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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홍가혜’가 말한다, 올바르게 기억될 권리를
‘그냥 홍가혜’가 말한다, 올바르게 기억될 권리를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20.09.07 11:5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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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인터뷰] 언론보도 피해자 홍가혜씨
6년 지난 지금도 사회적 낙인 여전, 아이에 대한 피해 우려
디지틀조선 등 언론소송 23건 모두 승소했지만 사과 못 받아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 동감해도 실효성 의문

[더피알=강미혜 기자] 낯설면서 익히 아는 이름으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꼭 한 번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짧은 글 속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발신자는 홍가혜. 세월호 참사와 함께 6년 전 언론지상을 뜨겁게 달군 인물이다. 공권력과 언론보도로 피해 입은 그가 지난한 법적 다툼을 벌이며 일정 부분 명예를 회복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터다.

“어떻게 연락하게 되셨어요?”

“예전에 쓰신 글을 보고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홍가혜 오보’ 관련해 2017년 스포츠서울이 게재한 장문의 사과문에 관한 기자칼럼이 뒤늦게 당사자 눈에 들어갔다.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가 근절되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홍가혜’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 그는 공감하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와의 만남은 코로나19 상황과 개인적 사정에 의해 화상으로 이뤄졌다. 루머로 인한 진행형 피해, 언론 소송과 악플 문제, 잊혀질 권리, 그리고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 등에 대한 생각이 랜선을 타고 오갔다.

1시간 반 넘게 이어진 대화에서 그는 거침이 없었고 때론 격분했으며 눈물도 보였다. 동시에 밝고 경쾌했다. 홍가혜란 사람에 대해 연민과 함께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홍가혜(왼쪽)씨와 인터뷰는 코로나 상황을 감안해 모바일과 PC를 통해 화상으로 가졌다.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평범하게 잘 사는 줄 알았어요.

그사이 출산도 했고 현재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예요. 작년에 처음 어린이집을 보냈어요. 엄마들끼리 모이는 단톡방이 있었는데 카카오스토리로 연결되면서 그분들이 저에 대해 더 알게 됐어요. 이후 ‘세월호 홍가혜’하며 뒷담화 같은 말들이 오가더군요. 그래서 어린이집을 관뒀어요. 사람들과 부딪혀 봤자 피해는 제 아이가 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요. 그리고 올해 4월 말부터 다른 어린이집을 보냈는데, 원장님이 지역 내 어린이집 원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저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우연찮게 듣게 됐어요. 아이 투약 실수가 몇 차례 생겨 저에게 사과 전화를 했고 통화종료를 한 뒤 버튼을 잘못 눌러 다시 전화가 걸린 거죠. 제가 듣는 줄도 모르고 인신공격성 발언은 물론 개인사부터 전혀 사실이 아닌 말들까지 다 얘기하시더라고요. 이전에 한 번도 얼굴 붉힐 일 없었고, 심지어 별로 대화한 적도 없는데 말이죠.

저를 둘러싼 여러 말들 중 항상 나오는 얘기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예요. 저에겐 정말 트라우마 같은 말이에요. 2014년도에도, 그 이후에도 똑같이 들었거든요. 지난 6년간의 싸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소송을 통해 ‘잘못 없음’을 증명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에게 저는 여전히 잘못한 사람이더라고요. 더이상 나만 아니면 됐지 식으로 넘어가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저를 좋아하길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건 오만이죠. 하지만 최소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들에 대해선 잊혀지고 다시 올바르게 기억될 권리는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겪은 바론 사람들은 최초 잘못 보도된 것만 기억하고 바로 잡힌 내용에 대해선 너무 쉽게 잊어요. 관심이 없죠. 그로 인해 저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 아이까지 피해를 보는 상황인데 참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기자님께 연락했어요.

세월호 사고 초기에 나돌았던 루머가 계속 회자되는 건가요.

네. 티아라 멤버 사촌을 사칭했다더라 뭐 그런 여러 가지… 거기에 덧붙여 자꾸 저에 대해 잘못된 사실까지 단정해서 말을 만들어요.

루머가 계속되는 건 언론보도 양태 영향도 큰 것 같아요. 최초 보도에 비해 내용을 바로잡는 기사는 그 비중이나 빈도가 현격히 낮기 때문에 일단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니까요.

