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현장] 고기를 씹으며 ‘랄라베어’를 외치다
[마케팅 현장] 고기를 씹으며 ‘랄라베어’를 외치다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0.06.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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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라거 부드러움 연구소 탐방

[더피알=정수환 기자] 나이 n살(뒤에서 가늠할 수 있다). 레트로와 뉴트로의 구분이 어려운 나이다. 기업들의 헤리티지는 각양각색이며 천차만별의 기간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어떤 건 새로운 뉴트로다, 어떤 건 원래 알고 있던 레트로다, 구별내리기 쉽지 않다. 애매하게 걸쳐있는 나이인 셈이다. 사실 조금씩 익숙한 부분이 있기에 여태까지 ‘뉴트로’라는 감정을 느끼긴 어려웠다.

다만 ‘술’ 종류는 모두 ‘뉴트로’다. 2010년 이전에는 술을 마시지 못했(않았)으니 말이다. 뉴트로 마케팅과 두꺼비 캐릭터로 한창 뜨거운 하이트진로의 소주 역시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보다 한참 전에 나와 단종됐고, 시간이 흘러 밀레니얼을 타깃으로 재출시되는 과정을 거쳤다.

오비라는 회사명이 드러나 있으니 웬만하면 기억할법한데, ‘오비라거’가 생소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오비맥주는 자사 캐릭터 랄라베어를 필두로 한 ‘오비라거’를 재출시하며, 작년 9월부터 뉴트로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라거의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자취를 감췄던 ‘오비라거’가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뉴트로 마케팅의 연장선상에서 팝업스토어 ‘오비-라거 부드러움 연구소’를 오픈했다. 야구를 즐기지 않기에 두산베어스 전신인 오비베어스의 마스코트 ‘랄라베어’조차 새로웠던 기자는 ‘요즘 애들’이 만끽한다는 뉴트로를 체험하기 위해 친구 한 명을 데리고 팝업스토어로 찾아갔다.

오비맥주 '부드러움 연구소' 전경. 사진 : 정수환 기자
오비-라거 부드러움 연구소 전경. 사진: 정수환 기자

팝업스토어는 특이하게 음식점과 연계해서 진행된다. 3곳의 음식점을 선정해 협업하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주요 상권에서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이자 오비라거를 최대한 알릴 수 있는 장소로 건대입구, 수원, 송파를 선택했다”며 “그 동네에서 평상시에 오비라거를 많이 사랑해주었던 곳 위주로 가게를 선정했고, 오비라거와 잘 어울리는 음식 메뉴를 판매하는지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건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팝업스토어라고 하니 음식점 내에 오비라거 관련 굿즈를 파는 매대가 조그맣게 마련된 모습을 기대하며 걸음을 옮겼다.

간판부터 시작해 모든 외관이 오비라거와 랄라베어로 꾸며져 있었다. 랄라베어 탈을 쓴 인형이 함께 사진을 찍자며 문 앞에 서있었지만, 사내놈 둘이서 무슨 사진이냐고 손사래를 치며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오히려 내부는 조금 초라(?)했다. 기대했던 굿즈를 파는 매대가 없었다. 어떻게 진행이 되는 건가 궁금해 하며 메뉴를 주문하니 누군가가 다가왔다.

“오비맥주를 시키시면 룰렛을 돌릴 수 있어요. 룰렛을 돌려서 나온 등수에 따라 굿즈를 드립니다. 1등은 에코백, 2등은 코스터, 3등은 그립톡을 드려요!”

룰렛을 돌려 1등에 당첨됐다. 사진 : 정수환 기자
룰렛을 돌려 1등에 당첨됐다. 사진: 정수환 기자

뭔가 익숙했다. 다른 음식점에 갔을 때, 소주를 시키면 경품을 준다던 주류회사의 전통적 홍보 방식, 판촉 마케팅이 생각났다. 여태 경험했던 팝업스토어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었다. 판촉행사와 팝업스토어 그 중간 쯤 어딘가로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정중히 거절했을 텐데, 조성된 분위기가 한몫했는지 너무나 당연하게 오비라거를 주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게가 온통 오비라거와 랄라베어로 장식이 돼있기 때문이다. 관계와 상황을 부드럽게 풀어주기 위해 랄라베어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는 오비맥주 측의 전언이 이해가 됐다. 가게 곳곳에 수놓아진 랄라베어가 ‘넌 오늘 오비라거를 시킨다’며 최면을 거는 것 같았다. 다른 테이블을 살펴보니 모두 기꺼이 오비라거를 주문하고 있었다.

룰렛을 돌리자 운 좋게도 1등에 당첨이 됐다. 굿즈는 취향저격이었다. 랄라베어가 굿즈에 들어가 있으니 귀여움이 배가 됐다. 이와 관련한 추후 취재 과정에서 “별도의 채널을 통해 굿즈 판매를 기획 중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다. 7월 중 론칭 예정”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1등 경품인 에코백과 함께 기자의 손에는 엽서 2장과 볼펜 2개가 쥐어져 있었다. “시간 되시면 느린 우체통에 엽서 넣어주세요! 1달 뒤에 보내 드립니다”라고 친절히 일러주는 직원분의 말이 이어졌다.

잠깐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한창 느린 우체통이 유행했을 때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기사를 위해 펜을 들었다. ‘안녕 수환아. 한 달 뒤에도 너는 마감을 하고 있겠지...’(이하 부끄러워서 생략) 

친구의 엽서를 보니 깨끗했다. 딱히 쓸 생각이 없어보였다. 우체통에 엽서를 고이 접어 넣었다.

랄라베어 느린 우체통. 사진 : 정수환 기자
랄라베어 느린 우체통. 사진: 정수환 기자

오비맥주 관계자는 “더 많은 소비자들이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오비라거를 마시며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느린 우체통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과, 나 자신에 대한 응원을 랄라베어가 대신 전달한다는 콘셉트”라며 의도를 말했다.

이윽고 모든 이벤트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었다. 고기 섭취 전 정신없이 다양한 체험을 하니 배가 더 고파져 더 많이 시켰다. 비로소 ‘오비맥주와 가게 모두 윈윈인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동행한 기자의 친구 홍광의(30)씨는 “다른 판촉행사와 다르게, 이런 저런 체험 요소가 곁들여져 있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판촉행사의 틀을 깨는 느낌이었다”며 “랄라베어를 하도 접하니 괜히 정이 갔다. 굿즈가 잘 팔리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랄라베어가 입구에서 반기고 있다. 사진 : 정수환 기자
랄라베어가 입구에서 반기고 있다. 사진: 정수환 기자

어떻게 보면 뉴트로 마케팅은 제품으로써, 혹은 방송 프로그램으로써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뉴트로를 공간 속에서 체험한다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과거의 헤리티지를 충분히 느끼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누리며 브랜드의 긍정적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게 했으니 나름 주류회사다운 상상력과 기획력을 잘 버무린 셈이다.

저번 주 금요일에 식당을 방문했으니, 이제 3주 후면 엽서가 도착할 예정이다. 응원이 필요한 마감 기간, 랄라베어의 기운을 받아 과거의 내가 힘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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