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고전 속에서 ‘소피커’를 보다
Z세대, 고전 속에서 ‘소피커’를 보다
  • 김승혁 (thepr@the-pr.co.kr)
  • 승인 2019.06.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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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눈] 2019 현실과 대입해 보니…구시대 패러다임 vs 세대 아우르는 가치

[더피알=김승혁] 종이책보다 모바일 화면이 훨씬 익숙하고, 장문보다 단문을 선호하는 세대. 이런 20대에게 고전문학은 낯선 영역이다. 소수의 ‘책쟁이’가 아니고서야 고전을 읽는 20대 청년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뉴트로(new+retro)가 트렌드가 되어 젊은층에서 각광 받는 지금, 왜 고전만큼은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당신일까?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는 20대 친구들과 함께 대표적인 고전을 짚고, 2019년 현실과 대입해보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봤다.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른 남녀가 각자의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다가, 이내 자신들의 편협한 태도를 고치고 서로의 진실된 내면에 호감을 느끼는 이야기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외면의 것(재산, 직업, 외모 등)에 속지 말고 내면의 것을 바라보자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임금을 향한 신하의 무조건적 충절이나 가부장적 질서의 합리화 현상은 현대 사회 20대의 공감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주영, 21세)

신기하게도 고전 속 메시지와 교훈은 지금의 20대 가치관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흔히 ‘Z세대’라고 일컬어지는 20대는 깊은 인간관계에 지친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큰 제약을 두지 않는다. 어떠한 플랫폼이 됐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굉장히 익숙하며, 표면적인 가치보다 나를 위한 내면적 가치에 무게를 둔다. 해당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다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20대 트렌드를 칭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소피커(所/小+Speaker)’처럼 이 시대 밀레니얼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준으로부터 탈피해 나만의 가치관, 소신을 외치는 것을 지향한다. 일례로 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인 가부장제나 내 가족을 꾸려 부양해야 한다는 암묵적 의무감 등으로부터 벗어나는 20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즉, 규정된 나가 아닌 진정한 나를 찾아가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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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 소포클레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을 주제로 한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거부하려 하나, 그 거부조차 운명의 한 요소가 된다. 운명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체념할 것인가? 아니면 부딪힐 것인가? 이것이 해당 작품의 교훈이자 인간의 항구적인 고민인 것 같다. 이는 전 세대를 아울러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다. 결코 나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면 그 길로 가고 있던 적이 있지 않은가. 반대로 운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얼마나 많았던지. (김민우, 23세)

20대 시각에서 보았을 때 오이디푸스의 교훈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 요즘 20대는 예전만큼 치열하게 자신의 미래, 운명 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그러면서도 의미가 없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특이성을 보이곤 한다.

무민(無+mean) 세대. 의미 있고 무거운 것에서 벗어나 별 의미 없고 가벼운 생각이나 행동을 통해 즐거움과 가치를 찾는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버겁고 반복되는 생활에 지치다보니 일상 속 작은 변화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주물럭거릴 수 있는 슬라임(엑체괴물)이 인기인 것도 하나의 예이다.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자아를 발견해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우정과 사랑, 그리고 선과 악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작품 내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내가 20대여서 그런지 몰라도 취업을 앞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할지. (김보문, 23세)

20대의 직업관이 달라지고 있다. 취업 준비가 아닌 퇴사 준비가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직업에서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고민한다. 돈 좀 못 벌어도 내가 중요한 의미를 느끼면 개의치 않는 것이다.

자아실현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20대에게 직장은 선택의 문제가 됐다. ‘N잡러’(여러 수를 의미하는 알파벳 ‘N’+일자리 영단어 job+사람을 뜻하는 er) ‘프리랜서’로서 매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때에 경험하고 싶어 한다. 데미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직업과 가치,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세 작품을 통해 20대에게 생소하기만 했던 고전이 현재를 아우르는 교훈과 가치가 있음을 새삼 알게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 속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이나 이를 수용하는 자세는 달라졌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 세대를 아울러 교훈과 감동을 주는 고전문학, 이제는 시대에 맞춰 해석하는 눈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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