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식 소셜밸류,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SK식 소셜밸류,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9.12.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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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①]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

[더피알=박형재 기자] SK그룹은 올해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이익과 똑같이 취급하는 DBL 경영을 선언했다. 경영철학을 바꾸니 목표의식이 변한다. 경제적 가치가 낮아도 사회적 가치가 높으면 사업을 할 수 있다. SK의 싱크탱크로서 이런 숫자를 만들어가는 곳이 사회적가치연구원이다. 나석권 연구원장을 만나 구체적인 방법론을 들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미주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재무부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청와대 행정관,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총괄과장, 통계청 통계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2017년 SK경영경제연구소에 전무급으로 이직, 올해 4월 CSES의 수장으로 취임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나석권 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미주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재무부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청와대 행정관,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총괄과장, 통계청 통계정책국장 등을 거쳤다. 2017년 SK경영경제연구소에 전무급으로 이직, 올해 4월 CSES의 수장으로 취임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재계를 비롯해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수치화해 제무재표에 반영할 경우 손해가 날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입니다. 더 나아가 주주이익 극대화가 목표죠. 그동안 기업들은 이런 목표에 충실했습니다. 사람들을 고용하고 비즈니스 성과를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너희들만 잘 먹고 잘사는 거 아니야?”라는 비판이 나오고, 피케티의 부의 불평등이나 빈곤 확대 같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워진 거죠. 기업은 영어로 하면 엔터프라이즈 컴퍼니(enterprise company)가 아니고 고잉컨선(going concern)이에요. SK그룹에서는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 가치(SV, Social Value)를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전사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회적 가치는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보편타당한 겁니다. 다만 기업에서 먼저 꺼내기 어려운 주제이기에 주변에서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KPI(핵심성과지표)에 사회적 가치 비중을 50%까지 높이는 DBL 경영을 도입한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겨났나요.

좋은 일은 누구나 하고 싶죠. 문제는 돈을 자꾸 퍼주기만 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겁니다. 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 좋은 일도 지속가능해야 하는 딜레마인거죠. 이걸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다 나온 게 DBL 전략입니다.

DBL은 경제적 성과만 표시하는 기업의 회계장부에 사회적 가치를 함께 반영하는 시스템입니다. 기존에는 제무재표에서 경제적 이익만 봤다면,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함께 보고 둘 다 의미 있는 사업을 하는 겁니다. 이는 SK그룹이 추구하고자 하는 ‘딥 체인지(Deep Change·근본적 변화)’ 전략과도 맞닿아있어요.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따라 기업도 변하지 않으면 미래 생존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최태원 SK 회장님의 지론입니다.

DBL 경영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방법론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오래된 것들, 원래 알고 있던 방법들을 새롭고 혁신적으로 보는 것(to see old thing's different ways)이고, 두 번째는 옛날에 안 보던 걸 새롭게 보는 것(to see the new thing's)입니다. 사회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기존 것을 달리 보거나 새로운 것을 발굴하면 자연스럽게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요.

기존의 것을 다르게 본 대표적인 사례가 SK 티맵(Tmap)입니다. 우선 내비게이션 앱을 통해 사람들의 교통시간이 단축되고 교통체증이 완화되며 연료가 절감됩니다. 여기까진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서비스를 하다 보니 운전자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해요. 언제 급브레이크를 밟았는지 등의 정보가 모여서 내 운전습관을 알 수 있고 이걸 보험사와 연계해 안전운전시 보험료 할인 상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안전운전자의 사고율이 더 낮으니 돈을 덜 받아도 손해가 아니고, 운전자 입장에서도 안전에 더 신경 쓰게 됩니다. 기존 방법을 좀 더 들여다보니 보험료 인하라는 새로운 가치가 생긴 거죠.

다른 사례는 LPG연료통을 스페어타이어 자리에 집어넣은 SK가스입니다. 원래 LPG택시에 있던 가스통은 트렁크 위치에 있었어요. 크기가 커서 트렁크에 다른 짐을 많이 못 싣고, 특히 휠체어를 타는 분들은 택시 이용을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SK가 고민 끝에 스페어타이어 사이즈에 맞는 가스통을 만들었어요. 예전에 경제적 가치만 생각했을 땐 튼튼하고 안전한 게 최고였다면, SV까지 생각할 경우 추가로 디자인이 달라지는 거죠. 이 역시 기존의 것을 다르게 본 거라 생각됩니다.

