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CEO가 간과한 것
보잉 CEO가 간과한 것
  • 김영묵 (brian.kim@prain.com)
  • 승인 2019.12.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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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묵의 리더십 원포인트] 346명 목숨 잃은 737 맥스 후폭풍
내부 문제제기 묵살, 리더의 ‘L’의 의미 되새겨야
3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두 차례의 추락 사고를 일으킨 보잉발 쓰나미가 항공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인터뷰 중인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CEO. AP/뉴시스
3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두 차례의 추락 사고를 일으킨 보잉발 쓰나미가 항공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인터뷰 중인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CEO. AP/뉴시스

[더피알=김영묵] 전 세계 항공산업에 난리가 났다. 유럽 에어버스(Airbus)와 항공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미국의 보잉(Boeing)이 2020년 1월에 737 맥스(Max) 기종의 생산을 잠정 중단한다고 최근 발표하면서 관련 업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보잉발(發) ‘쓰나미’가 부품 공급업체에서 항공사에 이르기까지 항공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퍼져 나가고 있고 사태 끝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번 결정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1년 2개월 전인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737 맥스 기종 여객기가 기체 이상으로 추락한 데 이어, 약 5개월 뒤인 2019년 3월에 에티오피아에서 또 여객기가 추락했다. 두 사고로 모두 346명의 승무원과 탑승객이 목숨을 잃었다. 동일 기종의 항공기가, 시스템 이상에 따른 조종 불능 상태라는 유사한 상황 속에 추락함에 따라 에티오피아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737 맥스 기종의 운항이 전면 중단됐고, 여전히 기약 없이 발이 묶여 있다.

보잉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당국으로부터 인증을 받아 2019년 안에 이 기종의 운항이 재개되도록 한다는 희망을 품었었지만, 오히려 생산 중단이라는 설상가상의 시나리오로 내몰렸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어느 회사든 겪을 법한 위기(Crisis)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종의 생산 과정과 감함인증 평가 단계에서 시스템 결함에 따른 구조적 문제점을 우려하는 내부 목소리가 나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묵살됐다는 내부고발자 증언이 잇따르면서 737 맥스의 안전성 논란은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지난 10월 열린 미국 연방의회 청문회에서는 데니스 뮐렌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가 의원들로부터 “737 맥스 항공기는 ‘하늘을 나는 관(棺)이다’”, “보잉은 (승객의) 안전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비난을 면전에서 들어야 했다.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최고 경영자(CEO·가운데)는 지난 10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737 MAX 항공기 추락 사태 관련 청문회에 출석했다. AP/뉴시스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최고 경영자(CEO·가운데)는 지난 10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737 MAX 항공기 추락 사태 관련 청문회에 출석했다. AP/뉴시스

뮐렌버그 CEO가 의원들로부터 원색적 비난을 들은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 그것도 해당 업종에서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대기업을 책임지는 리더로서 그에게 요구되는 자질이자 책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완곡하게 표현해서 경청(敬聽)의 소통에 미흡했던 책임에 직면한 것이다.

듣기와 경청의 차이

필자는 앞으로 리더(LEADER)의 영문 알파벳 6개를 갖고 리더는 어떠한 커뮤니케이터가 돼야 하는가 이야기를 풀어갈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리더는 ‘제대로 듣는(Listen) 사람’, 즉 경청자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듣는 것’과 ‘제대로 듣는 것’은 어떤 차이를 갖나? 보잉 사례를 보자. 정확한 내막을 알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필자는 737 맥스 기종의 시스템 결함과 관련한 초기 내부고발이 뮐렌버그 CEO를 포함한 경영진에 보고됐으리라 믿고 싶다. 경영진에 아예 닿지 않았다면, 이는 737 맥스의 추락에 버금가는, 대기업 보잉의 추락이라는 ‘파국’을 야기할 만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믿음대로(혹은 믿고 싶은 대로) 내부고발이 경영진에 보고됐다면 뮐렌버그 CEO가 ‘듣기는 한 것’이다. 그러나 항공기 승무원과 탑승객의 안전보다 회사의 이익을 앞에 놓아 내부고발 목소리를 묵살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대로 듣지는 못한 것’이다.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귀를 통해 들어온 목소리를 의식과 양심으로 걸러내 그 목소리의 울림을 이해하고, 진의를 파악하고, 필요한 행동에 나서는 것이 ‘제대로 듣는 것’이며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리더들이 제대로 듣지 못하는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으나, 특히 조직 내 다양한 의견들을 충실히 전달하지 못하는 참모들 때문인 경우가 빈번하다.

경영 기법 가운데 MBWA(Management by Wandering/Walking Around)가 있다. ‘배회관리’라고도 번역되는 이 기법은 리더가 수시로 생산·업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최말단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해 경영에 반영한다는 개념이다. 국내 기업 대표들, 심지어 그룹 총수들도 MBWA를 실천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곤 한다. 좋은 현상이기는 하나 솔직히 그 취지와 목적에 맞게 실행되는지 의구심이 든다.

MBWA가 자연스러워야

리얼리티 넘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대기업 대표가 비서에게 말한다. “이따 오후 2시쯤 OOO사업장, 혹은 △△△ 부서를 돌아보며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비상상황이다! 비서실장부터 해당 사업장·부서 담당 임원 및 부서장은 부랴부랴 의전 계획을 수립하고, 현장 청소와 정리정돈을 지시하고, 직원들에게 말조심을 당부하느라 부산스럽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면 현장 방문한 대표의 지근거리에서 그 분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직원들은 그 분께 어떤 말씀을 드리는지 하나하나 체크하는 참모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진정한 MBWA가 아니다. CEO는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는 했으되 ‘제대로 듣지 못한 셈’이다. 현장의 목소리, 회사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고충이나 자부심을 제대로 들으려면,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없는지 살피는 게 우선이다.

그렇다면 경청의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말 수를 줄여야 한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뇌는 들으면서 말하거나, 말을 하면서 듣는 멀티태스킹을 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내가 말할 내용을 생각하는 순간 뇌는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황마다 다르겠으나 회의 진행시 리더의 발언 시간과 다른 구성원들의 발언 시간을 20:80 정도의 비중으로 세팅하면 어떨까? 첫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리더에게 주어진 핵심 역할은 의사결정이다. 회의 시간의 20%만 할애해도 의사 결정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이는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더 많이 주면 어떨까? 물론 처음에는 잘 되지 않겠지만 리더가 진정성을 갖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면 직원들도 허심탄회하게 말문을 열 것이다.

“큰 성공은 작은 성공이 모여 이뤄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리더가 내 이야기를,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한다는 믿음을 주려면 당장 실천하는 데 무리가 없는 아이디어, 비즈니스의 근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이디어들부터 행동으로 옮기면 좋을 것이다. ‘작은 성공’,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조직 내에 경청의 소통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그리고 리더부터 경청하는 소통의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보잉 737 맥스 이슈 사례와 같은 기업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난맥상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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