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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방지법’에서 김영란법 그림자가 보인다
‘괴롭힘 방지법’에서 김영란법 그림자가 보인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9.07.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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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인간관계 잘못을 법으로 재단할 수 있나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 혼란 떠올라…‘호랑이 그림’의 역기능 우려되기도

강편, 이제 그런 얘기하면 범법자 돼요. 신고할 겁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편집국 오전회의 중 사담을 하다 한 기자가 놓은 으름장이다. 7월 16일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하 괴롭힘 방지법)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었다.

상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거나 모욕을 당한 피해 직원이 회사에 신고했을 때,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는 처벌 조항까지 거론했다.

“나라고 가만히 있겠어요? 지금껏 받은 스트레스와 괴로움의 근거자료를 다 취합해 맞장 뜰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대화는 그럭저럭 유쾌하게 마무리됐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16일 오후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노사상생지원과에서 민원인이 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16일 오후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노사상생지원과에서 민원인이 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뒤돌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가볍게 웃어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직원 5명 이상인 전국의 76만여 사업체가 이 ‘혁신적 법’을 준수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시 처벌 받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신적이라는 말이 괴롭힘 방지법에서만큼은 유독 이물감으로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관계 또는 시민의 의식을 법으로 강제해 계도하겠다는 발상부터 동의하기 힘든 탓이다.

직장 괴롭힘이 오죽 심각하면 법까지 만들어졌겠나 싶어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 직장’의 그림을 놓고 봤을 때 새 법의 ‘비상식성’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직장 내 폭행이나 성폭력 같은 경우 이미 형법으로 다스려지고 있다. 갑질 등에 해당하는 모욕이나 협박, 강요 등도 형법에 의해 처벌 대상이 된다. 그간 잘못을 벌할 근거가 없어서 괴롭힘이 근절되지 않은 게 아니라, 근거가 있어도 제대로 벌하기 힘든 사회적 인식, 조직문화 탓에 개선이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괴롭힘 방지법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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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대응 매뉴얼 일부. 출처: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대응 매뉴얼 일부. 출처: 고용노동부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은 두지 않되, 취업규칙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대응조치를 필수적으로 기재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 언급했듯 회사가 괴롭힘 사실을 신고·주장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에 불이익을 주게 되면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괴롭힘의 정도는 몇몇의 특수 상황을 제외하면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누가 봐도 의도성이 다분한 ‘못된 짓’을 하지 않고서야, 경우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달리 해석될 가능성이 짙다.

결국 상대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하자는 건데 가족관계에서도 안 되는 일을 직장관계에서 기대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가령 회사 상황이나 업무 특성상 급박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져 팀장이 퇴근한 직원에 반복해서 연락했다고 치자. 이때 해당 직원이 ‘나만 괴롭다’고 느끼면 그 팀장은 신고대상감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불편하거나 불쾌한 언행을 반복적으로 해도 범법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예를 떠나서도 괴롭힘 방지법을 시니컬하게 보게 되는 이유에는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으로 인한 ‘선행학습 효과’가 작용한다.

공직자나 교직원, 언론 종사자 등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방해하는 요인을 없애자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업무상 만나서 밥 먹는 금액까지 정해놓는 ‘웃픈 가이드라인’에 대해선 말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덕분에 김영란법 초기엔 ‘기존 관행은 뭐든 금지’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학생이 교수에게 음료수 한 잔 대접하는 것도 기피하게 됐고, 기자들은 취재활동에서 외신과의 역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려줘야 할 국민권익위원회마저 사안별로 오락가락 유권 해석을 내놓아 여론의 빈축을 샀다. ▷관련기사: 언론 해외취재, 김영란법 전으로 ‘회귀’

청탁금지법이 본격 시행된 2016년 9월 28일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제도과에서 조사관들이 폭주하는 법 위반 여부와 유권해석 전화를 응대하는 모습. 뉴시스
청탁금지법이 본격 시행된 2016년 9월 28일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제도과에서 조사관들이 폭주하는 법 위반 여부와 유권해석 전화를 응대하는 모습. 뉴시스

지금은 어떤가. 청탁금지법 시행 2년 9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모두를 떨게 했던 강력한 조항은 ‘호랑이 그림’ 정도로 취급되는 분위기다. 기자 응대나 협찬 요구에 힘들어하는 기업 홍보인들 사이에선 “이럴 거면 그 난리는 왜 쳤느냐”하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김영란법이 협찬·광고에 미친 영향

물론 접대문화에 있어 최소한 경각심은 갖게 되지 않았느냐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모호한 가이드라인에 따른 현장의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따져보면 아쉬움이 크다.

이 관점에서 괴롭힘 방지법도 일정 부분에서 다른 괴로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약자가 선하다는 통념으로 인한 법 악용 가능성이 우려스럽다. 도덕적 인식과 개인의 양심에 따라야 할 인간관계의 옳고 그름을 법으로 재단하려 하는 넌센스의 한 대목 같다.

몇 년 전, 요즘 신입들은 ‘전화포비아’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문자 메시지나 톡 대화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원치 않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순간의 두려움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그 기전엔 성장배경이나 세대차이로 인한 조직문화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누가 아랴. 앞으로 ‘세대차별금지법’도 나오게 될는지. 가뜩이나 세대갈등이 첨예해지는 현 상황에 비춰보면 아예 허황된 상상은 아닐 것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하는데 최소한의 도덕도 실종되는 우리사회를 탓해야 하는 건지 도통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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