세월호 당시 저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약 4000건 정도 쏟아진 걸로 알고 있어요. 그 4000건이 하루에 다 나왔다면 이슈가 팡 한 번 터지고 가라앉았겠지만 무려 2주간 보도가 지속됐어요. 지금은 그 기사들 많이 삭제했던데, 어쨌든 홍가혜란 이름이 계속해서 언론에 오르내린 거죠. 이후 제가 석방되고 악플러를 고소했을 때도 기사가 나면서 포털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차지했어요. (해경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홍가혜가 어쨌다더라’ 하며 얘깃거리를 던져주고 이슈가 조금 잠잠하다 싶으면 또다른 뉴스로 이슈를 만들고, 그렇게 언론이 저를 사람들에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효과를 줬어요.

반면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는 기사는 금세 묻혀요. 아, 딱 한 번 언론의 사과문이 실검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네요. 기자님도 쓰신 스포츠서울 사과문이었어요. 언론 역사상 참 이례적인 일이어서 관련 기사도 많았고 유독 주목 받았죠. 근데 그조차도 금방 잊혀졌어요. 누구도 그 이후를 궁금해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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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최초 보도처럼 잘못된 내용을 충분히 보도했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많은 인물로 기억되진 않았을 것이다." 사진: 화상 인터뷰 화면

4000개 뉴스를 생산했던 다른 언론들도 스포츠서울처럼 구구절절하게 사과했다면 지금과 같이 오랫동안 고통받는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네. 그건 확실하다고 봐요. 저를 험담했던 학부모나 원장들만 해도 최초 이슈된 내용들로만 저를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포털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면 우호적 글이라 해도 상당히 논쟁적인 거리나 가십성 강한 내용이 상단에 노출돼요. 만약 언론이 자기들이 쓴 기사 수와 깊이만큼 제대로 정정보도 했다면 그 사과문들이 줄을 이을 텐데 말이죠. 그랬다면 사람들도 ‘소문에 휩싸여 힘든 일을 겪었지만 언론사마저 사과한 사람’으로 저를 기억하지, 논란이 많은 인물로 여기진 않을 거예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제 이미지가 언론이 만든 올가미에 갇혀버린 것 같아요. 세월호 전에도 저라는 사람의 인생이 있었고 지금도 있는데 세월호로만 기억돼요. 저는 ‘세월호 홍가혜’가 아니에요. 그냥 홍가혜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냥 홍가혜’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대화 나누는데 너무 밝은 캐릭터라서 사실 좀 의외예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피해자의 상(像)이 있는 것 같아요. 잘은 몰라도 그 기준에서 저는 싫어하는 유형의 피해자인 거예요. 너무 밝은 거죠. 그래서 인터뷰를 해도 제가 우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일부러 넣는 경우도 있었어요. 무언가 연민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미지가 필요했던 거예요.

근데 저는 소송이나 재판 과정 겪으면서도 정말 잘 안 울었어요. 오히려 너무 밝았던 것 같아요. 천성이 그래요. 좀 많이 긍정적이에요. 사람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외롭게 자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성격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언론에 비쳐진 '세월호 홍가혜'의 이미지와 달리 그는 대화 내내 밝고 경쾌했다. 

외동이세요?

할머니와 둘이서 살았어요. 엄마 아빠는 애초 결혼한 적이 없으세요. 엄마가 어린 나이에 저를 낳았어요. 그 뒤 엄마는 엄마 인생 살러 떠났고 아빠가 저를 지키려고 원양어선도 타고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자연히 할머니 손에 컸는데요, 가정환경이 그렇다 보니 또래보다 성숙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현재는 배다른 동생 두명이 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가난이 싫어서 돈 벌려고. 그러다 이십대 중반이 되면서 ‘이제는 내 나이답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좀 하고 살아야겠다’ 마음먹고 그렇게 산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무렵 세월호 사건이 터졌어요. 그렇게 다시 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세월이 6년이 흘렀어요.

