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기자가 마주한 슬픈 자화상
신입 기자가 마주한 슬픈 자화상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0.05.14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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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또 불거진 기자 갑질 이슈, SNS 여론 달궈
만인이 미디어인 세상, 기존 관행·습관 재검토해야

[더피알=정수환 기자] 최근 한 방송사 기자의 화면 밖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취재 편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카페 사장에게 도 넘는 언행, 즉 갑질을 했다는 고발성 글이 온라인을 달구면서다.

카페 사장의 지인이 올린 글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해당 기자는 물론 그가 몸담고 있는 방송사, 그리고 동종직군인 기자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확전될 정도로 이슈 파급력은 컸다. 

이 일로 입길에 오른 기자나 방송사 측은 현재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상황만을 놓고 보면 한쪽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해당 글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SNS 속 글을 기정사실화하며, 기사로는 약자를 대변하지만 갑의 위치에 서 취재하는 기자 관행에 대한 질타를 쏟아내고 있다. 

개중 “웬만하면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기자’의 평소 이미지 때문인지 믿게 된다”는 의견을 보며, 기자로 입문한 입장에서 쓰라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자라는 직군의 슬픈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단어 뒤에 연관검색어 마냥 ‘기레기’라는 단어가 따라 붙은 지는 이미 오래다. 더 이상 기자들의 (기레기스러운) 이슈는 대중에게 충격을 주지도 못한다. 이미 문제아로 낙인찍혀 ‘너네가 그럼 그렇지 뭐’라며 혀를 차는 소리만 가득할 뿐이다.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다. “걔네(기자들) 원래 그랬다. 평범한 기자의 모습이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 가운데, 유사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 집단은 갑질을 당연하게 여긴다며, 자신도 기자에게 갑질을 당했다는 것이다. 흡사 성토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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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기자가 갖는 직업적 프라이드는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그 근원에 대한 의문이 새삼스레 들었다.

물론 기자에게 프라이드는 중요하다. 사명감을 갖고 기사다운 기사를 쓰는 원동력 중 하나다. 그러나 갑질을 통해 상대적 우위에 섰을 때 느껴지는 감정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숙여야 할 곳에 숙이지 않으며 지키는 그 프라이드가 정말 기자에게 필요한 것인가, 그런 식의 취재과정을 거쳐 사회를 고발하는 기사가 의미 있는 건가 싶다.

요즘 시대를 흔히 ‘모두가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 달리 얘기하면 누구나 개인 채널을 통해 어떤 사안도 이슈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인이 감시자이자 시청자가 되고 뉴스의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자의 행동 역시 만인의 감시 아래 새로운 콘텐츠로 귀결될 수 있다. 기자만이 아젠다를 설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언론계 경험이 일천한 입장에서 감히 기자의 생존전략을 가늠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갑질과 같은 구태는 자기 생명을 단축시키는 자승자박이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은 체감된다. 기자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지만, 그 반대 상황에 기자가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견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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