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기레기 지수’ 높인 요인
2019 ‘기레기 지수’ 높인 요인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9.12.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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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시 되던 취재 관행 도마 위, 유튜브 저널리즘 부각
설리 죽음에 반성했던 언론, 한 달만에 뒷걸음질
기자를 기레기로 묘사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갈수록 떨어지는 기자 신뢰도를 올해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살펴봤다.
기자를 기레기로 묘사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갈수록 떨어지는 기자 신뢰도를 올해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살펴봤다.

[더피알=조성미 기자] 지난해 화두가 됐던 가짜뉴스의 연장선상에서 올 초부터 꾸준히 기레기(기자+쓰레기)에 대한 담론이 이어졌다. 국민들이 직접 기사의 잘못된 내용을 지적하고 언론사의 성향과 취재방식을 꾸짖으며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요구한다.

때로는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뉴스를 보도하면 기레기라 비난하고, 기자 직군을 싸잡아 기득권 세력으로 보며 일거수일투족에 감시 불을 밝히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기자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 에델만 코리아가 발표한 ‘신뢰도 지표 조사(Trust Barometer)’를 보면 기자의 신뢰도는 25%로 전년 대비 3%p 하락했다. 여타 직업군에서 신뢰도가 상승한 것과 대조적으로 기자 직군만 유일하게 떨어진 결과였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기자와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추세 속 올해 ‘기레기 지수’를 높인 요인들을 살펴봤다. 

기레기 관련 기사 키워드. 자료 제공: 비플라이소프트

무례한 기자, 갑질하는 기자

기자들의 취재방식이 말을 낳고 있다. 다소 고압적인 태도나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행위, 친절하지 않은 화법에 대해서까지 부정적 시선이 이어진다.

일례로 올 초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소속을 밝히지 않고 공격적으로 질문한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특집 대담의 진행자로 나선 송현정 KBS 기자 역시 대통령 답변을 끊거나 기습 질문을 던진 것이 무례했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사진은 지난 8월 국회 패스트트랙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출석하던 중 기자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사진은 지난 8월 국회 패스트트랙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출석하던 중 기자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언론의 취재 스타일이 기레기를 만든다는 것은 대중만이 아니다. 지난 9월 4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이 공식 발표 이후 백브리핑을 요구하는 취재진을 향해 ‘이렇게 하니 기레기라는 말을 듣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출입기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후 이 의원은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지만, 취재방식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한 달간 118만건? 60만건?

올해 기레기 논란의 중심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취재방식은 물론 보도에 있어서도 질보다 양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 전 장관 관련 기사가 후보자 지명(8월 9일) 이후 한 달간 무려 118만건에 달한다고 밝혔으며,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60만건이 보도됐다며 과열현상을 지적했다.

이후 여러 매체들이 해당 내용을 팩트체크하며 집계의 오류를 지적했다. 하지만 후보 검증이라는 미명 하에 신상털이식 보도에 적잖은 국민이 피로감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네이버 트렌드를 통해 확인해본 기레기 키워드

실제로 구글과 네이버를 통해 검색어 추이를 살펴본 결과, 8월 9일 후보자 지명 한 달째에 맞춰 ‘기레기’ 관련 검색량이 많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절대적인 검색량이 아닌 추이를 통해 최대 검색량을 100으로 변환한 결과 구글에서는 9월 1~7일, 네이버에서는 9월 5일에 100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된 내용 없이 의혹을 두고 [단독] 기사를 쏟아내거나, 집 앞에 찾아가 파파라치식으로 촬영한 사진을 내보내는 등의 행위가 정당한 취재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공영방송 vs. 유튜브

전통 미디어를 향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사이 유튜브를 통해 뉴스 소비가 높아지고 그 영향력도 강해지고 있다. 공영방송도 불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가 이어지던 가운데 KBS가 기레기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 김경록 PB의 인터뷰를 두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KBS간 공방이 벌어진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유 이사장은 자신이 올 초부터 진행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통해 김경록 PB가 KBS와 인터뷰한 내용을 검찰에 유출했고, 인터뷰 취지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보도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이에 KBS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가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는 등 내홍을 겪었다. 이후 진실공방이 이어지며 양측은 각각 인터뷰 내용 전체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상황에 국민들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KBS 수신료 전기요금 분리징수 청원을 제기하기 이르는 등 언론을 향해 적극적으로 질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느닷없는 반성, 변화는…

10월 14일 25세의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개인 SNS에 사진 한 장만 올려도 온갖 온라인 기사가 만들어지던, 대중의 관심 한 가운데 있던 설리다. 하지만 그의 죽음마저도 대중들의 관심과 클릭을 필요로 하는 언론에 의해 소비됐다.

비공개 장례를 원하는 유족 입장과 반대로 장례식장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그의 빈소를 지킨 동료들의 이름이 속속 보도됐다. 설리와 친분이 있지만 빈소에 걸음하지 않은 스타들은 질타의 대상이 됐고 이는 다시 온라인뉴스로 가공됐다.

그리고 언론들은 설리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낀 듯 느닷없는 반성문을 내기 시작했다. 클릭장사가 보장되는 설리에 대한 논란을 만들고 악성 댓글을 기사화하며 악플러들에게 떠미는 행태를 반성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하지만 약 한 달 후 세상을 등진 구하라의 마지막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수십 건의 온라인 기사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반성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문제인 듯하다.

기레기 관련 기사 댓글 키워드
기레기 관련 기사 댓글 키워드. 자료 제공: 비플라이소프트

기레기 퇴출 작전

기레기를 향한 대중들의 질책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의 검증 과정에서 언론의 보도를 비판하던 누리꾼은 포털 검색어를 통해 실력행사에 나섰다. 조 전 장관의 지지자들이 ‘조국힘내세요’란 문구를 실시간 검색어에 올린 데 이어, 8월 28일에는 ‘가짜뉴스아웃’이 실검 1위 자리를 차지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9월 28일 진행된 서초동 촛불집회에서는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이 JTBC가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으며, SBS는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페이스북 ‘기레기 추적자’ 페이지와 노룩뉴스, 리포트래시 등의 사이트에서는 ‘기레기 기사’를 박제하고 있다.

거세지는 비판 속 언론 내부의 자성도 나오고 있다. 언론의 보도환경이나 취재행태에 대한 반성이 기레기를 그저 한 시절의 유행어로 남기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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