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겸손하기 어려운 이유
리더가 겸손하기 어려운 이유
  • 김영묵 (brian.kim@prain.com)
  • 승인 2020.02.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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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묵의 리더십 원포인트]
부드러운 카리스마…낮추지 말고 덜 내세워야

[더피알=김영묵]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지배했던 칭기즈칸. 그는 부하들에게 “나를 부를 때 ‘님’이나 ‘주군’과 같은 호칭을 달지 말고, 그냥 이름(테무친)을 불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는 대제국의 지도자였음에도 부하들과 다름없이 입고 먹었으며, 자기 것을 공유하는 등 검소한 삶, 공평한 삶을 추구한 지도자로 역사가들은 기록했다.

지난 2018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최고의 보스는 겸손한 보스’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오늘날 중시되는 리더십 덕목 가운데 하나로 겸손(humility)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리더(혹은 보스)에 연상되는 이미지는 ‘카리스마 넘치고, 전지전능하며, 냉철한 사람’이 보편적일 테지만, 나날이 복잡 다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는 겸손한 리더가 조직을 더 효율적·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카리스마 넘치는 전지전능한 리더는 과거의 상(象)일뿐 현실에 맞지 않다.
카리스마 넘치는 전지전능한 리더는 과거의 상(象)일뿐 현실에 맞지 않다.

모순적인 듯하지만 이미 대중의 입에 익어버린 표현, 즉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일컬어질 법한 겸손한 리더가 오늘날 왜 각광을 받을까. 기술은 빠르게 끊임없이 발전하고, 이에 발맞춰 산업은 경계 없이 재편되고 있으며, 새롭게 사회에 진입하는 세대의 지식과 사고, 역량은 갈수록 다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속도로, 전방위적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는 그 누구도 완벽하게 홀로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판단하며 책임질 수 없다. 최고의 리더조차도.

존경 대신 존중으로

기술 발전의 동향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하려면 ‘학습하는 조직(learning organization)’이 돼야 한다.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팀플레이가 필수적이다. 학습하는 조직의 정점에 리더가 있어야 하며, 팀워크를 다져야 하는 사람이 리더여야 한다. 부단하게 학습하는 조직과 훌륭한 팀워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respect)하는 자세, 겸손한 자세 없이는 어렵다.

‘LEADER’는 경청(Listen)할 줄 알고, 부하 직원에게 권한을 이양(Empower)할 줄 알며, 본인이 내렸던 결정을 상황에 따라 수정(Adjust)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울러 조직에 헌신(Devote)하고, 구성원들의 희로애락에 공감(Empathize)하며, 그들을 존중(Respect)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일부러 ‘존경’ 대신 ‘존중’이라고 표현했다. 사전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지만, 존경은 지위로든 나이로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반면, 존중은 ‘상호 대등하고, 공평한 입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끄는 구성원을 존경하라고 하기보다는 ‘존중하라’고 하는 게 리더에게 거부감을 덜 일으키고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주위엔 겸손한 리더, 부하 직원을 존중하는 리더보다는 권위를 앞세우거나 수직적 위계를 내세우는 리더가 여전히 많아 보인다. 달리 말하면,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스타일이 조직의 리더 자리에 오르는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실제 그럴 수도 있지만, 충분히 겸손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내면의 ‘자질’을 드러내지 못하는 탓도 있으리라.

승진가도를 달려와 리더가 되면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충분히 역량을 갖고 있고, 이제야 내가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왔는데 왜 겸손을 떨어야 해?’라는 생각을 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그리고 이전 칼럼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것처럼 지금은 전지전능한 리더가 있을 수 없는 환경이므로 낡은 생각과 경직된 태도는 접어두고 겸손의 미덕을 갖춘 리더십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겸손=유약함?

많은 리더들이 여전히 카리스마형 리더십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겸손=유약함’으로 정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럴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리더가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기만 하고, 여러 가능성을 두루 살피기만 한다면 문제다. 그것은 유약함 정도가 아니라 책임 회피요 직무 유기인 것이다. 왜냐하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바로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겸손한 리더는 리더에게 주어진 이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의사결정에 이르는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리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겸손한 리더는 ‘외유내유(外柔內柔)’ 스타일이 아닌 ‘외유내강(外柔內剛)’ 스타일이어야 한다.

자신이 겸손한 리더의 부류에 속하는지 여부를 알아볼 수는 없을까? 서두에 언급한 WSJ 칼럼은 미국의 인성분석 및 인력개발 컨설팅펌인 호건 어세스먼츠(Hogan Assessments)가 제시하는 질문들을 소개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여기에서 예시하고자 한다.

“나는 업무와 관련해 다른 사람의 조언에 고마움을 표시하는가?”, “누군가 내가 이룬 성과를 무시하면 나는 언짢은 감정을 느끼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는가?”

첫 번째 질문에는 긍정 대답을,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는 부정 대답을 하는 사람은 겸손한 리더의 자질을 가진 반면, 반대의 경우 겸손한 리더가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 겸손한 리더는 본인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으로부터 필요한 지식과 조언을 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며,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으며, 동료나 부하 직원의 성취를 인정하고 축하하며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인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C.S 루이스의 명언으로 이번 칼럼을 갈무리하려 한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어 여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덜 내세우는(자아에 덜 몰입하는) 것이다(Humility is not thinking less of yourself, it’s thinking of yourself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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