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보도가 홍석천에 닿기까지
코로나 보도가 홍석천에 닿기까지
  • 임경호 기자 (limkh627@the-pr.co.kr)
  • 승인 2020.05.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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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문화보다 성소수자에 초점, 사회 갈등 유발
반복되는 언론문제, 보도준칙 ‘유명무실’
지난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용인 66번째 환자가 다녀간 용산의 한 클럽 모습. 뉴시스
지난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용인 66번째 환자가 다녀간 용산의 한 클럽 모습. 뉴시스

[더피알=임경호 기자] 가장 좋아하는 타이틀로 ‘탑게이’를 꼽았던 방송인 홍석천이 때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입장 표명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일부 누리꾼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부터다. 언론보도를 통해 ‘용인 66번 확진자’가 성소수자들이 즐겨 찾는 이태원 소재의 클럽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튄 셈이다.

지난 7일 국민일보는 이와 관련 ‘[단독] 이태원 ○○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는 기사를 보도하며 사회적 파장을 몰고왔다. 제2차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국민일보의 해당 보도를 촉매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성 논란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언론의 시각이 방역을 위한 건설적 대안 모색보다 갈등을 유발하는 단편적 접근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높은 빈도의 신체 접촉과 비말 전파에 용이한 공간 특성을 바탕으로 한 클럽 문화보다 해당 공간의 주 방문계층이 성소수자라는 점을 부각해 언론이 이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감염병 보도와 관련해 사생활 침해성 보도나 민감한 내용, 자극적인 표현 등을 주의해야 한다는 각계 지적들을 전혀 학습하지 못한 모습이다. 더 큰 문제는 언론을 위시한 사회적 낙인이 이태원 일대 방문자들의 코로나 검사를 꺼리게 만드는 ‘방역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언론계에서는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자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과학기자협회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감염병 발생 시 보도 원칙을 명시한 ‘감염병 보도준칙’을 지난 4월 28일 제정·선포한 바 있다. 

준칙은 감염인에 대한 취재·보도와 관련해 ‘취재만으로도 차별 및 낙인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감염인과 가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생활을 존중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국민일보 보도 이후 논란성 표현을 그대로 차용한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한때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막말에 가까운 성소수자 비하 표현이 오르내린 것도 이 같은 보도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해당 보도가 등장한 7일 네이버에는 관련 검색이 급증했으며, 구글 또한 7일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검색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정보 유통의 결과 확진자의 나이와 성별, 연령, 거주지, 직장 등이 무분별하게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고, 시급한 방역 문제를 낙인효과가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형국이다. 

감염병 보도준칙을 차치하더라도 오래 전부터 언론계 내에선 인권이나 소수자 보도에 대한 주의와 각성을 촉구했다. 일례로 지난 2011년 9월 한국기자협회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제정한 ‘인권보도준칙’ 제8장 성적 소수자 인권 항목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또 감염병 보도준칙 선포 약 3개월 전인 2020년 1월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유관 단체 10곳이 참여한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에서도 혐오표현이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며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고 기재하고 있다.

즉 문제성 보도 관행을 개선코자 언론계에서 관련 준칙 등을 제정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이다. 때문에 정작 고쳐야 할 문제는 명시적인 준칙이 아니라 언론계 종사자의 의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성 소수자와 관련된 보도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토론하는 저널리즘 문화를 언론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며 “기자들의 업무량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보도에 앞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다른 사회적 권리와 충돌할 때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언론계 스스로가 상당히 강조하는 반면, 책임에 대한 부분은 그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며 “해외의 언론사들이 윤리적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또 개선하기 위해 자율적인 기관들을 만들어 따르는 모습과 대조된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그간 ‘언론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사용됐지만 잘못된 보도 관행에서 조직 생존에 문제가 없다 보니 언론사들 스스로가 정말 위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며 “이제는 언론 위상이나 환경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만큼 보도관행과 저널리즘 문화 등도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깊이 있게 가질 때”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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