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보도 의존도 여전히 큰 이유는…”
“외신 보도 의존도 여전히 큰 이유는…”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20.05.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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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 창간 10주년 특집- 원로를 만나다①] 김경해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장

[더피알=강미혜 기자] 김경해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사장(73)은 ‘기자 출신 PR인’ 타이틀의 원조격이다. 외신 특파원과 매거진 발행인을 거쳐 PR비즈니스에 눈을 떠 30여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기자적 시선과 PR적 감각이 동시에 있기에 누구보다도 지금의 언론PR, 미디어 관행에 있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지금은 오버 커뮤니케이션 할 때입니다”에 이어...

김경해 사장은... 코리아헤럴드 기자와 로이터통신 한국특파원을 거쳐 비즈니스코리아 발행인 시절인 1987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옛 BK커뮤니케이션)를 창업했다. 한국PR협회와 한국PR기업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33년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사진: 더프레임 송은지 실장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서 외신보도에 대한 신뢰, 그들 평가에 대한 의존도가 큰 것 같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 때도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고요.

일단 기사 쿼테이션(quotation, 인용)에서 차이가 납니다. 타임, 뉴스위크 등을 보면 인용문을 처리하면서 “~~was(were)”라고 병기한 문장이 있어요. 그 사람이 문법적으로 틀리게 말했어도 일단 그대로 써주고 괄호를 사용해 바로 잡는 겁니다. 토씨하나 안 틀려요. 취재원이나 인터뷰이 입장에서 최소한 자기 발언이 왜곡되거나 잘못 해석될 위험은 없다는 믿음이 생기죠.

그에 비해 우리 언론은 지금도 종종 인용 논란이 불거집니다. 실제로 미디어 트레이닝을 했던 재계 모 인사가 말하길 자기는 한국 언론, 기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딱 인용 문제를 꼽더군요. 과거 김우중 회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외신은 인용부호 안에 들어가는 내용은 정확도를 위해 당사자가 원할 시에 사전에 볼 수 있게 해 부담이 없다고요. 기자의 객관적 평가나 해석에 대해선 터치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지만, 최소한 내가 말한 것에 대해선 정확하게 인용될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외신이라고 무조건 정확한 건 아닐 겁니다. 사안이나 현상의 양쪽 면을 다 보고 제대로 썼는지도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고요. 그럼에도 오랜 시간 쌓아온 언론 평판, 저널리즘 정신 등이 독자에 신뢰감을 준다고 봅니다. 제가 만나본 외신기자 중에서도 자기 이름으로 기사가 나갈 땐 모든 인생을 건다고 할 정도로 철저함을 강조하는 이도 있었어요. 기자로서 이런 책임감이 개별 기사는 물론 언론 전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언론 신뢰도가 떨어지니 PR 자체도 힘을 잃는 상황입니다. 점점 더 부정기사를 틀어막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언론과 PR은 같이 가는 거니까요. 미국 등 선진국에선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에도 PR이 중요하게 참여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끼질 못해요.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PR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IMF 때 제일은행이 외국계 자본에 매각되면서 저희가 PR컨설팅을 맡았습니다. 언론에선 연일 부정기사가 쏟아지지, 노조는 들고 일어나지 안팎으로 여론이 참 안 좋았어요. 경영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이 컸죠. 외국인 제일은행 행장과 대화하던 중 내년도 캘린더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캘린더 작업은 회사 전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큰 프로젝트 중 하나였고, 주로 유명한 화가 작품이 실리면서 지출 비용도 적지 않았습니다.

행장을 설득해 직원 아들딸이 그린 그림을 넣는 캘린더로 콘셉트를 바꿨어요. 작은 변화지만 직원들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한국인이 행장이었을 땐 우리 자녀들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외국인이라 역시 다르다며 정말 좋아했습니다. 직원들이 우호적으로 바뀌니 그 힘으로 제일은행이 M&A 이후에도 소프트 랜딩할 수 있었어요. PR에서 이야기하는 ‘코스트 이펙티브(cost effective)’가 이런 겁니다. 투입 비용 대비 어마어마한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꽤 오래전 인터뷰를 보니 ‘PR을 PR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현업에 종사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봐도 아직도 주변에서 PR일이 뭐하는지 몰라 설명하기 곤란하다고 합니다.

