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와 아싸, 유희에서 쟁탈전으로
인싸와 아싸, 유희에서 쟁탈전으로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0.04.14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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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는 흔하고 비주류 특별하다는 현상에서 기인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데서 그쳐야

인싸들이 아싸를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빛나는 연애경력, 교우관계만 갖고는 성에 안 차 아싸 생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아싸를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더피알=정수환 기자] 한 네티즌이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 중 일부를 패러디한 대목이다. 아싸(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의 준말)들이 인싸(무리에 잘 어울려 모임을 주도하는 ‘인사이더’의 준말)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기성 세대 시각에서 보면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신경전’이지만, 젊은 세대가 뛰노는 온라인 생태계에선 요즘 뜨거운 화두다.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일까.

'아싸'임을 자처하는 연예인들. 방송 캡처.
'아싸'임을 자처하는 연예인들. 방송 캡처.

역전된 ‘싸’자리

“얼굴이 잘생겼고 예쁘다. 20번 이상 고백을 받아봤으며, 연애는 7번 했다. 연애를 1년 이상 하지 않아 모쏠인 상태다.”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아싸들의 모습이다. 이게 어떻게 아싸냐는 물음이 따라다니지만 그들은 자신을 아싸라고 칭한다.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찐따’(못난이를 의미하는 속어)라며 올라오는 사진의 주인공은 잘생긴 남성 아이돌이 안경을 낀 모습일 때가 많다. 유튜브에서도 아싸라 자신을 소개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브이로그를 올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방송에 나온 아싸의 기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방송에 나온 아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진짜 아싸임을 자처하는 한 20대 남성은 “아싸가 브이로그라니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정말 아싸는 SNS도 모두 비공개로 돌린다”며 “웹상에서 공감 담론에 밀린 인싸들이 아싸 코스프레를 하면서 ‘너는 아싸가 아니잖아. 친구도 많고 잘 놀지 않아?’라는 위로를 듣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불편해했다.

다소 모순적인 이런 현상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여태까지는 주류와 비주류라고 하면 주류가 되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요즘은 역전이 됐다. 오히려 주류를 특징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비주류를 택하는 현상이 많아진 것”이라며 “인싸와 아싸에 대한 담론 역시 비슷한 형태”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아싸 관련 콘텐츠가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 유행한다. 최근에는 ‘아싸 빙고’라는 챌린지까지 등장했다. ‘공강 시간에 갈 곳이 없어서 떠돌아 댕김’, ‘부모님이 친구없냐고 물어본 적 O’, ‘최근 카톡 목록 80% 이상 플친, 가족임’, ‘과제, 시험 물어볼 친구 없어서 손해본 적 있음’ 등의 웃픈 상황을 포함해 25개의 항목으로 빙고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아싸 빙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아싸 빙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여론이 모이는 유튜브나 커뮤니티, 트위터 등에서도 아싸 콘텐츠가 다양하게 올라온다. 외려 인싸는 부정적 모습으로 비춰질 때도 많다. 가령 ‘코로나 시국에 클럽을 가는 인싸’, ‘챌린지에 미친 인싸’ 등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형태로 공감 받고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인싸들이 스스로 아싸를 자처하는 게 아니냐는 불편한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역으로 원래 아싸로 여겨지던 문화를 ‘인싸화’하는 마케팅 사례도 존재한다. 

카카오게임즈는 ‘프린세스 커넥트 Re : Dive’라는 게임을 광고하며 ‘요즘 인싸게임 1주년 수준’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언뜻 평범한 게임 광고로 비쳐지지만, 온라인 문화를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싸 쟁탈전’을 활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덕후’(일본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오타쿠’라는 말에서 유래)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2D 게임을 ‘인싸’로 포장한 반어적 표현인 것이다. 

프린세스 커넥트 Re : Dive 게임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프린세스 커넥트 Re : Dive 게임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카카오게임즈 홍보담당자는 해당 기획에 대해 “이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잘 반영해 일명 ‘갓게임’이라는 명칭이 붙었고, 연장선상에서 인싸 게임이라는 말이 나왔다”면서 “2차원 게임은 본래 마니아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요즘 트렌드는 한 가지에 몰입하는 덕후들이 인싸가 돼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각광을 받기에 이런 추세도 함께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유희가 감정 싸움으로

처음에는 인싸와 아싸가 동일권력(?)을 갖고 서로 역전하며 즐기는, 일종의 놀이처럼 비쳐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툼으로까지 비화되는 분위기다. 장난을 넘어 실제로 불편한 지점이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인싸/아싸 드립이 유행하니까 그냥 유행에 따라 옷 바꿔입듯이 정체성 갈아입는 거, 역겹다. 누군가에겐 정말 큰 고민일 수 있는 가난과 사회적 고립이 그들에겐 그냥 패션이고 유행이고 몇 번 입다 버릴 옷일 뿐 인거다”는 불만글이 올라왔다.

이 작성자는 “아싸 브이로거’들은 아마도, 인싸 아싸 드립이 재미없어질 때쯤이면 다른 유행, 다른 패션에 들러붙어 그것이 자기 자신인 양 하고 다닐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웃어 넘길 수 있는 흐름에까지 과도한 의미와 해석을 붙여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브이로그를 올린 유튜버들을 공격하는 선을 넘는 행동들이 나오자 피로감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싸’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영상을 올린 한 유튜버는 일부의 비판이 거세지자 “일년 내내 친구 없이 밥도 혼자 시켜먹거나 안 먹고 편의점에서 혼자 사먹었다. 친구도 없이 작업하고 야작하느라 입에 거미줄 칠 것 같았는데 당신들이 뭐라고 조롱하냐”며 반박했다. 이 유튜버의 댓글창에는 실제로 ‘왜 아싸를 빼앗냐’며 욕을 하는 댓글들이 다수 올라왔고, 결국 댓글창을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제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것이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비주류로 불리는 아싸가 이런 현상에 대해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은 비주류로서도 자부심이 있다는 것”이라며 “결국 인싸와 아싸의 문제가 아닌 취향의 문제다. 마이너한 것도 개성으로 표현이 되는 시대에서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야지, 박탈감을 느낄 일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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