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본 ‘90년생이 온다’
90년대생이 본 ‘90년생이 온다’
  • 이지영 (leejyart@gmail.com)
  • 승인 2019.09.2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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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눈] 일에 대한 가치관 단편적으로 해석돼
비효율적 야근 싫지만 커리어 고민 커
‘90년생이 온다’이 온다 표지.
‘90년생이 온다’ 표지.

[더피알 대학생 기자=이지영]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는 ‘90년생이 온다’를 봤다. 교보문고 8월 기준 무려 5주간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책이다.

Z세대를 아슬아슬하게 빗겨 간 90년대생 입장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 책, 얼마나 제대로 우리를 이해하고 있을까?

한참을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던 와중, 몇몇 부분에서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90년대생이라는 키워드만으로 해석되지 못하는 개인적 차이 때문이었을까?

나는 특히 ‘일에 대한 가치관’에 있어 이 책이 90년대생을 다소 단편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요즈음 내 또래들에게 직업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단연 ‘워라밸’이다. 그러나 현재를 즐기라는 욜로(YOLO)가 일각에서는 지나친 소비주의로 변질돼 버렸듯, 워라밸이 단순히 ‘일은 최대한 적게 할수록 좋은 것’, ‘받은만큼만 일한다’라는 효율성의 논리로만 해석된다면 그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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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에 대한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을 착취하는 사업주들 때문에 ‘열정페이’라는 말이 생겼고, 노력만능주의를 비꼬는 ‘노오오력’이라는 표현도 공감이 간다. 한때는 나도 성실함을 고지식함으로, 노력을 순진함으로 제멋대로 해석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홍보·마케팅 대행사에서 인턴을 해보면서 내가 워라밸의 의미를 단편적으로만 해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반의 나는 어떻게든 나의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겠다는 ‘피고용자 마인드’로 몸을 사린 결과 효율성은 얻었지만, 한편으론 나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에서 오는 성취감은 분명 단순한 시장가치만으로 환산되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또 그 자체만으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이를 깨닫고 난 뒤, 나는 소위 고지식함을 자처하며 일에 온전히 몰입하기로 결정했고, 이전에는 맛보지 못한 일의 즐거움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즈음 나는 친구들과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듯한 베스트셀러의 달콤한 제목들이 한편으로는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열심’을 터부시하는 지금의 풍토가 삶이 없이 일에만 치우쳐져 있던 노동문화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얼마간의 고통스러운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노력 만능주의에 빠져 비효율적으로 무의미한 야근을 일삼는 조직문화는 개인과 조직에 있어 그 어떤 발전도 의미도 없다는 것에 여전히 동의한다. 그러나 회사에 대한 가족주의와 충성심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결국 나의 커리어는 끝까지 남는다.

흑백 논리에 빠져 노력의 가치를 경시하는 풍토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고 변명으로 삼는다면 개인의 커리어 발전에도 전혀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2019년을 살아가는 90년생에게도 ‘중용’이 필요하다. 달라진 우리 세대에게도 여전히 통용되는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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