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인의 밥상] “오늘은 혼자 먹겠습니다”
[홍보인의 밥상] “오늘은 혼자 먹겠습니다”
  • 백승헌 (thepr@the-pr.co.kr)
  • 승인 2020.07.2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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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헌 비브로스 PR매니저

[더피알=백승헌] PR업무, 그 중에서도 특히 대언론 담당자의 식사는 일의 연장이다. 처음 만나는 기자와의 식사 미팅은 대부분 입보다 머리가 분주하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에 대한 소개는 잘 되었나, 요즘 기자가 가장 관심 있는 이슈가 무엇일까, 어떤 기삿거리를 제안해 볼까...’

기자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업무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감이 젓가락을 내려놓게 만든다. 그러다 혹시나 중간에 서로 말이 없어지는, 흔히 ‘마가 뜨는’ 타이밍이 오면 식은땀이 난다.

‘혹시 자리가 불편한가, 내가 잘못한 게 있나, 무슨 말을 꺼내는 게 자연스러울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렇게 치열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자 미팅을 반복하다 보니 일종의 직업병이 생겼다.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식사를 해도 식탁보다는 상대방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누군가와 먹는 점심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누군가와 먹는 점심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자료사진)

대화 없이 조용해지면 새로운 주제를 꺼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자리를 파한 후에는 상대방에게서 ‘즐거운 식사였다’는 사인이 와야 안심이 된다.

그런 식사가 문득 갑갑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밥을 먹으면 힘이 나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동료들에게 점심을 혼자 먹겠다고 했다. 걱정과 당황들이 느껴졌다. 동료들이 기분 나빠 할까 싶어 ‘일이 좀 많아서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처리해야 한다’고 둘러대고는 밖으로 나왔다.

회사에서 좀 떨어진 순댓국집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그동안 점심은 동료들이나 기자와 먹었고, 저녁과 주말에는 함께 살던 친구들과 식사했으니 거의 몇 년 만의 ‘혼밥’이었다. 거리는 조용했고, 순댓국은 맛있었고, 깍두기는 아삭했고, 마음은 평온했다.

혼자 먹는 순댓국의 매력. (자료사진)

다음날 점심에도 일이 많다고 둘러대고는 혼자 나왔다. 뭘 먹을 지 고민하며 천천히 걸었다. 문득 내 마음대로 메뉴를 선정한 게 꽤 오래됐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무슨 알러지가 있고, 누가 날 것을 안 먹고, 누가 매운 것을 못 먹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했다. 식사하면서는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앞에 놓인 음식을 즐기면 됐다.

그 후로 점점 혼자 점심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던 동료들도 곧 그러려니 하게 됐다. 점심에 나누지 못한 수다는 커피나 술을 마시며 나눴다.

이직 후에도 새로운 동료들과 친해지고 나서는 양해를 구했다. 난 혼밥을 사랑하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혼자 먹는 경우가 많아지니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기자와의 식사 미팅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음식 취향을 생각하고, 함께 어떤 이야기를 해볼지 고민하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 같이 느껴진다. 내가 즐거우니 분위기도 예전보다 부드러워지고 업무 이야기도 잘 된다.

가끔 하는 동료나 친구와의 식사도 재미가 더해졌다. 함께 밥을 먹는 날이면 할 이야기가 아주 많다. 지난 주말엔 뭘 했는지, 요즘 어떤 일이 있는지 몰아서 수다를 떠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할 필요도, 마가 뜰 타이밍도 없다.

꼭 홍보인이 아니더라도 식사가 업무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식당에 가서 주변 테이블을 보면 직장 상사를 ‘모시고’ 밥을 먹는다거나, 동료들끼리 먹어도 말 한마디 없이 서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혹시 매일 하는 식사가 업무처럼 느껴진다면 오늘은 자신 있게 외쳐보자.

“오늘 점심은 혼자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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