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은 회사’를 원한다고요?
‘가족 같은 회사’를 원한다고요?
  • 김영묵 (brian.kim@prain.com)
  • 승인 2020.02.14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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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묵의 리더십 원포인트]
구조조정 특명 속 대표이사의 딜레마
조직 헌신-개인 충성은 다른 개념

[더피알=김영묵] 어떤 회사가 있다. 국내 대기업의 자회사로 시작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하기에는 자금력과 마케팅, 영업 역량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고, 결국 이해가 맞아떨어진 외국 회사에 매각됐다. 이 회사는 규모가 좀 더 큰 글로벌 기업에 재차 매각됐으며, 다행히 주요 제품의 생산기지로서 국내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모기업의 매출 신장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던 이 회사에 시련이 닥쳤다. ‘캐시 카우’ 역할을 해주던 제품의 판로가 외부 요인에 의해 막히게 됐고, 야심만만하게 준비해 온 신제품 출시가 막연하게 지연되는 이중의 파고에 맞닥뜨린 것이다. 최고경영자(CEO)로만 10년, 그 이전 재직기간까지 합치면 30년을 이 회사에 몸담아 온 대표에게 본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감원이 불가피하다”면서 구조조정의 특명을 내렸다.

그에게 직원은 가족과 다름없었다. 30년간, 그리고 대표이사로 재직해 온 10년간 그는 회사에 헌신했고, 가족 같은 직원들과도 부단히 소통했다. 회사 사정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잃는 직원 수를 줄이고자 본사와 치열하게 논쟁했다. 하지만 조직을 맡은 리더에게 주어진 숙명, 즉 ‘필요할 때는 칼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는’ 과제를 그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생살을 떼어내듯 고통스러웠던 1차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본사는 1차 구조조정을 시행한 지 2년 남짓한 시점에 2차 구조조정의 숙제를 내렸다. 대표이사는 비참한 심정으로 본사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으며, 두 번째 ‘숙제’를 마무리한 뒤 본인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1년의 간격을 두고 두 차례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위 회사의 이야기는 필자가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일하며 직접 겪은 사례다. 이 회사가 감원이라는, 누구든 가장 피하고 싶은 구조조정에 몰리게 된 데에는 경영자로서 대표의 책임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 대상이 돼 회사를 떠나게 된 직원들은 물론이고 ‘칼날’을 피해 회사에 남게 된 직원들의 시각은 달랐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며 옆에서 지켜본 이 대표는 조직에 헌신하고, 지위 불문 구성원들의 희로애락에 공감하는 리더의 표본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리더는 가족 같은 직원을 정리해고해야 하는 숙명도 안고 있다.
리더는 가족 같은 직원을 정리해고해야 하는 숙명도 안고 있다.

리더에 닥친 구조조정 위기 

리더(LEADEr)는 경청(Listen)할 줄 알고, 부하 직원에게 권한을 이양(Empower)할 줄 알며, 본인이 내렸던 결정을 상황에 따라 수정(Adjust)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뿐 아니라 조직에 헌신(Devote)할 줄 알고, 구성원들의 희로애락에 공감(Empathize)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고한 신념이다.

사실 그 어떤 리더도 본인이 이끄는 조직에 헌신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조직을 특정인과 동일시하고, 헌신을 특정인에 대한 ‘충성’과 혼동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는 있겠다.

오너가 있는 회사의 전문경영인을 예로 들자. 오너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오너에 충성하는 것을 ‘조직에 헌신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 전문경영인이 진정한 리더라면 오너가 추구하는 이익이 회사의 건전한 경영에 배치되는 경우 무엇이 ‘회사’를 위해 바람직한지 숙고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조직에 대한 헌신과 관련해 리더가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헌신과 ‘무분별한 희생’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많은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인이 아닌 이에게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마땅치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한 경영전략 전문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주인이 아닌 사람한테 주인의식을 강요하지 말아라. 그들에게 현실적인 ‘당근’을 제시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회사의 최고경영자라면 사심 없이 회사의 건강한 성장과 건전한 경영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직원들에게는 공정한 인사 평가와 적정한 급여로 보상 및 동기를 제공하는 게 ‘주인의식’과 ‘헌신’을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리더 본인의 헌신 역시 이러한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

헌신보다 공감 먼저   

구성원에게 주인의식과 헌신을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적정한 급여로 보상하는 것 못지않게 효과적인 기제는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개인적 문제까지 포괄), 무엇이 그들을 흥겹게 하는지, 어떤 이슈에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지 눈과 귀, 마음을 열어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격의 없이 토론하는 리더는 결코 외면당하지 않는다.

특히, 공감이라는 말에는 ‘진정성(authenticity)’이 내포돼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가식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구성원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MBWA(Management by Wandering/Walking Around)와 같은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써야 하며, 격의 없는 소통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서두에 소개했던 그 회사는 여전히 ‘도전적인’ 경영 환경 속에서 분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한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회사와 직원에게 헌신하고, 직원들의 기쁨과 아픔에 공감하려 노력했던 전 대표이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헌신했던 회사는 힘든 숙제를 내려보낸 본사가 아니라 국내 기업으로 출발했던 바로 그 회사였다.

구조조정 발표 디데이(D-day) 수개월 전부터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면서 직원들이 느낄 감정까지 고려하며 타운홀 미팅에서 발표할 원고의 낱말 하나하나 검토하던 모습은 진심으로 가족을 챙기는 가장과 다르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 본 칼럼은 필자가 외부인으로서 보고 느낀 바를 토대로 쓴 글로서, 직접 당사자인 해당 회사의 임직원 분들이 경험한 바와 상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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