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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로 소비하고, 소셜로 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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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충렬 maynineday@naver.com
  • 승인 2019.04.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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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텔링1+1] 휘발성 높은 포맷 복제,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소셜라이징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결국 개인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소셜라이징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결국 개인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브랜드텔링 1+1이란.. 
같거나 다르거나, 깊거나 넓거나, 혹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하나의 브랜딩 화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과 해석. 

[더피알=원충렬] 얼마 전 어린 딸이 ‘인싸(insider·무리에 잘 섞여 노는 사람 내지 인기 많은 사람의 준말)’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나서 ‘만약 네가 나와 닮았다면 넌 아마 아싸(outsider·잘 어울리지 않고 겉도는 사람)일거야’라는 말을 덧붙이려다 말았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나는 아싸의 영역이 편하다. 사실 소셜네트워크에서도 그렇다.

솔직히 말해 소셜이 좀 피곤하다 

지금 네트워크 중심의 소셜라이징(socializing·사교)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은 이미 많다. 단지 양적인 과잉이나 변화의 속도 때문에 느껴지는 피로감만이 아니다. 소셜네트워킹이 약속한 것들에 대한 의문도 크다. 정말 우리 삶이 더 좋아졌는지에 대한 것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상당히 신선했다. 그때는 말하자면 대안의 시기였다. 정보의 일방향 공급이 아니라 재생산과 확산의 과정을 보는 것이 좋았다. 매체가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와 유튜버로 이양되는 현상도 좋았다. 이때는 정보나 관계에 대해, 분명 기존 경험을 극복하는 대안이어서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대안의 과도기가 아니다.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대안이 아닌 대체의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다. 당연함이란 기준으로 돌아보니 새삼스럽게 다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마치 나만을 위해 선별되는 것 같은 정보가 여전히 광고 시장 안에서 돌고 있다. 광고주들은 처음엔 당황했겠지만 지금은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매체를 발견했을 뿐이다.

소셜 미디어 바이럴로 대박을 낸 제품들이 속속 나온 이후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는 먹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신비의 약들과 일반인들의 제품 간증글들이 가득 채워졌다. 페이스북 서비스 장애로 먹통이 됐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광고하는 업체들이었다는 기사도 있다.

그동안 신선하게 보였던 콘텐츠들 사이에는 휘발성 높은 포맷 복제가 운동장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지기를 반복한다. 새롭게 느껴졌던 관계들 사이에 가득 들어차 있는 자기 과시와 감정 소모는 계정 비공개를 촉진하는 원동력이다.

결국 기술은 빨라지지만, 개인이 지닌 삶의 양태가 결코 그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오죽하면 Z세대 같은 세대 규정이 있겠는가. 기술만큼의 빠른 변화를 수용할 필요가 아예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한 세대만큼의 시간 간격이 필요하다는 반증인 걸까?

지금의 SNS들을 바라볼 때, 누군가에겐 기존에 쌓아온 소셜라이프 안에서 새로 취하게 되는 도구일 뿐이지만, 또 누군가는 그 자체가 이미 보이는 그대로 세상의 모습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지금의 Z세대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트위치나 인스타그램이 아닌 새로 탄생하는 SNS들이 만들어내는 다음 세대의 소셜라이프에 동화되지 못하는 순환이 반복될까? 변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텐데, 이렇게 세대나 그룹이 계속 찢겨나가는 방향으로 전개가 될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소셜의 숲 너머에 개인이 있다

소셜은 앞으로 개인을 더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게 방향이다. 각 개인에 대한 이해가 중심이 되면, 소셜네트워크는 세대로 구분되거나 그룹이 단절되지 않는다. 이건 개인화된 프로필과 검색 데이터를 중심으로 뉴스피드나 광고를 추천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셜네트워크는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네트워크 너머 개인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거나 그 안에서 정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우리는 탐색을 하고 있다. 저 너머의 대상을 아직은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고, 혹은 그 안에서의 내 자리 역시 아직은 제대로 마련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가 아무리 발달해왔다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정보의 가치나 선택의 기준을 가장 신뢰도 높게 제안해주는 건 ‘지인’이다. 대부분의 구매결정과 관련한 리서치에서 ‘지인의 추천’은 여전히 상위 랭크다. 이와 아주 유사한 ‘관계’의 권위를 아주 과거엔 유명인사가 대신했다. ‘자기 이름 걸고 하는 광고에서 거짓말을 하겠어?’ 실제로 광고모델은 그 제품을 써본 적도 없는데도 이런 막연한 신뢰감이 먹혔다.

요즘은 개인 인플루언서들이 그 역할을 나눴다. 공급자 진영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나에게 더 가까운 존재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친근감이라기보단 ‘지근감(至近感)’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그럼에도 신뢰도는 지인을 뛰어넘지 못한다.

지인은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겠지만, 조언이나 정보를 받는다는 맥락에서는 ‘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더 맞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에 그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정보라는 건 단지 정확도만으로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적절함과 선의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마침 너에게 필요한 정보, 그리고 다른 의도보다 너를 위해서라는 의도의 순수성 같은 것 말이다. 비록 그 결과로 나는 지갑을 한 번 더 열어야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까지의 소셜은 연결(혹은 초연결까지)에 집중됐던 측면이 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연결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세상을 목도해왔다. 앞으로는 그 연결의 구심점에 진짜 내가 위치할 수 있도록 발전해갈 것이다. 내가 이동하는 동선에 따라, 내가 소비해 온 취향을 이해하며,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중심점으로 소셜네트워크는 복잡한 그물선이 아니라 수많은 원을 그리며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렇다.

하지만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이 말했던 것처럼, 소셜네트워크란 세상에서 개인을 이해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는 점점 가속화돼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지금은 소셜 공유의 가치를, 구독경제의 편리함을, 초연결이 주는 새로운 산업들의 청사진을 개별적으로 말하고 있겠지만 결국 ‘개인’으로 집중되고 귀결될 것이다. 지금 만연하는 소셜이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개인에 다시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함께 봐야 더 좋은 브랜드텔링: 소셜로 소비하고 소셜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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