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안 일어났으니 이번엔 무슨 기사를?
전쟁이 안 일어났으니 이번엔 무슨 기사를?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20.04.24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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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매체들 커뮤니티발 퍼나르기로 클릭 유도
감염병 위기 속 위험한 기사, 흥미성으로 쉽게 소비

[더피알=강미혜 기자] 며칠 전 페이스북 피드에 추천 게시물로 ‘예언 기사’ 하나가 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퍼져나가는 와중에 한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기사화한 것이었다.

스쳐지나가기엔 제목이나 편집이 대단히 유혹적이었다. 김정은 얼굴과 한국 전쟁 모습을 나란히 배치한 사진과 함께 ‘“23일 제2차 한국 전쟁 발발한다” 김정은 중태설에 재조명되는 전대숲 예언 글’이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SNS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전쟁 예언 기사. 페이스북 화면 캡처

클릭해 보니 커뮤니티발 소식이었다. 익명의 글을 친절히 옮겨 적어 구성된 기사는 하단에 “다만 이 글쓴이의 예언대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 군은 북한에 아직 주목할 만한 특이 동향이 없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여져 있었다. 기사를 스크롤해서 제대로 읽지 않았으면 놓쳤을 핵심 내용이다.

“날짜까지 예언했다”는 멘트와 함께 기사 링크를 공유한 게시물에는 무려 2만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공유만도 700번 넘게 이뤄졌다. 많은 이용자들이 ‘허언증’으로 치부하며 믿지 않는 반응을 보였지만, 개중엔 ‘전쟁’이라는 단어를 농담거리 안주로 삼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 국민이 힘들어 하는 와중에 누구에도 도움 되지 않는, 오히려 누군가에겐 막연한 공포감을 주는 위험한 기사가 재미로 쉽게 소비되고 있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하고 페이스북에 공유한 곳은 인터넷 매체 인사이트다. 흥미 위주의 연성기사를 대량으로 생산해 SNS를 기반으로 확산시키는 뉴미디어다. 지난해 공영방송 KBS 프로그램에서 ‘기생언론’으로 지목되며 선정성을 지적 받은 곳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KBS ‘기생언론’ 저격에 “속 시원 vs 성 안차”

흥미로운 점은 ‘전쟁 예언’을 기사로 쓴 곳이 인사이트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포털뉴스에서 검색해 보면 ‘전대숲 익명 제보자 “내일(23일) 제2차 한국 전쟁 일어납니다”’(위키트리), ‘[와글와글 커뮤니티] “내일 새벽 전쟁이 일어납니다”’(경기일보) 등의 기사도 볼 수 있다. 모두 동일한 날에 동일 소스를 활용해 작성됐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전쟁 예언' 글을 같은날 동시에 기사화한 매체들. 온라인 화면 캡처
커뮤니티에 올라온 '전쟁 예언' 글을 같은날 동시에 기사화한 매체들. 온라인 화면 캡처

공교롭게도 위키트리의 경우 인사이트와 함께 ‘기생언론’으로 도마에 오른 이력이 있다. 타 언론사 기사를 적당히 짜깁기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의존해 자극적·가십성 기사를 양산해낸다는 이유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공개적으로 ‘기생 딱지’가 붙은 당시 위키트리는 입장문을 통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개선에 필요한 조치를 해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 커뮤니티발 소모적 기사는 계속 생산되고 있다.

감염병 위기로 가뜩이나 사회가 혼란한 상황에서 전쟁 가능성을 진지하게 언급한 ‘관종글’을 복붙해 기사로 퍼뜨리는 행태는 기생을 넘어 ‘해악’에 가까워 보인다.

그럼에도 일단 바이럴 효과는 봤으니 내친김에 후속기사를 고려할지 모를 일이다. ‘제2차 한국전쟁 난다더니…빗나간 예언’ 정도의 심심한 제목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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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3 2020-05-06 16:21:21
믿고 거르는 위키트리,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