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1-28 21:15 (화)
생존위기 때 진짜 리더십이 나타난다
생존위기 때 진짜 리더십이 나타난다
  • 김영묵 brian.kim@prain.com
  • 승인 2019.12.05 13: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묵의 리더십 원포인트] 행동과 시스템으로 소통해야
생존의 위기 속 인간의 처절함 사투를 그린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한 장면.
생존의 위기 속 인간의 처절함 사투를 그린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한 장면.

[더피알=김영묵] 1990년대 ‘꽃미남’ 영화배우의 대명사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동시대에 청·장년기를 보낸 필자에게는 질투의 대상이었다.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인지 그에 대해서는 ‘연기는 별로이면서 얼굴만 잘 생긴 녀석’이라는 인식이 오래 지속됐다. 그랬던 필자가 디카프리오의 연기력을 인정하게 된 영화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다. 너무 암울하고 지루하다는 평가도 있었고 실화 여부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주인공 휴 글래스의 처절한 생존기는 경이로웠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주인공 휴 글래스는 생존의 여정 속에 스스로 리더인 동시에 스스로 리드를 당한 이였다. 즉, 1인 생존 스토리다. 그런데 같은 생존기지만 자기 자신뿐 아니라 팀을 죽음에서 이끌어낸 실화 속 인물이 있다.

리더십의 필수 자질로 꼽는 ‘3C’를 대입해 보면, 자신이 이끄는 조직에 대한 헌신(Commitment), 난국에 오히려 침착함을 잃지 않는 평정심(Composure), 그리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탐험가였던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은 인류 최초로 남극 횡단에 도전하기 위해 1914년 27명의 선원과 함께 남대서양으로 향했다. 앞서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Roald Amundsen)이 남극점을 정복했지만, 아문센은 남극점을 찍은 뒤 베이스캠프로 되돌아왔다. 최초 남극점 정복의 기록을 빼앗긴 섀클턴은 남극점을 찍은 뒤 직진해 대륙을 횡단하는 도전에 나섰는데, 남극 대륙에 발을 딛기도 전에 유빙에 갇혀 조난을 당하고 설상가상 탐험선(Endurance호)을 잃게 된다. 탐험선이 옥죄는 유빙 압력에 파손된 뒤 끝내 얼음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섀클턴과 유비에 갇힌 Endurance호 모습.
섀클턴과 유빙에 갇힌 Endurance호 모습.

당시에는 획기적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솜털 방한복과 통조림을 포함한 식량, 썰매 개들, 천막들, 그리고 3척의 탈출보트만 챙긴 채 섀클턴은 선원들을 이끌고 남극의 유빙과 대륙 연안의 섬들을 전전하며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 투쟁을 벌였다. 문명과는 고립된 채, 구조될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1년 3개월여의 조난 생활 끝에 섀클턴은 결단을 내려 5명의 선원과 함께 1척의 탈출보트에 오른 뒤 해와 별을 나침반 삼아 보름간 직선거리로만 약 1천 킬로미터 이상 망망대해를 노를 저어 건넜다. 그 결과 남대서양의 포경기지가 있던 영국령 사우스 조지아섬에 도착, 구조대를 이끌고 남극해의 엘리펀트섬에 잔류시켰던 나머지 선원들을 무사히 구조해 고국으로 돌아갔다.

유빙에 발 묶인 탐험선을 포기하고 유빙에 짐을 풀기 시작한 날부터 치면, 섀클턴이 사우스 조지아섬에 도달해 구조대를 이끌고 엘리펀트섬에 잔류시켰던 22명의 선원들을 모두 구조할 때까지의 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 ‘Endurance호’를 포기한 순간부터 섀클턴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밖에 없었다. ‘나를 믿고 위험한 도전에 동참한 27명의 선원 모두를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낸다’는, 단 하나의 목표이자 너무도 명료한 지향점을 향해 그는 헌신(Commitment)했다.

Endurance호 선원들.
Endurance호 선원들.

그럼에도, 그 어떠한 통신 수단도 없이 문명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고립무원의 상태, 더욱이 수천 킬로미터가 아니라 수만 킬로미터라도 앞만 보고 걷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육지도 아닌 망망대해 한 복판에서 조난을 당했다고 상상해 보라. 섀클턴이 남겨 놓은 일기를 보면 그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나약한 인간이었다. 두려움과 고통에 떨며 처절하게 신을 찾기도 했지만, 함께 생존투쟁을 벌였던 선원들이 남긴 기록물에서 그들의 리더가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였다거나, 약한 모습 혹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는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27명의 선원 앞에서 섀클턴은 늘 의연했고, 긍정 에너지를 잃지 않았으며, 또렷한 정신력으로 순간순간 전략적 판단을 하는 리더로 비쳤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때는 과감하게 궤도를 수정했다. 조직의 구성원은 난국에 리더가 두려움에 떨거나 우왕좌왕하거나 냉철한 판단을 하지 못할 때 그를 믿고 따르지 못한다. 섀클턴은 (내면으로는 당연히 자신도 두려웠을 테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오히려 침착함을 잃지 않고 평정심(Composure)을 견지해 27명의 선원들이 희망을 갖고 생존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확실하게 했다.

TV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수천수만 마리의 펭귄 무리가 온 종일 어두움이 지속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다닥다닥 붙어 발등에 알을 품고 있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섀클턴과 27명의 선원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 조난생활을 이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 악조건에서 섀클턴은 선원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했기에 그들에게 희망과 의지를 불어넣었을까?

그는 말보다 행동과 시스템으로 소통했다. 단 한 명이라도 심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지 늘 관찰했으며, 멍한 상태가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모두에게 사소한 것이라도 일거리를 부여했다. 요리사가 식사 준비를 할 때 누군가는 얼음을 깨서 녹여 식수를 만들도록 하고, 천막 주변에 눈과 얼음이 쌓이지 않도록 비질을 하도록 하는 등 부단히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게 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모두 모여 체스를 두고 카드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는 ‘루틴’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그들을 반드시 무사히 가족 품에 돌려보내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천명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확인시킨 일화도 있다. 선원 한 명이 심한 감기에 걸려 기진맥진하던 때였다. 그에게는 따뜻한 우유(분말우유를 물에 개운 것) 한 잔이 힘이 될 터였다. 이 때 섀클턴은 감기에 걸린 사람뿐 아니라 모든 선원들에게 ‘특식’으로 따뜻한 우유 한 잔씩 배급했다.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내린 의외의 결단이었다.

그의 측근이 남긴 기록을 보면 섀클턴은 감기에 걸린 선원에게만 따뜻한 우유를 주었을 경우 그 선원이 자칫 ‘식량을 축낸다’고 생각하면서 동료들에게 괜스레 죄책감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전체 사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리더는 말뿐 아니라 표정과 행동으로, 심지어 숨소리로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구성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칼럼을 갈무리하며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역사학자이자 리더십 분야 석학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낸시 케인(Nancy Koehn) 교수의 저서 ‘Forged in Crisis(위기 속에 단련된)’이다. 위대한 리더십을 상세히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