PR을 우리말로 하면 ‘공중관계’입니다. 공중은 일반 대중과 다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타깃이 되는 대상이 공중입니다. 타깃 오디언스가 직원이 될 수도,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될 수도 있고 B2C냐 B2B냐에 따라 또 달라집니다. 공중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지 연구하고 전략을 짜는 건 굉장히 의미 있고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공중이란 말 자체를 모르니 아직도 신문에 기사 내고 또 막고 하는 정도의 개념으로 봐요. 그러니 PR을 PR하자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요즘엔 위기관리가 중요해지면서 PR의 중요 기능으로 인식하는 것까진 됐는데, 그러다보니 로펌 쪽에서도 자기들 영역으로 끌어안으려 많은 걸 개발해놓은 상태입니다. PR을 PR하지 않으면 자꾸 설 자리가 좁아져요.

▷함께 보면 좋은 기사: ‘공중관계’라는 말이 PR을 대체할까

더피알에서 리테이너 피(Retainer Fee)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가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한 달에 한 고객사 리테이너피가 800만원 정도로 책정되면 10%는 별도 경비로 나옵니다. 거기에 추가로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추가적인 프로젝트 피를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선진국 PR 서비스의 형태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리테이너 피에서 리테인(retain)은 우리말로 ‘유지하다’는 의미에요. 조직의 운영비, 직원 인건비 등이 포함된 최소한의 유지비용인데 대부분의 고객사들은 800만원 피를 지급하면 그걸로 모든 걸 다 해준다고 생각해요. PR회사들 역시 그 수준에 만족하고요. 그러니 회사도 수익이 안 나고 산업이 발전할 수가 없어요. 직원들 월급주기에 급급해요.

외국의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무조건 고객사들에 좋은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자꾸 괴롭혀서 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국내에선 그런 인식이 잡혀있지 않아요. 그러니 직원 한 사람이 하나의 고객을 맡아선 도무지 유지가 안 되고, 2~3개 클라이언트 업무를 병행하면서 좀 더 좋은 PR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됩니다. 리테이너 피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코스트 이펙티브한 PR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김경해 사장은 1990년대 대형 국책사업이었던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도 관여했다. 당시 맥도널드 더글러스(MD)가 제작한 F18은 스타커뮤니케이션의 조앤리 대표가 제너럴 다이나믹스(GD)의 F16은 김 사장이 각각 홍보를 맡았다. 국내 유력지에서 ‘PR사의 자존심을 건 세기의 격돌’이라고 대서특필할 정도로 화제였다.

“엔진이 2개인 F18이 값은 비싸도 안전성 측면에서 공군이 선호했어요. 낙점 분위기가 압도적이었죠. 뒤늦게 입찰전에 뛰어든 F16으로선 별 가망이 없어 보였어요. 막막한 상황에서 전략을 짜야했는데요. 그때 생각한 것이 그랜저와 쏘나타였습니다. 정부 예산으로 그랜저인 F18은 80대를 살 수 있지만, 쏘나타인 F16은 120대를 살 수 있다고 기자들에 설명했어요. 그랜저 80대로 영업하는 것이 좋을지, 쏘나타 120대가 좋을지는 한 번 따져봐야 한다고요. 그랬더니 기자들도 일리 있는 말이라며 관심을 보이더군요. 다음으로 전 세계 공군이 주력기로 가지고 있는 기종의 85%가 F16이고, F18은 한 자릿수대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F16 전투기가 서울 상공을 비행하는 사진이 실린 광고를 국내 거의 모든 일간지 1면 5단 형태로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전략적 노력으로 완전히 쏠렸던 여론이 서서히 반전되면서 3년 간의 접전 끝에 최종적으로 F16이 공군 전투기로 선정됐습니다.”

