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페친] “기사를 보면 누가 쓴 건지 알겠어요”
[알쓸페친] “기사를 보면 누가 쓴 건지 알겠어요”
  • 임경호 기자 (limkh627@the-pr.co.kr)
  • 승인 2020.05.27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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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피알 전직 기자인 이동익(대학원생) 씨를 만났습니다

더피알 페이스북에서(간혹 인스타그램에서도) 열심히 ‘좋아요’와 ♥를 눌러주는 독자들이 궁금해서 만든 코너. 이른바 ‘알쓸페친’. 알아두면 어딘가에 (큰) 쓸모 있을 그들과 직접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더피알=임경호 기자] 창간 10주년을 맞아 OB를 찾아 나섰다. 지금은 외부자이지만 초창기 더피알의 민낯(?)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부자였던터라 이것저것 물었다. 이동익 전 기자는 현직자를 향해 아낌 없는 디스를 시전하면서도 현재 놓치고 있는 지점이나 발전적 방향에 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전주에서 학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동익 전 더피알 기자. 본인 제공
전주에서 학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동익 전 더피알 기자. 본인 제공

오랜만에 독자들에 인사 부탁드립니다.

2013년도쯤 더피알에서 같이 일했습니다. 되게 알콩달콩하게 지냈고요. 당시 PR쪽은 처음 취재하는 거라서 다른 분들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됐는데요. 지금은 고향(전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전주도 처음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 분위기가 좀 그랬는데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상태예요. 마스크를 쓰고 다니긴 합니다만 일상생활이나 학업에 지장이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재직 당시 기사 수를 세어봤더니 주말 제외 일 평균 1개 이상씩 쓰셨던데요.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강) 편집장이 제 옆자리였어요. 계속 잔소리를 하면서 “뭐 쓸 거 있냐”고 물어봤었어요. 오후 시간대까지 무조건 하나는 쓰라고 닦달해서 썼던 것 같아요.(웃음) 닦달은 했지만 제가 쓴 기사에 대해 강 선배(現 편집장)도 그렇고 당시 분들이 좋게 봐주셨어요. 재밌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400개가 넘는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기사 하나는, 당시 ‘SNS 전문가’라고 하는 어떤 분에 대한 거예요. 이 분이 저희 잡지에 투고한 적이 있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가 썼던 책을 표절한 글이었어요. 그래서 그 분에 대해서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소문이 있던 차에 제가 취재를 전담했습니다. 당시 강 선배가 편의를 봐줬거든요. 거의 2주 동안 그 사안을 팠던 것 같아요. 깊게 팠어요. 그게 기획기사, 그러니까 시리즈물로 나간 게 기억에 남네요.

▷관련기사: 110만원이면 나도 SNS 전문 강사?

관련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무엇보다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것들이 기사로 알려지게 된 점이 크죠. 한 번은 기업체에서 연락 온 적이 있어요. 그 시기엔 전문가를 초빙해서 강의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제가 쓴 기사의 인물을 특강으로 모시려고 하는데 어떠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랬죠. “제가 판단할 순 없고, 기사를 보고 판단해보시라”고요. 그렇게 알려드린 적이 있어요.

가끔 더피알에서 지내던 때가 떠오르진 않나요.

많죠. 가끔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접하거나 기사를 보기도 해요. 페이스북에 기사를 올리면서 멘트를 달았던 게 저부터거든요. 제가 썼던 것과 요즘 쓰는 것을 보면 완전 다르긴 해요. 당시 저는 자발적으로 멘트를 달았는데, 애사심에 클릭수 올리고자 그렇게 했었어요. 근데 기사 마무리 하고 퇴근 앞두고 하니까 대충 하면서 제대로 못 했던 게 기억나요. 요즘은 나름 ‘젊은 콘셉트’로 잘 하는 거 같아요.

과거 상상했던 더피알의 미래와 오늘날의 더피알은 어떻게 다른가요.

안 그래도 당시 얘기를 기억해봤어요. 그때 내부에서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 더피알이 10년쯤 되면 어떨까?” 뭐 이런 말이요. 어떤 기자가 “그때까지 있으려고요?”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했었는데 편집장은 ‘그때’까지 있네요.(웃음)

더피알을 가끔 봐요. 그 당시와 다르게 지금은 콘텐츠가 많이 풍성해지면서 유료화를 했더라고요.(*일부임) 보다 젊어진 것 같고요. 추구하는 바는 당시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다만 아쉬운 점은, 제가 일할 때 해외 사례를 많이 찾았었는데 그런 부분이 약해진 것 같아요. 외국 PR 사이트에 들어가면서 이슈도 발굴하고 힘든 건 번역을 맡기면서까지 해서 한 꼭지씩 잡지에 들어갔었는데….

해외 사례의 어떤 점에 주목한 건가요.

우리나라랑 다른 점이 있어요. 생소한 것도 있고 우리가 배울 점도 있습니다. 특히 외국계 기업이요. 그런 부분을 좀 더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가끔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간섭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 얘기를 하려다 말곤 했죠.

안팎을 모두 아는 관계자로서 추가적인 조언은 없을까요.

광고를 다루는 방식이요. 그때도 광고를 집중적으로 다뤄보자 했었는데, 콘셉트가 지금이나 그때나 유사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기사로 광고를 다루는 방식에 변화를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결국 담당자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는 형식인데 다른 식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표지 콘셉트도 똑같아요. 표지에 사진을 넣은 이유가 조금 더 임팩트를 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런 목적에 비해서는 임팩트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장기간 같은 포맷이 반복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10주년을 기념으로 바꿔볼만 하다고 봐요.

더피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애정? 호기심?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애정이죠. 기사를 보면요. 누가 쓴 건지 알겠어요. 저랑 같이 일했던, 제가 아는 기자들 선에서는 말이에요.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보이는 거죠. 일반 독자들은 기사 내용에 집중하잖아요. 저는 선배나 다른 기자의 의도 같은 게 읽히니까 더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근무할 때만 해도 저는 자취를 했었거든요. 그때 가족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무실을 이전하기 전, 인사동에 있을 때 가끔, 특히 마감 때 대표님이 막걸리와 파전을 사주셨어요. 그걸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었는데 타지에서 온 저한테는 가족처럼 친근한 느낌이었죠, 그런 부분이 있어요.

더피알에 대한 애정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

(편집장에게) 애들 닦달하지 말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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