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무덤’이 늘어가고 있다
‘말무덤’이 늘어가고 있다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9.05.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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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과 혐오 시대, 선조들의 지혜를 거울 삼아 비춰볼 때

언어의 품격이 사라졌습니다. 팩트폭력이라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단어가 일상화됐으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센 언변, 내편네편을 가르는 혐오성 발언이 더욱 주목 받는 요즘입니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은 정치인들조차 일은커녕 연일 막말을 쏟아내며 자기 존재감 과시에 여념이 없습니다. 말의 피로도를 씻고자 ‘무덤’을 찾았던 그날의 여정을 오늘 다시 들춰보는 이유입니다. 

[더피알=서영길 기자] 통상적으로 10cm 길이에 60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 신체 중 지극히 작은 혀가 내놓는 말의 위력은 실로 크다. 이 작은 신체에서 나온 한 마디는 개인이나 사회를 해치기도 하고 부메랑이 돼 자신을 겨냥하기도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하루 평균 하는 말의 양은 약 3만 마디라고 한다. 그래서 말에 관련된 속담과 경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많이 존재해 왔다.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가끔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고백을 했다. 말을 많이 해 화를 만드느니 차라리 침묵이 값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한번 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실상 경청을 전제로 둔 침묵은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일 때가 많다.

이런 의미의 침묵을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히 일러주는 곳이 있다. 최첨단 기술도, 만능으로 통하는 인공지능도 더더욱 아니다. 몇 백 년 전 살다 간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지혜의 장, ‘말무덤’이 바로 그곳이다.

충성스러웠던 말(馬)을 묻은 곳이 아닌 ‘말씀(言)의 무덤’ 즉 언총(言塚)이다. 국내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무덤이 아닐 수 없다.

주둥개산 초입의 말무덤 안내판.
주둥개산 초입의 말무덤 안내판. 사진: 서영길 기자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 조성된 말무덤은 400여년을 이어오며 지금의 우리에게 말없는 스승이 돼 주고 있다.

이 마을에 구전을 통해 내려온 말무덤이 생겨난 연유는 이렇다. 

예부터 한대마을에는 다양한 성씨들이 모여들어 살았다. 임진왜란 전후로 밀양박씨와 인천채씨, 춘천박씨가 살고 있었는데, 후에 한대마을을 양분하는 낮은 언덕배기를 사이에 두고 김녕김씨, 진주류씨, 김해김씨, 경주최씨가 들어와 집성하며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소한 말 한 마디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등 말썽이 잦자 마을 어른들은 그 원인과 처방을 찾기에 골몰했다.

어느 날 한 과객이 이 마을을 지나다 산의 형세를 보고는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라 마치 개가 짖어대는 상구형을 하고 있어 마을이 항상 시끄럽다”며 예방책을 일러주고 떠났다.

실제로 한대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야산은 그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는 듯해 ‘주둥개산’이라 불렸다. 마을사람들은 이 과객의 말에 따라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인 논 한 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 위치인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재갈바위를 세웠다. 그리고는 마을사람 모두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상스럽고 험한 말, 남을 함부로 비방해 가슴에 상처가 남게 하는 말, 미움과 원망이 담긴 말 등을 모아 지방처럼 써서 마치 신위 모시듯 사발에 담아 오라고 했다.

마을사람들은 싸움의 발단이 된 말(言)들을 사발에 모두 담아 주둥개산 소나무 숲 언저리, 즉 개가 짖어대는 주둥이 언덕배기에 묻고는 무덤처럼 돌과 흙으로 수북이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한 마디로 말 장사를 지낸 것. 

말무덤 전경. 사진: 서영길 기자
말무덤 전경. 사진: 서영길 기자

이후 마을사람들은 이 무덤을 신성시했다. 그 뒤부턴 문중 간 싸움이 없어지고 한대마을은 지금까지도 두터운 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조금 황당한 방법이었을는지 모르지만 ‘말무덤’이란 상징을 만들어 말을 절제하고, 마을 간 화합을 이끌어낸 선조들의 번뜩이는 지혜가 빛나는 대목이다. 현재 한대마을 어귀의 주둥개산에는 이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말무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말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동네 화합과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여서(말무덤) 친구들하고 비료 포대 응디(엉덩이) 깔고 썰매도 타고, 소나무 밑에서 본부 지어서 마캉(모두) 놀기도 놀고. 그럴 때마다 동네 어른들이 여선 말조심해야 한다고 혼내고 그랬제. 지금도 말무덤 옆에 있는 정자에서 마을사람들이 가끔씩 모여 동네 회의를 하기도 하는데 싸울 일이 없지. 말무덤 옆에서 우에(어찌) 싸우노?” 

한대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진영 씨는 말무덤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말무덤 주변에 세워놓은 격언비들.
말무덤 주변에 세워놓은 격언비들. 사진: 서영길 기자

한대마을과 역사를 같이해 온 말무덤은 세월의 흐름만큼 변화도 겪었다. 말무덤은 조성된 지 약 400여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90년이 되어서야 출향인사들로 인해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지석이 하나 세워졌다. 이 표지석 앞면에는 ‘말무덤’, 뒷면엔 한자로 ‘言塚(언총)’이라고 쓰여 있다. 원래 지름 14m에 높이 5m 가량 된 봉분이었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되며 예전에 비해 많이 축소된 상태라는 게 만나 본 마을사람들의 얘기다.

이에 예천군이 2013년에야 비로소 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말무덤 주변이 사유지인 이유로 당초 계획했던 만큼의 부지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들녘 가운데 세웠던 재갈바위들은 수십 년 전 농경지 정리와 마을 진입로를 내면서 사라진 상태다. 대신 예천군은 말무덤 진입로와 주변에 말과 관련한 격언과 명언을 13개의 자연석에 새긴 격언비를 세웠다.

이들 비에는 우리가 흔히 들어봤던 속담 구절을 포함해 고종황제가 했던 말과 관련된 경구, 명언들이 적혀있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 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 뜨린다.(고종) 

귀는 크게 열렸고, 입은 작게 열렸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
말단 집 장맛이 쓰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

많은 구절들 가운데 ‘말 단(많은) 집 장맛이 쓰다’는 속담이 눈에 띈다. 말이 앞서는데 어떻게 정성을 다해 장을 담글 수 있겠는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속담처럼 언행일치보다 심행일치가 더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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