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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기생언론인가
누가 진짜 기생언론인가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9.12.18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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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또 도넘은 ‘김건모 성폭행 의혹’ 보도
유튜브 방송 인용해 마구잡이식 기사화, 주류 언론도 예외 없어

여타 언론사들이나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가 생산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본체가 이미 베껴쓰기, 따라가기 기사이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는 지난 9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선정주의 보도를 일삼으며 SNS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한 매체들을 ‘기생언론’이라 지목,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었다.

다른 매체가 ‘단독’을 붙여 보도한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제목을 바꾸고 요약해 기사를 완성하는 행태를 ‘피 빨아 먹는’ 기생 행태라고 꼬집었다. ▷관련기사: KBS ‘기생언론’ 저격에 “속 시원 vs 성 안차”

이 관점에서 보면 최근 ‘성폭행 논란’에 휩싸인 가수 김건모 관련 보도를 보면 한국 언론은 대다수 기생언론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몇 주째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김건모 성폭행 의혹이 17~18일 양일간 다시 한 번 폭발적 기사를 양산했다. 김 씨에 피해를 입었다는 세 번째 폭로자가 추가로 등장하면서다. 언론들은 물 만난 고기 마냥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언론도 예외가 없다. 보도 과정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기사인가 야설인가 싶을 정도다.

‘“김건모, ‘제모했냐’며 만지려해”…성추행 의혹 추가 제보’ (조선일보)
‘“김건모가 지퍼 내리고 보여줬다”…세번째 피해자 주장女까지’ (뉴스1)
‘“왁싱여부 본다며 만지려 했다” 김건모 제보 또 나와’ (서울신문)
“소파에서 본인 걸 보여주고…” 김건모 세 번째 피해자의 말’ (국민일보)
‘“김건모 성향 있어 까다로운 분”…성추행 폭로 또 나왔다’ (중앙일보)

심지어 네이버에서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주요기사로 선정하는 ‘Pick’ 표시까지 붙었다. 내용은 더 가관이다. 대부분의 보도가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의 17일 방송 내용을 퍼나르기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사건·사고 이슈를 주로 다루는 유튜버 ‘정배우’가 진행한 인터뷰까지 좋은 기사소스가 되고 있다.

언론들이 ‘가짜뉴스 진원지’라고 비판해왔던 유튜브 채널, 개인 유튜버 방송에 근거해 마구잡이 식으로 기사가 재생산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더 재미 있는 건 타언론사 취재내용을 인용보도할 땐 매체명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언론들이 ‘가세연’ ‘정배우’ 등의 원 출처는 참으로 친절히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독자 판단에 맡긴다)

김건모 성폭행 의혹을 보도한 기사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와 유튜버 '정배우' 방송 내용을 인용보도했다. 네이버뉴스 화면 재편집.
김건모 성폭행 의혹을 보도한 기사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와 유튜버 '정배우' 방송 내용을 인용보도했다. 네이버뉴스 화면 재편집.

결과적으로 경찰 수사결과와 상관없이 김건모는 이미 파렴치한 죄인으로 낙인찍혔다. 언론의 주도 하에 일종의 사회적 ‘사망 선고’가 내려졌고, 김 씨의 가족과 관계자들이 2·3차 피해자가 되어 고통받고 있다. 

가수 설리와 구하라의 잇단 비보를 접하며 연예인을 향한 대중의 과도한 관심, 관음증을 부추기는 언론 보도의 문제점이 공론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미필적 고의자가 되어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지독한 내로남불이거나 단기 기억상실증이거나 둘 중 하나다.

얼마 전 기생언론이라 지목된 한 매체의 전직 기자 A씨로부터 ‘언론 갑질’을 제보받은 적이 있다. 일 년 넘게 공들여 취재한 끝에 겨우 단독기사를 썼는데, 5일 뒤 유명 신문사 B기자가 단독 타이틀을 달고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이미 단독기사가 나갔다는 점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기사 각도를 살짝 틀어 단독 타이틀을 붙였기에 더욱 분통이 터졌다고 했다.

당사자의 집요한 문제 제기에 하루 지나 B기자의 기사 제목에서 ‘단독’ 표기가 빠졌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 들을 수 없었다고. A씨는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언론이 기생언론이라 불리는 매체의 단독을 뺏어 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메이저 언론의 뻔뻔한 갑질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쯤 되면 정말로 궁금해진다. 기생언론과 자생언론의 기준이 무언지. 누가 과연 기생언론에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인지. 기생언론의 다른 말이 공생언론은 아닌 건지. 더피알이 격년마다 진행하는 옐로저널리즘 보고서의 네 번째 내용이 벌써부터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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