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오버 커뮤니케이션 할 때입니다”
“지금은 오버 커뮤니케이션 할 때입니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20.05.12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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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 창간 10주년 특집- 원로를 만나다①] 김경해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장

[더피알=강미혜 기자] 대화를 시작하자 A4 용지 뒷면이 새까만 글자들로 채워졌다.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 여러 비유와 사례, 경험이 실타래 풀리듯 줄줄 이어졌다. 단어 하나에도 영어 의미까지 동시에 짚으며 세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은 흡사 연구자의 모습과 같았다. 더피알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직업 PR인으로서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원로들을 만났다. 첫 주자는 올해로 33년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김경해 사장(73)이다. 

김경해 사장은... 코리아헤럴드 기자와 로이터통신 한국특파원을 거쳐 비즈니스코리아 발행인 시절인 1987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옛 BK커뮤니케이션)를 창업했다. 한국PR협회와 한국PR기업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33년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사진: 더프레임 송은지 실장 

미증유의 위기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위기관리를 업으로 해오신 분이니만큼 코로나19로 인한 감염병 위기 사태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보통 위기를 ‘노운(known), 언노운즈(unknowns)’ ‘언노운(unknown) 언노운즈(unknowns) 두 가지로 분리합니다. 알지만 불확실한 것과 알려지지 않은 불확실한 것들이 있는 거죠. 가령 비행기 추락사고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 사실이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추락하는지는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PR에선 위기 속 불확실성을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줄곧 강조해요. 반면 언노운 언노운즈는 어떻게 해도 모르는 겁니다. 300여명이 탑승한 민간여객기를 격추시키는 사건 같은 경우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사람이 대비할 수 없는, 신의 영역(God’s ac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 사태는 위기의 이런 두 가지 속성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과거 감염병 사태를 통해 알고 있는 위기였지만, 이렇게까지 팬데믹으로 세계를 마비시킬 거라곤 아무도 알지 못했죠. 노운 언노운즈 안에 언노운 언노운즈 요소가 있어 코로나 위기는 더 복잡하고 대응도 힘든 상황입니다.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위기가 신의 영역으로 가면 인간의 관리 능력은 어디까지가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선 어떤 점에 주력해야 할까요.

메시지 전략입니다. 위기 땐 메시지를 간결하게(simple), 평범한 말(plain language)로, 감성적으로 접근(heart felt)하는 게 기본 원칙인데요. 저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총리의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자가격리 중 영국 국민에게 보내는 레터를 통해 “우리 모두가 규칙을 따를수록, 더 적은 생명을 잃을 것이고, 더 빨리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The more we all follow the rules, the fewer lives will be lost and the sooner life can return to normal)”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평범한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심플하고 강력하죠.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는 지금은 각국이 국민을 다독이고 계속해서 위기를 슬기롭게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국민 동참을 독려하는 메시지에 주력해야 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제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코로나 여파에 따른 경기 침체로 기업들 역시 크게 움츠러든 상황이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미국PR협회 자료를 보니 ‘오버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이 나오더군요. 지나칠 정도로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라는 뜻인데 저 역시 동감합니다.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됐잖아요. 그러니 이번 위기를 계기로 우리가 고객과 관계를 잘 맺고 있는지 오버해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내부 고객인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중요해요. 누구보다도 직원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대화하고 필요하다면 계속해서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CEO들도 어떻게 하면 진정성 있게 고객에 다가설 수 있는지, 만약 잘못을 했다면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위기 상황에서도 적절한 메시지 하나가 깊은 공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 마텔이 그랬어요.

마텔은 2007년 중국에서 만든 장난감에서 기준치 이상의 납 성분이 검출돼 엄청난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이들 제품 안전성 문제니 얼마나 야단이 났겠어요? 소비자들 사이에서 보이콧이 일어나고 자칫 잘못하면 회사가 망하게 생겼어요. 그때 CEO인 로버트 에커트(Robert Eckert)는 단 세 단어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투 비 페어런츠(To be parents)” 부모가 되겠다는 거예요.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내던질 수 있는 것이 부모입니다. 어떤 희생, 얼마의 돈을 쓰더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함축돼 있었어요. 사과할 때 흔히 쓰는 잘못했다는 말없이도 누구보다 진정성 있는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죠. 사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최고의 사과를 한 결과 대규모 리콜 속에서도 마텔은 그해 매출이 전년보다 상승하는 기적을 일궜습니다. 여러 개선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메시지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사례입니다.

김 사장은 대외 환경이 어려울수록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더프레임 송은지 실장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말씀하시니 얼마 전 유니클로 메일 건이 생각납니다. 대표의 실수로 전 직원에게 구조조정을 암시하는 메일이 발송돼 논란이 일었죠. 항공·관광업계 등도 코로나 직격탄을 맞으면서 흉흉한 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기업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뼈를 깎는 자구책이 실행되어야 할 수도 있을 텐데, 내부 동요를 최소화하면서 어떻게 동의를 구해야 할까요.

