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비기너스’
화제작 ‘비기너스’
  • 최지현 기자 (jhchoi@the-pr.co.kr)
  • 승인 2011.12.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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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환영(幻影)에서 진정한 교감으로


‘비기너스’는 ‘교감’에 대한 영화다. 38세 일러스트 작가 올리버는 최근 아버지를 잃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자 게이로 커밍아웃했던 터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 향년 75세.

13세 때 자신이 게이임을 알았던 아버지 할은 44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치고 ‘더 이상 이론적 게이로 살고 싶지 않다’고 선언, 게이로서 삶을 향유한다. 폭죽 전문가이자 헬스 트레이너인 연하의 남자친구 앤디와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인 올리버에게 감동적이면서도 낯설다. 어린 시절, 최소한의 의무만을 다하던 아버지로 인해 항상 혼자였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돼서다. 


성인이 된 올리버는 관계에서 항상 상대방을 ‘떠나 보낸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부부로서 교감하지 못하고 늘 허전하게 혼자이기만 했던 어머니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탓일까. ‘자신이 없고’, ‘언제나 그렇듯 해도 어차피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그를 알아보는 한 여자가 인생에 나타난다. 파티에서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 코스프레를 하고 앉아 있는 그에게 상담자를 자처하며 소파에 누운 애나는 쪽지를 건넨다. ‘슬픈데 왜 파티에 왔어요?’

프랑스 여배우 애나는 오디션을 위해 미국에 임시로 머무르고 있던 차였다. 애나의 사려 깊은 알아챔으로 시작된 그들의 교감은 애나가 친딸인 자신을 연인으로 대하려는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깊어진다.

교감의 시작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기…”

아버지를 피해 16세에 가출, 각 나라와 도시를 떠도는 애나. 한 곳에 머무르고는 있지만 외롭고 쓸쓸한 어머니와 아버지 그 누구와도 제대로 교감하지 못해 외로웠던 올리버. 아버지(애나)의 스토킹 같은 전화가 걸려오고, 아버지(올리버)와 닮은 노인이 노환으로 문을 잘 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해묵은 상처에 힘들어하는 서로를 보듬으며 둘은 함께하기로 한다.

하지만 원활하지 못했던 교감의 상처로 인해 올리버는 애나와의 관계에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애나와 같이 지내는 자신의 모습은 엉뚱한 놀이(일탈)를 일삼던 외로운 엄마와 이제까지완 다르게 남자친구 앤디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과 어지럽게 겹쳐진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와 한 번도 제대로 교감하지 못했던 소외감이 관계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올리버는 아버지가 게이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소외당했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서도 청혼했다는 사실을 아버지로부터 전해 듣자 그나마 붙들고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네 엄마가 청혼하면서 ‘내가 제자리로 돌려놓을게요’라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듣고 결심했지. ‘나도 최선을 다하리라’…”


아버지 역시 어머니 이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안 올리버. 이젠 기원도 출처도 불분명한 어려움에 놓인 올리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토록 원했던 사랑하는 아버지와의 교감에서 미묘하게 비껴나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의 왜곡된 교감도, 여의치 않은 아버지와의 교감도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깨달은 올리버는 떠나 보낸 애나를 만나러 간다. 애견 아더를 맡기기 위해 아버지의 남자친구였던 앤디에게 가자 그가 묻는다. “내가 게이라서지?” “뭐가요?” “(할이 죽은 뒤)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거.” “그게 아니예요. 이유는… 아버지가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예요.”

자신이 어찌할 수 없었던 소외를 인정하자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일까. 다시 한 자리에 마주한 올리버와 애나, 두 사람은 말한다. “우리 이제 뭐하지?” “나도 몰라” 진정한 교감을 위한 초보자들(비기너스)의 첫 걸음은 이렇게 어설프면서도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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