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같은 조직은 위험하다
생각이 같은 조직은 위험하다
  • 김영묵 (brian.kim@prain.com)
  • 승인 2020.04.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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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묵의 리더십 원포인트]
심적 안정감이 성장 자양분 빼앗아
의사결정자 중심 파편화·파벌문화 경계

[더피알=김영묵] 가톨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추기경 한 사람이 직을 내려놓고 평신부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관철하기 위해 교황을 알현할 요량으로 대서양을 건너 로마로 날아간다. 교황은 그에게 오히려 더 충격적인 말을 건넨다. “내가 교황직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후계자로는 당신이 적임이라고 확신합니다.”

역사적 교황 승계를 다룬 영화 '두 교황'의 한 장면. 

추기경직에서 사임하겠다며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로마로 날아가 교황과 담판을 지으려 했던 이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고, 자신을 찾아온 추기경에게 2천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네 번째로 생전에 자진 퇴위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던 이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다.

이 같은 역사적 교황 승계 스토리를 다룬 영화 ‘두 교황(The Two Popes)’을 최근 시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연기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와 군데군데 숨은 유머 코드를 즐기는 한편으로 신앙의 해석, 실천과 관련해 보수와 진보라는 상반된 견해를 가진 두 명의 지도자가 어떻게 전임자와 후계자가 될 수 있었는가에 초점 맞춰 보니 더욱 흥미로웠다.

영화의 여운이 남은 가운데 잠시나마 리더십의 ‘승계(succession)’에 관한 칼럼을 써 볼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강력한 오너 중심의 우리나라 실정에서 전문경영인이 후계자를 발굴, 육성하고 자신의 퇴임 시기와 후계자를 미리 공개한다는 것이 이상론에 그칠 뿐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생각이 같은(like-minded) 사람들, 자신의 견해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리더의 위험성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다.

굳이 “몸에 이로운 약은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良藥苦於口, 忠言苦於耳)”는 고전의 격언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충고가 되는 말을 흔쾌히 들을 사람은 없다.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조직을 이끌면서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리더라면,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고사하고, 듣는 것 자체가 불편할 것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도 물론 좋은 점이 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심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겪지 않을 가능성도 크고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 느끼는 불편, 긴장, 부담 등의 부정적 심리 상태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긍정적 효과들은 사적 영역에서는 용인될 수 있어도 공적 영역에서, 특히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에게는 약보다는 독이 될 우려가 크다.

리더가 같은 생각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학습할 수 없다.

우선,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부단한 학습과 성장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고 학습과 성장을 등한시하거나 ‘정상에 올랐는데 더 배우고, 더 성장할 게 뭐가 있나’하고 오만한 생각을 가지면 위험하다.

나와 다른 견해,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식견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부단한 학습과 성장의 자양분이다. 고교 3년간 같은 문제집만 복습하면서 수학 공부를 한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학생은 어휘 하나, 조사 하나만 바꾸어 살짝 비튼 문제를 접하는 순간 당황해 오답을 쓸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3년간 열심히 공부한 것 같이 보이지만, 한 권의 문제집이라는 ‘함정’에 빠져 제대로 학습하지도 못했고, 지적으로 성장하지도 못한 결과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들에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부단히 학습하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는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너무나도 복잡다기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나비효과’가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성이 큰 것이 초연결 시대의 경영 환경이다.

지난 칼럼들에서도 몇 차례 강조했는데 리더는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다. 요즈음은 더더욱 그러하다. 늘 조직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떠한 이슈에 대해 정답은 고사하고 모범답안조차 적어내지 못할 수 있다.

리더가 조직 내에서 생각이 같은(like-minded) 사람들에 둘러싸일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또하나의 실제적 위험은 조직의 파편화이다. 어떠한 조직이 건장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여러 잣대 가운데 하나가 내부에 ‘파벌 문화’가 있는지 여부다. 조직 역시 사람이 만든 구조인 탓에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고, 파편화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이처럼 건전하지 못한 병리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차단 내지 최소화하고 소통의 문화, 팀워크를 배양해야 하는 것이 리더의 중요한 책무일진대, 리더가 생각이 같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오히려 파벌을 만들고 조직을 파편화한다면 그보다 더 큰 위험은 없을 것이다.

다만, 리더로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할 때도 있다.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goal)와 가치(value)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다.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존중해야 하지만 궁극의 목표와 가치를 달리하는 사람은 배제해야 한다.

올 3월 초 타계한 잭 웰치(Jack Welch)가 제너럴일렉트릭(GE)을 이끌 때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는 공유하지만 실적을 내지 못하는 중간관리자’에게는 다시 기회를 주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실적을 내더라도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중간관리자’는 내쫓았던 것은 이런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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