김경해 사장과의 인터뷰는 회고와 메모가 넘쳐나는 시간이었다. 90년대 전투기 국책사업 홍보전 당시 주요 신문 1면에 실었던 F16 기종 광고(아래). 사진: 더프레임 송은지 실장 

30년 넘게 회사를 이끌어오면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화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삼호건설의 조봉구 회장이라고 있었어요. 70년대 강남 일대가 삼호타운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자산의 기업가였습니다. 그랬던 양반이 전두환 정권 시절 그룹이 공중 분해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봉구씨의 딸 조영애씨가 그의 남편 제프 씨브라이트씨와 재산반환소송 등 문제 제기에 나섰습니다. 씨브라이트씨는 당시 미 국무성 국장이라는 고위직에 있었죠. 한국 언론에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싶다는 그들 요청에 직접 워싱턴D.C.로 갔고,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살고 있는 조봉구씨를 만났습니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지금도 큰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내 ‘딸년’이 자꾸 들쑤셔서 소송을 하는데 나는 다 잊었다. 이대로도 행복하다. 회사를 빼앗기지 않고 계속해서 경영을 했더라면 온갖 스트레스로 팔십이 넘는 나이에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 수 없었을 거다”고 하더군요. 일을 떠나 인간의 행복이 과연 어디 있는가를 느꼈습니다. PR을 했기에 나만이 누릴 수 있던 하나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옛 기억의 흔적이 사진으로, 스크랩으로 남아 있는 김 사장의 집무실 한 편엔 실내 자전거가 있다. 일하면서 하루 2시간씩 운동하는 용도다. 지금도 새벽까지 자료를 보고 활발히 업무를 보고 있는 그는 틈틈이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다. 직업 PR인으로 계속해서 일을 해나가기 위함이다.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위기관리연구소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여전히 갈 길을 내다보고 있다.

“제 딸인 김희진 이사가 국내 업무를 담당하고 저는 주로 해외쪽 비즈니스를 합니다. 외국 중진들과 대화하면 나이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미스터 킴이 경험이 많으니까 우리는 그 경륜이 필요한 거”라고 얘기해요. 얼마든지 필요에 따라 서로 일이 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뭐 하나 추진하려 하면 “사장님 밑에 사람 보내지 뭘 여기까지 오십니까”하는 반응이에요.(웃음) 저는 지금도 때때로 새벽 2~3시까지 선진 PR사례를 찾아봐요. 기발한 마케팅이나 위기극복 케이스는 꼭 메모하고요. 심지어 단어까지도 좋은 건 외웁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네이티브가 아니니 전문용어는 노트를 만들고 외우는 수밖에요. 배움이 스스로에게 희열을 주고 또 직원들과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33년간 한 길을 걸어온 김경해 사장은 세계적인 위기관리연구소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사진: 더프레임 송은지 실장

33년간 한 길을 걸어오셨지만 PR맨으로서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일이 있으세요?

위기관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소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위기관리는 리엑티브(reactive)보다 프로엑티브(proactive)한 접근이 중요합니다. 터지기 전에 전략을 짜고 대비해야 하는데, 우리는 매번 위기가 터지면 사과문 만들고 대응하기 급급해요.

2014년에 전 미국연방위기관리청(FEMA)장을 지낸 조 알바우씨를 한국에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9·11 테러 당시 직접 부시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며 현장을 지휘했던 전문가를 통해 우리나라도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싶었어요. 당시 소방방재청 등에서 책정된 강연료가 시간당 20만원이었는데, 정부의 위기관리 태세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래도 좋다 싶어 그의 방한을 위해 회삿돈 5만불을 투자했습니다. 부산시, 대구시와 몇몇 기업을 위한 특별강연을 마련해 9·11 당시 생생한 현장 얘기와 위기관리에 관한 전문가 의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력이 있으면 위기관리 분야에선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요. 30년 넘게 PR일을 하며 큰 위기관리 사례를 많이 경험했는데 사장되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업계 원로로서 동료,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PR이 어마어마한 역할이 있는데 제대로 개발이 못되고 기존 리테이터 피로 클라이언트도, PR회사들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업계 스스로 어떤 면에서 패배의식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 후배들이 PR의 다양한 기능을 제대로 알려서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창간 10주년을 맞은 더피알에 덕담 부탁드립니다.

더피알 책과 온라인을 통해 여러 기사를 접하고 있습니다. PR을 PR한다고 하는데 가장 좋은 매체가 더피알이라고 생각해요. 국내 PR이 아직 손대지 못하는 영역, 잃어버린 역할도 선진 사례를 통해 계속 소개해주면서 젊은이들이 내가 평생 해볼 만한 업이구나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애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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