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고…‘국감 공생’ 또 반복?
의원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고…‘국감 공생’ 또 반복?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9.10.0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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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정보 가진 의원과 지면 가진 언론의 공생
‘국민 알권리’ 핑계로 정부·기업에 부담주기 여전
배경지식 없는 질의, 잘못된 자료 ‘언론플레이’ 유감
2일부터 국정감사가 열리는 가운데, 국회 의원회관 2층에 의원들에게 전달할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20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2일부터 시작되는 가운데, 하루 전인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의원들에게 전달할 자료들을 분류하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박형재 기자] 매년 국정감사 때면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신문 1~2면에 ‘OO의원실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단독 기사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방송 뉴스도 마찬가지다. 단독보도 타이틀을 달고 뉴스 말미에 국회의원이 등장해 코멘트하며 얼굴을 알린다.

파괴력 있는 기사를 찾는 언론과 전 국민이 주목하는 국감에서 스타가 되려는 의원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20일간 진행되는 국감 기간 내내 눈과 귀를 사로잡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국민 알권리가 충족되는 듯하지만 한편에선 이런 문제가 왜 이때만 공론화되는 건지, 언론과 국회의원들이 국감시즌에 유독 열일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의원들은 국감 수개월 전부터 정부부처나 주요 기관 및 기업에 골목상권 침해, 가맹점 갑질 같은 국민적 관심이 큰 자료를 요청하고 이를 평소 언론에 흘린다. 언론은 그 댓가로 특종 혹은 단독 타이틀을 달아 대서특필하고 의원 개개인의 인지도를 높인다.

반대로 언론이 의원이나 보좌관에게 기사 소스를 던지는 경우도 있다. ‘모 기업이나 정부부처에 이런 소문이 들리던데 알아봐달라’고 요청하면 의원실에서 자료를 받아 언론에 전달하는 식이다.

한 중견 언론인은 “사안에 따라 일반적인 내용은 의원실에서 보도자료로 전 언론에 뿌리지만, 파괴력 있는 건에 대해서는 메이저 언론을 지목해 이슈를 키우기도 한다”며 “의원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는 공생관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흥분하면 지는 게임”…국감에 나서는 기업들의 자세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과 정부부처에 자료를 요청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건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세간의 주목을 끌고 유권자 표심을 얻기 위한 이슈파이팅 목적에서 국감을 이용하는 건 지적 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국감 시즌만 시작되면 의원들은 정부부처에서 받은 자료를 가지고 이른바 ‘언론플레이’를 한다. 평범했던 현안을 자극적인 아이템으로 만들고 “내가 직접 알아봤더니 이런 일도 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의원에 따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분이 있는가하면 별 것 아닌 것들도 침소봉대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관행을 잘 아는 언론이 팩트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보도한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매년 국감 시즌이면 잘못된 언론 보도를 바로잡는 정부의 해명자료가 쏟아지기기도 한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의원과 언론을 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부부처와 기업에 무분별한 자료 요청이 들어가고, 이로 인해 정상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소모적인 낭비가 발생한다. 

복수의 정부부처 관계자에 따르면 공무원들의 국감 스트레스 1순위는 의원들의 자료 요청량이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다. 각 부서나 팀별로 주요 예산 집행내역은 기본이고,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소명자료, 후속조치는 물론 몇 년치 관련 조사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부처 현안에 대해 앞뒤 상황을 이해하거나 배경지식을 지니지 못한 채 무턱대고 자료를 달라거나, 자료 준비에 시간이 걸리면 고압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슈와 맞물린 현안 부서에서는 3개월 이상 국회 업무에 매달리기도 해 행정력 낭비가 심각하다는 전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매년 돌아오는 국감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국감장이 기업인 망신주기나 호통치는 곳으로 변질될 때가 많다. 더욱이 지명도 있는 ‘높은 급’을 불러 호통칠수록 자신의 인지도가 올라간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여전히 있다.

이번에 대표가 국감장에 출석하는 모 기업 관계자는 “자료 요청이 있거나 증인출석 요청이 있으면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감은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인 정부를 감시하고 나라 살림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다. 그러나 매년 수백명의 기업인, 고위 공무원이 무더기로 소환되면서 본래 취지가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지 오래다.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의원과 언론의 공생은 불편하다.

국정감사가 오늘(2일)부터 시작된다. 더욱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다. 매년 반복되는 구태가 없어지길 기대하는 건 현실감 없는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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