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기생충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속내
트럼프가 기생충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속내
  • 김선희 칼럼니스트 (soniakim@the-pr.co.kr)
  • 승인 2020.02.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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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유세장서 의도된 비하 연출
“트럼프는 영화 마케터?” 미국 내 다양한 여론 형성
미국 우선주의·백인 우월주의 직간접적으로 드러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선거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선거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AP/뉴시스

“그나저나 올해 아카데미시상식 정말로 별로였죠? ‘작품상이 한국 영화라고! 아니 왜? 한국과의 무역 분쟁 때문에 이미 충분히 골치가 아픈데. 그런데 작품상을 줬다고? 기생충 영화 좋았나? 나는 모르겠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런 영화가 수상해야 하지 않나? 또는 ‘선셋 블레바드’(선셋 대로, 1950년 개봉작)? 좋은 우리 영화가 그리도 많은데 한국 영화가 오스카를 차지했다고. 난 그저 최고의 해외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최고의 해외영화, 이런 일이 예전에 있었나요?”

By the way, how bad were the Academy Awards this year? 'And the winner is a movie from South Korea. What the hell was that all about? We've got enough problems with South Korea with trade. On top of that, they give them the best movie of the year? Was it good? I don't know. I'm looking for like, let's get 'Gone with the Wind.' Can we get 'Gone with the Wind' back, please? 'Sunset Boulevard'? So many great movies." The winner is from South Korea, I thought it was best foreign movie. Best Foreign movie, was this ever happened before?”

[더피알=김선희] 지난 2월 20일 미 콜로라도스 프링스에서 열린 선거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중 난데 없이 던진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맥락 없는 돌출 발언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일국의 대통령이 유치한 소리를 하는데도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보면서, 4년 전 트럼프가 다수의 예측을 뒤엎고 어떻게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었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콜로라도뿐 아니라 라스베이거스에서까지 이틀 연속 영화 ‘기생충’ 관련 발언을 했다. 언론들은 그의 편협한 생각을 맹비난했고 미국 내 다양한 여론도 형성됐다. 어떻게 보면 아카데미로 화제에 오른 기생충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했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오스카 4관왕’ 기생충과 CJ의 역할

온라인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말과 그 의미를 살펴보자.
 

“Parasite, Trump’s Family Story” : 기생충, 트럼프 가족 이야기

많은 미국인이 기생충을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그린 영화라 한다. 트럼프 일가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백악관을 차지했는지, 실제 스토리를 기반해 ‘미국판 기생충’을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강호 말고 트럼프가 기생충 주인공이어야 했는데, 그가 출연하지 못해 짜증이나 기생충을 연일 비판한다고 비꼬는 이야기도 있다.
 

“Racist, Slavery, xenophobia” : 인종차별주의, 노예, 외국인 혐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의 삶이 노출되는 인종차별 영화로 미국 내에서 오랫동안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럼프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언급한 속내에 대한 여러 해석과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종차별적 호소로 백인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트럼프의 면모라는 평가가 많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취향에 맞는 또 다른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고도 말한다.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 1914)과 ‘1915’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 인종차별주의를 대표하는 영화로 꼽힌다.
 

“Can’t Read” “Stupid” : 자막을 읽을 수 없다. 무식해

트럼프는 무식해서 2시간 동안 자막을 읽으면서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조롱 섞인 말이다. 독해력이 떨어지기에 한국 영화 기생충이 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했는지 이해를 못 한다는 것. 같은 이유로 트럼프는 대사가 적은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비판자들은 트럼프가 무식해서 아무 말을 막 던지며, 영화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어 수십 년 전에 개봉해 미국 내에서도 인종차별로 비난받는 영화를 치켜세운다고 지적한다.
 

“Movie Marketing’” : 기생충 마케팅

트럼프의 콜로라도 발언은 주요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전파됐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기생충 영화 마케터로 활약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기생충은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데, 실제로 지난 주말 관객들이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의 노이즈 마케팅에 힘입어 기생충은 미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하며 미국에서만 현재 5000만 달러 이상의 티켓판매액을 올리고 있다. 영국을 포함해 유럽에서도 지속적으로 관객이 늘어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역대 한국 영화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기생충 포스터(왼쪽)를 패러디한 트럼프 모습.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기생충 포스터(왼쪽)를 패러디한 트럼프 모습.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이 외에도 트럼프가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이 불편한 여러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일단 ‘Made by South Korea’라는 점이 그렇다.

트럼프는 47초의 기생충 관련 짧은 발언 내용에 “한국의 영화”, “한국”이라고 한국을 두 번이나 언급했다. 영화 자체뿐 아니라 다른 이유로 한국이 거슬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산업, 문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삼성전자의 존재다. 삼성은 휴대폰과 TV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 애플을 제치고 휴대폰과 가전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삼성이 ‘미국 우선주의자’ 입장에선 무척이나 얄미울 것이다.

전 세계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는 BTS(방탄소년단)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이 선도하는 음악 시장에서 전례 없는 돌풍으로 K팝 신화를 쓰는 BTS가 눈엣가시 같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들만의 리그’로 평가된 아카데미마저 한국 영화가 장악했으니 불편한 심정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미국 제국주의자인 트럼프에게 한국이라는 작은 아시아 국가가 얼마나 거슬리는 존재인지를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전직 대통령 오바마에 ‘의문의 1패’

재선에 도저하는 트럼프가 2020년 기생충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을 불편해하는 정치적 이유도 추론해 볼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시행한 모든 정책을 무시하고 새로운 정책과 입법을 추진하는 행보를 취해 왔다.

오바마는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서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는 인사다. 자국민들에게조차 적잖이 미움받는 트럼프 입장에선 질투의 대상이자 지워야 할 그림자인 셈.

그런데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미국인 공장(American Factory)’이라는 작품이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으면서다.

이 다큐는 73세 줄리아 라이허트(Julia Reichert)라는 암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기획, 제작한 것이다. 그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락 오바마 부부의 진심 어린 응원 덕분에 용기를 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 두 분(오바마 부부)을 존경한다. 그들이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단순한 글이 아니라 손글씨로 진심과 사랑을 담은 격려였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다시 살고 싶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간접적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하며 호감 이미지로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트럼프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더욱 싫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얘기할 순 없으니, 오스카의 새 역사를 쓴 기생충과 한국을 핑계로 간접적으로 불쾌한 심기를 토로한 것이 아닐까.

▷함께 보면 좋은 기사: [트럼프 캠페인 복기 ①] 의도된 막말

미국 대선은 전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정치 이벤트다. 그런 대형 무대 위에서 돌출 발언으로 팬과 안티팬을 공고히 하는 트럼프식 화법이 미 유권자들에 어떻게 다가설지 11월의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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