처가 성급한 발표로 지나치게 불안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런천미트 세균 논란 역시 식약처의 미흡한 시스템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해 10월 식약처는 대상 청정원 런천미트에서 세균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당사자인 대상은 해당 제품을 비롯해 캔햄 전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고 리콜 조치에 나섰다. 하지만 문제의 세균이 대장균으로 확인됐고 식약처는 재조사 끝에 ‘부적합’ 판정을 ‘적합’으로 번복했다. 기업이 입은 피해는 수백억원으로 추산된다. 대상 측은 런천미트 검사 책임이 있는 충남도청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사실 고온 멸균 과정을 거치는 통조림에서 열에 약한 대장균이 검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식약처는 전국에 있는 모든 식품업체를 직접 관리할 수 없으니 지자체에 권한을 주고 공인된 시험검사소에서 불량식품이나 식품 이물질 등을 조사하고 있다. 충남 시험검사소에서 식약처 관할 정보포털인 식품안전나라에 ‘대장균’ 의견을 올려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 만일 중간에 식약처가 필터링하는 단계가 있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멸균캔에서 대장균이 나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이번 사태처럼 기업 입장에서 말도 안되는 결과가 나와도 재검사를 요청하는 시스템조차 마련돼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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