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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인의 밥상] 집착 내려놓게 만든 선짓국
[홍보인의 밥상] 집착 내려놓게 만든 선짓국
  • 조고은 (thepr@the-pr.co.kr)
  • 승인 2020.03.05 13: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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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B투자증권 홍보팀 조고은

‘홍보인의 밥상’은 일선 실무자들이 참여해 꾸려가는 릴레이식 코너입니다.

[더피알=조고은] 처음 홍보일에 입문했을 때 사보기자로 일하며 전국 방방곡곡의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느 날에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기분으로 스테이크를 썰기도 했지만, 어느 날에는 회장님을 모시는 자리에서 12첩 반상을 두고 온갖 나물을 섞은 비빔밥을 먹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메뉴에 대한 주제로 분위기를 이끌어나가곤 했지만, 단 한 번도 배부르게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내가 상대해야 했던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부장, 팀장급들이었다. 초짜였던 나는 늘 긴장상태였다. 달달 외웠던 인터뷰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인터뷰이들은 “맛이 없나 봐요”하고 내 의중을 살폈다. 긴장하고 있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내 맛있는 척,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을 입에 넣었다.

결국 더부룩한 속을 붙잡고 약국에 들르는 날도 있었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오늘 인터뷰를 잘 진행했는지’에 대해 자기 검열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밥’이 아니라 ‘인터뷰’를 잘 소화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짓국을 먹으며 인터뷰할 일이 생겼다. 나름 먹성 좋다고 자부하는 내가 유일하게 먹지 못하는 음식이 선지였다. 선지라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인터뷰이였고, 심지어 찾아가는 그 선짓국 집의 선지 맛을 홍보해야 하는 업무도 하달 받았다. 그러니 나는 인터뷰 말고도 '선지'를 소화해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선짓국을 잘 먹지 못한다. 필자 제공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선짓국을 잘 먹지 못한다. 필자 제공

선짓국 집에서 만난 인터뷰이는 나를 보자마자 “먹을 수 있겠어요?”하고 물었고, 나는 최대한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심장은 두근거렸)다. 선짓국을 영접하자마자 인터뷰이는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직접 먹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선지의 식감과 냄새, 목 넘김의 느낌까지 생생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선지의 맛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먹기 두려울 수 있다”는 말을 보태며 수저만 들고 선짓국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나를 다독였다.

그 다독임이 어쩐지 “지금 잘 하고 있어, 괜찮아”와 같은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자연스레 마음이 편해졌고, 나도 모르게 선짓국을 한 술 떴다. 그리고 나는 그 선짓국 집만의 쫄깃한 선지의 식감을 느끼며 만족스러운 식사와 인터뷰를 끝냈다.

나는 매번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시간은 늘 한정적이었고, 그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안간힘을 썼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고, 언제나 조바심을 가졌다. 당연히 매끄럽지 못한 진행이었을 것이고, 질문을 받는 인터뷰이들도 조심스럽고 불편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인터뷰이들에 대해 무조건 다 알아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은 것에서부터 편안한 마음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새로운 사람과 상황을 경험하지 않고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일이 적어졌다. 늘 상대방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집착했지만, 이제는 많지 않은 이야기들 중 핵심을 잡아 기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꺼내며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기술도 생겼다.

내가 그날 선짓국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사실이다. 인터뷰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그의 마음속 깊은 배려심도 느낄 수 있었고, 인생에 있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식사를 하는 데 있어 어떤 음식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원치 않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식사를 한다 하더라도, 그저 그 시간에 식사를 하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면 그 자리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우치게 하는 식사 자리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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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2020-03-05 15:38:43
훌륭해요

선짓국 못 먹는 홍보인 2020-03-05 15:36:22
밀레니얼 홍보인들은 좀 어려운 메뉴긴 하죠. 홍보인들은 정말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어야 하죠. 우리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