새롭게 본 사례는 SK이노베이션이 두산중공업과 함께 베트남 안빈섬에 추진 중인 ‘탄소제로섬(Carbon-Free Island)’이 있어요. SK이노베이션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태양열 조리기구 보급 등을 지원하고, 두산중공업은 해수담수화 시설을 설치하는 등 한국과 베트남 민관기업이 협력해 탄소 없는 지역을 만들 예정입니다. 성공모델이 만들어지면 추후 다른 지역으로 성과를 넓혀갈 수 있을 것입니다. DBL 경영 이후 사회적 가치 관점에서 사업을 발굴하다보니 석유회사가 이런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되는 거죠.

SK에너지가 경쟁사 GS칼텍스와 함께 만든 주유소 기반 택배서비스 ‘홈픽’도 마찬가지입니다. 놀고 있는 주유소 자투리 공간을 물류 집하장으로 썼어요. 주유소는 기름 넣는 곳이란 고정관념을 벗어나 주유소가 교통의 요지에 있다는 점에 착안해 다르게 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겁니다.

나 원장은 DBL 경영의 방법론으로 "오래된 것을 혁신적으로 보고, 안 보던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을 강조했다. 사진: 성혜련 기자

설명을 들으니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가 필요한 이유와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감이 잡힙니다. 다만 DBL 경영을 하면 기존 방식에 비해 비용이 많이 발생할 텐데 이런 시행착오를 내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말씀하신대로 비용이 많이 듭니다. 사회적 가치를 고민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하는데 그런 모델을 찾는 게 어렵죠. 그래서 ‘번지점프 이야기’를 많이 해요. 손해가 날거라서 아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기에 우선은 번지점프 하는 심정으로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저희는 이런 시도들을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땅 사고 기술사는 것만이 투자가 아니잖아요. 일정부분은 손해를 감수하며 가는 거죠.

그래서 작은 성공이 중요해요. 맥킨지에서 최근 10년간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을 분석했더니 약 75%의 성공사례는 3억원 이하의 작은 성공이었다고 합니다. 일선의 작은 성과를 사람들이 체감하면서 같은 목적과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것들이 합쳐져 큰 힘이 된다는 겁니다. 최태원 회장님이 올 초 말씀하신 게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SK가 전사적으로 SV를 추구하고 있는데, 여러 시도 중에 작은 성공들이 나오고 내재화되면 커다란 혁신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실 SK가 LPG가스통 만들어서 얼마나 돈을 벌겠습니까. 하지만 디자인을 바꿨더니 택시기사도 좋아하고 장애인도 좋아하고 그러다보면 하나의 스탠다드가 되는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기존 틀을 깨는 과정이 어렵고 그 성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니 측정 모델을 연구하시는 거군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객관적 지표로 측정하는 겁니까.

누군가 다이어트를 결심했어요. 매일 10분씩 운동하는데 하루 이틀은 재밌죠. 어느 순간 귀찮고 안하게 됩니다. 만일 이런 과정들이 데이터로 쌓이면 달라져요. 두 달 동안 얼마의 살을 뺐으며 앞으로 두 달 후까지 3kg을 빼면 되겠다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계획이 생깁니다.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언어인 숫자로 기록돼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다’고 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입니다.

연구원에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에요. 첫째, 측정 가능한 기업의 활동은 모두 측정한다. 기업 입장에서 마이너스 요인이라도 모두 측정해야 전체 규모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경영활동의 투입(Input)-산출(Output)-결과(Outcome)-영향(Impact) 중 결과를 측정한다. 만일 취약계층 고용 인건비로 1억원을 투입했다면 이로 인한 고용 인원수는 아웃풋이고, 결과적으로 얼마의 소득이 증가했다는 것은 아웃컴인데 이 결과값을 측정하고 있어요.(이 부분이 이상) 그 사람의 삶의 질이 얼마나 개선됐느냐 하는 임팩트까지 측정하면 좋지만 주관적인 부분이 많아서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셋째, 객관적 기준을 적용해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한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있으면 그대로 따르고, 평균값이 있으면 이를 적용합니다. 누가 봐도 객관적인 통계를 적용해서 보편타당한 기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측정한 ‘티맵의 안전운전 습관 서비스’가 창출하는 사고예방 사회적성과는 487억원입니다. 이는 ‘티맵 서비스 미사용자 평균 사고율 5.81% - 서비스 사용자 평균 사고율 4.91% X 서비스 가입자수 58만명 X 교통사고 평균 피해 처리비용 930만원’을 계산한 결과값입니다. 평균사고율은 DB손해보험 통계를 사용했고, 교통사고 피해자 처리비용은 경찰청에서 매년 발행하는 통계를 활용했어요. 이렇게 객관적인 사회적 가치 산출방식을 만들고 업데이트해나갈 계획입니다.

▷“사회공헌도 ‘GPS 접근법’ 필요하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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