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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인의 밥상] 감동의 도가니탕
[홍보인의 밥상] 감동의 도가니탕
  • 강태명 (thepr@the-pr.co.kr)
  • 승인 2020.04.1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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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명 피알원 S&P본부 컨설팅팀

[더피알=강태명] 사회초년생에게 길잡이가 돼 주는 선배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후배의 실수를 감싸주면서도 쓴소리 또한 잊지 않는 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게도 그런 선배가 있다. 지금도 힘들 때면 그를 떠올리곤 하는데, 이렇듯 각별한 이유는 잊지 못할 한 끼 식사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때는 2014년 여름. 연예부 인턴기자로 일한 지 5개월 가량 지났을 무렵이다. 현장을 오가는 선배들을 부러워하던 내게 좋은 기회가 왔다. 한 선배가 출산휴가로 자리를 비우게 됐고, 그 자리를 대신해 정식 취재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내게도 ‘사수’가 생겼고, 함께 취재현장을 다니며 많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문제는 술이었다. 모 가수의 신곡 쇼케이스가 끝난 뒤의 간단한 저녁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만난 분들과 술잔을 나누며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니 ‘알코올 자가 조절 능력’이 예상보다 빨리 상실됐다. 쓰디 쓴 소주맛을 지우려 ‘안줏발’ 세우랴 다른 분들과 얘기도 나누랴, 정말 입이 두 개였으면 싶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초점을 잃은 눈빛 때문이었을까. ‘집에 먼저 들어가라’고 배려해 준 사수 덕분에 먼저 귀가조치 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사수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깼다. 수 통의 전화를 놓친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오전 10시였다. 수화기 너머로 험한 말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부랴부랴 준비 후 혼날 각오로 출근했는데 웬걸, 전화와 달리 사수는 별 말이 없었다. 그저 “해장하러 가자”며 도가니탕 맛집으로 나를 이끌 뿐이었다.

그때 그 도가니탕을 먹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자료사진)

식당에서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격려 겸 잔소리가 이어졌다. 팀장님 대신 대표로 크게 혼낸 것이니 기 죽지 말라고, 같은 실수를 두 번 안 하면 된다고. 나 또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술에 약하다고,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려고 어떤 말이든 꺼낸 것이라고, 입이 두 개였으면 싶었다고. 돌아온 사수의 답변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실속 없이 말 많은 사람과 한 번 만나는 것보다, 말이 적어도 오래 볼 수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법이니 부담 갖지 마.

사수의 따뜻한 격려에 위축된 마음이 안정됐다. 때마침 나온 도가니탕을 한 숟갈 입에 떠넣자 그 개운한 맛에 한층 더 속이 풀렸다.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그때의 격한(?) 감동 덕분일까. 이제 내게도 후배가 생겼고, 후배와 대화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식사자리로 도가니탕집을 찾곤 한다. 도가니탕 전문점을 찾기 어려운 게 아쉽긴 하지만, 뜨끈한 국밥집이라도 좋다. 펄펄 끓는 뚝배기가 나올 때까지, 그리고 뜨거운 국물을 식히는 동안 오롯이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다.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국밥처럼 나의 말 한 마디가 후배의 마음을 채워줬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 그랬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충무로 황소집에서 사수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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