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광고법 시행 5개월, “시어머니가 한 명 더 늘었다”
정부광고법 시행 5개월, “시어머니가 한 명 더 늘었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9.04.1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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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광고비 10% 언론진흥재단에 선지급
행정적·비용적 부담 크게 늘어…‘재단 통행세’에 문제 제기
업계 일각에선 헌법소원 움직임도
정부광고법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광고비의 10%를 가져가는 것의 정당성을 따지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정부 서울청사 모습.
정부광고법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정부광고비의 10%를 가져가는 것의 정당성을 따지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정부 서울청사 모습.

“정책홍보 과정에서 눈치 봐야 할 ‘시어머니’가 한 명 더 늘었습니다. 근데 그 시어머니가 왜 예산의 10%를 떼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더피알=박형재 기자] 정부광고법(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 시행 5개월이 지나면서 업계 현장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광고 집행시 무조건 한국언론진흥재단을 거치도록 바뀌었는데, 그 과정에서 광고비 10%를 재단이 수수료로 가져가는 데 대한 문제 제기가 크다.

정부홍보 용역을 받는 업체 입장에서 보면 예산의 총액은 늘지 않는데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 셈이라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들의 경우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타격이 크다는 전언. 일각에선 헌법소원을 검토하는 등 집단행동 움직임마저 감지되고 있다.

정부광고법은 암암리에 이뤄져 온 언론사 지면 거래 관행을 근절하고 정부광고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명분하에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시행됐다. 정부기관이나 지자체가 언론사에 돈 주고 홍보기사를 내는 행위를 없애고, 언론사들이 기사형 광고를 낼 경우 반드시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을 표시하도록 못 박은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40여년 만에 법제화된 정부광고, 달라지는 점은?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 언론재단을 중간에 끼워 넣으면서 홍보 용역을 수행하는 업체들의 경우 행정적·비용적 부담이 크게 늘었다.

당장 홍보와 광고를 ‘인위적으로’ 구분 짓는 일부터 어렵다. A업체 대표는 “보통 정책홍보 용역을 하면 정해진 예산 안에서 콘텐츠나 캠페인을 기획하고 필요하면 광고도 집행하곤 했는데, 덩어리로 있던 것을 처음부터 광고와 홍보로 나눠야 하니까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언론재단의 대행수수료 징수 방식도 광고 후 정산에서 ‘선지급’으로 바뀌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전통매체 광고와 달리 디지털에 집행되는 광고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하곤 했는데, 처음부터 비용을 미리 예측해서 언론재단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니 홍보 활동의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B업체 대표는 “정책홍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까진 좋은데 전략과 아이디어란 게 처음부터 무 자르듯이 재단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광고비를 미리 산정해서 10%를 (언론재단에) 먼저 지급하고 나면, 나중에 변화를 주고 싶어도 절차상 복잡하니 당초 안(案)대로 편한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C업체 관계자는 “사업예산에서 광고비를 먼저 떼면서 콘텐츠 제작비가 줄어들고 품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언론재단 측은 “금액이 적고 유동적인 SNS 광고의 경우 매번 계산서를 끊기 번거로우면 후불로 내도 된다”며 “재단과 사전협의가 있으면 유연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재단 독점권, 영업 자유 제한”  

그러나 절차상의 복잡성 외에도 언론재단이 정부광고를 독점하고 ‘통행세’를 받는 게 정당하냐는 근본적인 물음도 뒤따르고 있다. 뚜렷한 근거 없이 특정 단체가 정부광고를 독점하면 당초 입법목적인 정부광고 거래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와 맞지 않다는 것.

정부광고로 얻은 수수료 수익을 언론재단 기금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문체부는 앞선 더피알 취재에서 “독립성과 공공성이 보장되는 기관이고 매체 개입 여지가 없다고 봤기 때문에 언론재단을 선정했다. 당장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다른 기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추후) 언론재단보다 더 잘하는 곳이 있다면 (대행기관 선정 변경) 열려 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광고법 제10조에 의거해 업무의 위탁을 언론진흥재단에 맡겼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광고법 제10조에 의거해 업무의 위탁을 언론진흥재단에 맡겼다.

하지만 국민세금으로 집행되는 정부광고비 일부가 ‘손 안대고 자동으로’ 언론 진흥을 위한 단체로 수혈되는지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언론재단은 지난해 정부광고수탁사업으로 728억의 수익을 얻었다. 언론재단 전체 수익(775억)의 94%에 해당한다. 이 금액은 정부광고법이 본격 시행된 올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광고법 시행에 영향을 받는 정부부처(기관)-대행업체-언론사 삼자 중 ‘만만한’ 대행업체에만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정부광고법이 현실과 괴리가 크다며 공론화를 위한 공청회 및 헌법소원까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병윤 법률사무소 수영 변호사는 “정부광고의 언론재단 독점권을 시행령에 못 박은 것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봤다.

커뮤니케이션 업계와 관련한 헌법소원은 두 차례 있었으며 모두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졌다. 2008년 6월과 12월 헌법재판소는 각각 ‘코바코의 정부광고 단독 판매대행’과 ‘국가 행정기관에 의한 방송광고사전심의’를 위헌으로 판결한 바 있다.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는 “정부광고법의 취지는 옳은 방향이지만 광고와 홍보를 두부 자르듯이 구분하기 어려운 지금의 매체 환경에서는 다소 현실에 안 맞을 수 있다”며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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