그래서 직원들과 오버 커뮤니케이션하라는 겁니다. 쉬쉬한다고 해결됩니까. 예전에 밝히지 못했던 사실도 지금은 다 터놓고 얘기하면서 필요하다면 5시간, 6시간 집중적으로 대화하며 서로 접점을 찾아가야 해요.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며 직원과 고용주와의 관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을 적극 수용해야 합니다. 물론 경영 위기가 PR적인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결국 고강도 구조조정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 직원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오버해서 끈질기게 대화를 계속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김 사장은 언론인에서 PR맨으로 전업했다. 코리아헤럴드 기자와 로이터통신 한국특파원, 비즈니스코리아 발행인을 거쳐 창업해 33년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에 몸담고 있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PR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니, 그의 PR이력은 한국PR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PR이란 말을 낯설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 시절 생소한 분야에 뛰어든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당시 외신기자들은 일본에 있다가 큰일 터지면 서울에 들어와 취재하곤 했어요. 한국에 상주를 해야 이슈의 흐름을 쭉 꿸 수가 있는데, 일본에 머물러 있었으니 감이 없죠. 그래서 외신기자들은 몇몇 사람을 지정해 놓고 정보를 취득했어요. 그 중 한 사람이 저였어요. 코리아헤럴드의 김경해는 영어에 능통하고 정부쪽 인사를 알면서 기업 사정에도 밝으니 그들 입장에선 좋은 취재원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땐 하루에 5번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어요.(웃음)

3년여 정도 외신기자들과 교류하다 보니 이 친구들이 신세를 많이 졌다며 “미스터 킴, 너는 영어도 되고 정부·기업도 잘 아니 지금 해외에서 뜨는 PR산업의 적임자 같다”고 귀띔해주더군요. 앞으로 중요한 산업으로 성장할 거라면서요. 비즈니스 코리아라는 영문경제 잡지 발행인을 할 때였는데 관심이 생겨 홍콩에 있는 힐앤놀튼 아시아태평양 사장을 직접 만나러 갔습니다. PR전공을 하진 않았지만 PR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서울에 돌아오고 일주일 뒤 힐앤놀튼으로부터 파트너로 함께 해보자는 뜻을 전달받았습니다. 87년 비즈니스코리아 자회사 격으로 창업해 10여년간 힐앤놀튼과 손잡고 일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신문에 기사 내는 퍼블리시티(publicity, 언론홍보)를 PR의 전부라고 여겼는데 선진 사례를 보니 위기관리, 평판관리, 마케팅PR 등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자 싶어 제2·3대 한국PR협회 회장이 되어선 ‘PR교실’이란 걸 꾸렸어요. 서강대에 큰 공간을 빌려 100명, 150명이 모여 같이 스터디하고 카페테리아에서 2500원짜리 식사하면서 밤 10시까지 공부했습니다. 열정들이 대단했어요. 제가 한 4년 간 PR교실을 운영했고 그 이후 몇 회장님들도 계속해서 PR교실을 이어갔습니다. 국내 PR시장 활성화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늦은 밤 캠퍼스 언덕을 내려오면서 대학시절 추억을 더듬고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김경해 사장은 기자에서 PR맨으로 전업한 1세대다. 사진: 더프레임 송은지 실장 

최근 기자에서 인하우스(기업 홍보실)로의 이직이 봇물을 이룹니다. 어떻게 보면 김 사장님이 기자 출신으로 전업한 프론티어 격이신데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출신 중에서도 PR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만, 해외의 경우 언론사 배경이나 언론계 경험 자체를 높이 사기보다 다방면에서 PR 경험이 많고 식견 있는 사람을 CCO(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로 선임합니다. 요즘 기업 홍보실이나 커뮤니케이션 파트는 언론홍보뿐 아니라 위기관리와 노사문제, 나아가 마케팅 전략까지 다 관여해야 하는 상황이잖습니까. CCO는 언론을 잘 상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관계자별 전략적 메시지 관리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역할할 수 있습니다. 그 적임자를 언론계에서 찾는 게 효과적인지, 다양한 PR 경험을 거친 사람에 맡기는 게 나을지는 따져봐야겠죠. 분명한 건 유력매체 출신이라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업을 지속해오며 실로 격세지감이라 할 만큼 바뀐 것이 있나요? 반대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는 것이 있다면.

SNS나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PR 영역이 넓어진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온라인 생태계에 적응하며 메시지 전략과 위기관리 방식 등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반면 잘 달라지지 않는 점을 꼽자면 언론관계일 겁니다. 특히 요즘은 일부 매체가 광고나 협찬 유치를 유도하는 기사를 쏟아내면서 언론계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악영향을 주고 있어요. 광고만 내면 기사가 나온다는 인식까지 형성되면서 순수하게 쓰인 좋은 기사까지 신뢰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경기가 나쁘니 언론도 광고나 마케팅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일견 이해는 가지만 언론이 가져야 할 윤리의식, 편집국 독립성이 무너지는 걸 보는 건 참 씁쓸합니다.

▷“외신보도 의존도 여전히 큰 이유는”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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