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에 익숙한 우리가 사이버 강의에 적응 못하는 이유
디지털에 익숙한 우리가 사이버 강의에 적응 못하는 이유
  • 김진환 (jh85110@gmail.com)
  • 승인 2020.03.24 13: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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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학생도 교수도 실시간 혼란
서버·장비 준비 안돼…질 낮은 수업에 등록금 인하 움직임도
대학에서 사상 첫 사이버 개강이 시작됐지만, 시작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사상 첫 사이버 개강이 시작됐지만, 시작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더피알=김진환 대학생 기자] 개강 첫날,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서 구축한 사이버 강의 서버로 접속한다. 입학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누르는 순간, ‘변환된 파일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백색의 화면이 나를 반긴다.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들어가 상황을 살펴보니 ‘동시간대 접속자가 너무 많아서 서버가 터졌다’, ‘영상이 올라오지도 않았다’는 등 학생들의 당황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곧이어 학교 측에서 “서버가 불안정해 주말까지 복구작업이 진행된다”며 “유튜브 링크를 통해 강의를 들어주시기 바란다”는 문자가 왔다. 그렇게 나의 1학기 첫 수업은 유튜브로 진행됐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동영상 녹화 방법도 모르는데…” 언택트 강의 대학가 혼란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교육부의 개학 연기 지침이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대학들도 사이버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개강 첫날에 수업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감염병 정국에 따른 유례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디지털 시대를 너무나도 ‘잘’ 살아가고 있는 20대마저 이토록 디지털 수업에 적응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사이버 개강을 경험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대학교의 경우 전교생이 2만명이 넘어요. 전교생이 사이버 강의 사이트에 동시 접속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문제는 학교에서는 서버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공지가 없었다는 겁니다. 학생들은 우왕좌왕하고 있고, 강의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으면 결석 처리된다고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전ㅇㅇ, 25, 대학생

제가 듣는 전공 수업의 경우 교수님과 실시간으로 진행됐는데요. 교수님께서 연세가 있으셔서 장비를 다루는 데 서투셨어요. 수업 중에 연결 문제로 화면이 보이지 않거나 갑자기 버퍼링 때문에 멈춰서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일방향적인 소통으로 진행되다 보니 매 수업 후기를 리포트로 제출하라고 합니다.

우ㅇㅇ, 23, 대학생

현재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사이버 강의 시스템과 서버가 너무 형편없습니다. 등록금도 비싼데, 그에 걸맞은 교육과정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모든 전공과 교양수업을 사이버 강의로 들으려니 막막합니다. 현장 강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어요. 개강 연기 및 사이버 강의 대체로 인한 등록금 인하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저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신ㅇㅇ, 22, 대학생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온라인 강의 도중 고양이가 화면을 가렸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온라인 강의 도중 고양이(떼껄룩: 게임 캐릭터에서 파생된 온라인 유행어)가 화면을 가렸다.

그밖에 마이크를 끄지 않아 집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일까지 학생들에게 알려지고, 반려동물 난입과 짖음으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SNS를 통해 유머로 승화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이버 강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현장 강의보다 사이버 강의가 효율적이고 괜찮은 것 같습니다. 통학 시간이 왕복 3시간이 넘는데 사이버 강의를 들으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물론 수업의 집중도는 떨어질 수 있으나 이것도 계속하다 보면 적응될 것 같아요.

김ㅇㅇ 26 대학생

디지털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게 온라인 강의는 곧 다가올 현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예행연습 없이 갑작스레 맞이한 사이버 개강은 갖가지 혼선을 불러왔다. 있다.

전국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을 활용한 사이버 강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학생들 사이 괜찮은 평가를 받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 19 사태가 언제 종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정작 디지털 시대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언제 해소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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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연 2020-03-24 21:11:38
글이 너무 좋군요 잘 읽었습니다 좋아요랑 구독 알람설정까지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