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상표 선점 당했다면
중국에서 상표 선점 당했다면
  • 유성원 (david@jeeshim.com)
  • 승인 2020.04.16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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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원 지식재산 Coaching] 한류 열풍 타고 상표 브로커도 기승
선출원주의 악용에 중국 내 기류도 달라져…주지저명성→악의성 입증 싸움으로
한류를 타고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활발해진 가운데 악의적 상표 브로커들의 활동도 기승을 부린다.
한류를 타고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이 활발해진 가운데 악의적 상표 브로커들의 활동도 기승을 부린다.

“첫 눈 오는 날엔, 치킨에 맥주인데…”

[더피알=유성원] 전지현의 이 한마디는 정말 강력했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지 않던 중국인들의 식습관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는 외국에서 유행한 한류 드라마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의 단순한 전파를 넘어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국의 외식, 뷰티, 패션 분야 산업도 함께 해외로 동반 진출하는 기폭제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별그대 이후로 수많은 한국의 화장품, 외식 프랜차이즈, 패션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동시에 부작용도 있었다. 여러 업종의 많은 기업이 중국에서의 대박을 꿈꾸며 진출했지만, 자신들의 브랜드에 대한 상표권 보호는 미처 해놓지 않은 탓에 중국 전문 브로커들에게 상표권을 선점당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들은 중국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한국에서 유행하는 제품들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악의적인 상표 브로커들은 한국에서 조금씩 뜨고 있다는 브랜드들을 먼저 상표출원해 중국 상표권을 획득하고, 중국 진출을 시도하는 기업들에게 상표권 양도 대가로 수억에서 수십억원대의 돈을 요구하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상표 브로커인 조선족 김모 씨의 경우 선점한 상표권을 대량으로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우리나라 각 산업 분야 협회들에 직접 연락해 자신을 초청해 중국 상표권 강연회를 조직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거기서 자신을 중국 상표전문가로 소개해 상표권 판매를 대규모로 진행하려는 대담한 생각이었다.

선출원주의 원칙 악용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 상표법들은 선출원주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먼저 상표권 출원을 신청한 자에게 우선해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당시 중국의 상표법 및 판례상 악의적인 상표 브로커들을 제재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이러한 문제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다만 브로커의 상표권 선점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미국, 유럽 등의 글로벌 회사들, 그리고 중국 기업들조차 골치를 썩고 있었기에 중국 내에서도 상표권을 둘러싼 폐단을 시정해야 한다는 지식재산분야 전문가들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었다.

이같은 흐름으로 2016년 말부터는 악의적 상표 브로커들을 제한하는 판례와 해석례들이 중국에서 속속 발견됐다. 악의적 꾼들과 돈으로 협상하지 않고 상표무효심판 등을 제기해 단호하게 법적 대응을 했던 사건들이 승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2017년에는 “진실한 사용 의사 없이 타인의 상표를 대량으로 선점하는 자”에게는 상표권을 허여하지 않는다는 심리 기준도 발표돼 상표 브로커들을 상대로 한 단호한 법적 대응이 더욱 힘을 받게 됐다.

과거에는 상표를 선점당하는 경우 해당 상표가 중국 내에서 어느 정도 주지저명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선점 악의성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선점당한 상표가 한국 내에서는 어느 정도 주지저명하더라도 중국에서는 인지도가 미미하거나 증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심판부의 판결들을 살펴보면, 선점당한 상표의 중국 내 주지저명성과는 상관없이 ‘선점자의 악의성’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즉 선점자의 악의성이 어느 정도 입증이 되는 경우 해당 상표의 중국 내 주지저명도와 상관없이 상표를 무효시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선점당한 브랜드의 주지저명성을 입증하려 애쓰기보다는 상표를 빼앗아간 자의 악의성을 드러낼 수 있는 증거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인지도 입증보다 악의성에 집중

필자가 수행한 최근 사건의 경우 한국의 핸드백, 의류 등 패션브랜드를 전문으로 선점하는 브로커와 수백만원대 고급 구체관절인형 브랜드 선점에 집중하는 브로커를 상대하는 것이었다. 기존 브랜드들의 인지도가 다소 부족할 뿐 아니라, 브로커들이 직접 해당 브랜드를 부착한 정교한 모조품들을 제작해 자신이 운영하는 쇼핑몰 또는 타오바오 등에서 판매 활동을 하고 있어서 승소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이에 해당 브랜드의 인지도 입증을 위해 애쓰기보다는 상표 선점자의 판매 활동 내역을 집중 조사, 상표법의 공정질서를 해치는 악의적 권리자임을 입증하는 데 집중했다. 해당 제품의 동호회나 커뮤니티에서의 상표 선점자 제품에 대한 평판, SNS 활동 내역, 판매 페이지, 구매자가 상품을 사는 과정에서 상표 선점자와 주고받는 대화 내용, 실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의 모조품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또한, 문제의 선점자가 대량으로 상표권을 획득하고 있는 것을 숨기기 위해 여러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페이퍼컴퍼니들에 상표권들을 분산 보유하고 있는 정황들도 조사해 악의성을 조명하는 데 주력했다.

결국 31건의 상표무효심판에서 모두 승소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중국 상표국은 악의적 브로커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해당 권리자들이 그 이후 출원한 상표들에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중국 상표국에 의해 자체 거절되는 결과도 얻어냈다.

이제는 중국 상표 브로커들에 대한 단호한 법적 대응을 위한 전략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표권을 빼앗긴 경우 무조건 해외진출을 포기하거나, 브랜드를 변경하거나, 브로커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상표를 사와야 하는 억울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반대편에서 브로커들도 날로 지능화되고 있다.

따라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상표출원과 권리확보다.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해당국가에 빠르고 과감한 상표출원을 진행하는 것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피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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