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소기업이 ‘코로나 면봉’ 히트친 진짜 배경은
한국 중소기업이 ‘코로나 면봉’ 히트친 진짜 배경은
  • 유성원 (david@jeeshim.com)
  • 승인 2020.07.0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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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원의 지식재산 Coaching]
각국 진단키트 부족에도 우리나라는 수출국 명성
빠르고 정확한 진단 기술, 속지주의 틈새 파고들어
코로나19 진단을 위한 드라이빙 스루 방식에서 의료진이 검체 채취용 면봉을 사용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진단을 위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검체 채취용 면봉을 사용하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유성원] 코로나19가 지역사회에 침투해 빠르게 확산되는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진단키트다. 증상자가 대량 발생할 때 빠르고 정확하게 코로나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선 코로나 전염 초기 단계에서 바로 이 진단키트의 부족 사태를 겪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각 국가에서 환자들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시기에 코로나 진단키트를 수출하는 국가였다. 특히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 의료제품 N사가 이 수출물량을 감당했다. 진단키트의 생명은 빠르게 진단할 수 있으면서도 검사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어떻게 N사는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伊 코판, 한국시장 특허출원 스킵?

현재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가장 손쉽고 간단한 방법은 비강 내 검체 채취용 면봉을 깊숙하게 넣어 체액 샘플을 보는 방식이다. 면봉 끝에는 체액이 적셔질 수 있도록 섬유 성분(보통 레이온이 사용됨)의 팁이 형성돼 있다. 기존의 일반 섬유를 사용한 면봉의 경우, 팁 섬유에 체액이 갇혀 버려 적셔있는 샘플의 40% 미만의 양만(실제로 10% 전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면봉 팁의 구조를 완전히 바꾼 제품을 개발한 회사가 나타났다. 바로 이탈리아의 코판(COPAN)이다. 면봉 팁에 나일론 섬유를 사용, 나일론 섬유들이 마치 고슴도치 털처럼 표면에 수직으로 일어나 있도록 제작해 샘플 체액이 갇혀버리지 않도록 한 원리다. 그래서 코판 제품의 경우 거의 90% 체액 샘플이 검사를 위해 회수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검사의 정확도를 매우 높일 수 있게 된다.

코판은 이 기술을 2004년경 개발해 자국에 출원했을 뿐 아니라, 국제특허출원 제도인 PCT를 이용해 다개국에 출원했다.

PCT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의 출원일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실제로 각국에서 특허권을 정식으로 획득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특허청에 그 국가의 언어로 작성된 신청 서류를 다시 제출하는 국내단계진입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국내단계진입은 최초의 특허출원일로부터 30개월 이내에 해야 하는데, 국가별 특허대리인을 선임해야 하고, 특허출원 서류에 대한 번역도 해야 하는 등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 특허 제품의 시장성과 사업 전략에 따라 국내단계진입을 하는 국가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배경이다.

PCT 국제특허출원 절차

출처: 특허청 홈페이지
출처: 특허청 홈페이지

이탈리아의 코판사는 바이러스 진단 면봉 특허에 대해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캐나다, 호주 등에는 국내단계진입을 했지만, 우리나라에는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코판사 주요 진출 해외 시장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았거나, 특허 획득을 위한 비용 대비 시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우리나라 특허청의 높고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코판사가 특허 획득에 실패했다고 언급, 마치 우리 정부가 무언가를 대단히 잘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는데 이는 상당히 왜곡된 발언이라고 판단된다. 한국 특허요건 심사기준이 국내단계진입을 포기할 정도로 다른 나라 대비 특별히 더 까다롭다고 볼 수 없을 뿐더러, 실제로 코판은 우리나라 국내단계진입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PCT 국제출원 단계에서 우리나라가 지정국으로 돼 있었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는데, 원래 PCT 출원단계에서 특별히 따로 지정하지 않는 한 출원 시 모든 PCT 가입국이 자동으로 지정된다. 중요한 것은 국내단계진입이다.)

이탈리아 코판(COPAN)사 PCT 국제특허출원 공개정보.
이탈리아 코판(COPAN)사 PCT 국제특허출원 공개정보.

리스크 정보·공백 기술 사전 파악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권 효력은 특허를 획득한 국가 내에서만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내단계진입을 하지 않은 코판은 한국에서 특허보호를 받을 수 없고, 그들의 면봉 기술을 우리나라 기업이 사용해 제품을 제조, 생산, 판매, 수출 등을 해도 특허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이 기술은 2004년에 국제공개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부정경쟁행위 이슈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틈새를 파고들며 두각을 나타낸 한국의 중소기업 N사는 여러 의료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다. N사는 코판의 기술과 매우 유사한 진단 면봉을 생산하는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상당한 물량의 진단키트를 빠르게 공급할 수 있었다. 사전에 해당 분야에 대한 FTO(Freedom To Operate) 분석, 특허동향 조사 등을 통해 특허 침해 리스크 뿐 아니라, 속지주의에 원칙에 따른 국가별 특허 공백, 자유실시기술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 결과 N사는 특허 공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전량을 생산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코판사가 특허권을 획득하지 않은 아랍에미리트(UAE)와 같은 국가에도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허 정보는 비즈니스 운영에 있어서 특허 침해 리스크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특허 공백 기술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여러 중소기업들에게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기회를 줄 수 있다. 특히, 속지주의에 의한 특허권 효력의 지역적 한계는 기술 추격자 포지션에 있는 여러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코로나 사태로 떠오른 한국의 N사는 이러한 기회를 잘 포착한 아주 좋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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