할머니는 손녀딸이 겪는 일을 보시고 건강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세월호 사건 당시 제주에 있었는데요. 제주도 가기 전 할머니 집에 들러서 밥 먹었었어요. 그때 사진 보면 할머니가 한 상 가득 차려서 생선까지 발라주면서 저를 먹이셨어요. 참 건강하셨는데 세월호 때 충격을 받은 뒤로 저를 못 알아볼 정도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너지셨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지만 노인이라 회복이 쉽지 않더라고요. 여전히 거동이 힘드세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주변에 홍가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봤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안쓰럽게 보는 사람에게조차 약간 ‘관종’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사람들은 기사나 인터뷰 등 어떤 콘텐츠를 매개로 홍가혜란 사람을 접하는데 그렇게 느껴졌나 봐요. 

저는 관종의 기준을 사실 잘 모르겠어요. 누구나 관심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있지 않나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영역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 그러면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얘기해요. ‘니가 조용히 살면 된다’고. 근데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조용히 산다는 기준이 뭔가요? 어떻게 하면 조용히 사는 거예요? 어디 산속에라도 들어가서 혼자 살라는 말인가요? 근데 제가 왜요? 잘못이 없는데. 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말하고 싶은 것 말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근데 그게 조용히 사는 것이 아니라고들 해요.

온갖 루머나 미움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 땐 혐오를 혐오로 받아쳐 보기도 했어요. 근데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아무 잘못이 없는 거예요. 싫은 사람 싫어하는 거니깐.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미워할 대상도 없어져서 더 힘들었어요. 결국 스스로를 자꾸 탓하게 됐죠. ‘왜 거기(진도) 가서, 왜 (인터뷰에) 나서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나’ 자책하며 내가 나를 찔렀어요.

그러면서 성격도 많이 변했어요. 예전엔 저 살기 바빠 남들 시선엔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누군가 제 험담을 해도 나만 아니면 된다 생각해서 별로 개의치 않았고요. 근데 세월호 사건을 겪고, 또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니, 참을 수 없는 어떤 예민한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옛날 같으면 무시하고 넘어갈 일까지 하나하나 해명하게 돼요.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한 번 잘못 얘기하면 저는 열 번은 해명해야 오해가 없어지는 거 같아요. 원래 안 그러던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니 삶이 정말 피곤해요. 이게 또 하나의 트라우마인가 싶기도 해요.

지난 몇 년 간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저는 연예인이 아닌데 이상하게 연예인 같은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것도 많은 오해와 미움을 받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나란 사람이 잊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잊힐 권리보다 올바르게 기억될 권리를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법적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고요.

혹시 개명할 생각은 안 하셨어요?

왜 안 했겠어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죠. 철학하는 분도 개명 안 하면 자꾸 구설에 오를 일이 생길 거라고 하시고.(웃음) 근데 다른 이름 뒤에 숨고 싶지 않았어요. 도망가고 싶지도 않았고요. 무엇보다 저희 아빠가 지어주신 홍가혜란 이 이름이 결코 부끄럽지 않았어요. 조금 힘들더라도 갈등 속에서 부딪히기도 하면서 저는 저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론사나 기자 상대로 소송도 많이 진행하셨어요. 디지틀조선일보나 김용호 기자란 분을 상대론 승소하기도 했고요. 배상금은 받으셨어요?

디지틀조선을 상대론 1·2심 다 승소하고 6000만원 배상판결이 내려졌어요. 그쪽서 상고해서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지만요. 계류 상태로 일 년이 다 돼 가는데 도통 진행이 안 되네요. 김용호씨 건은 1000만원 배상 판결이 확정되긴 했는데 아직 못 받았어요. 변호사님 얘기론 서류송달이 안 돼 지체되고 있대요. 조바심은 나지 않아요. 지연이자가 계속 쌓여가는 데다, 어차피 돈을 목적으로 소송을 진행한 것도 아니니까요. 벌금이 얼마가 됐건 저에겐 그 금액이 중요치 않아요. 단지 그 사람들이 위법적인,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지금까지 싸워온 거죠.

김용호씨를 비롯해 기사로 루머 퍼뜨린 언론사 관계자들이 사과는 하던가요?

아뇨. 처음부터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그 사람들이 설 스탠스(stance)가 있을 테니까요. 지금도 끊임없이 논쟁과 논란을 만들면서 자기 자리를 유지하잖아요. 법도 잘 알아서 어차피 법적으로 문제 안 되는 걸 알면서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대중에 비쳐지는 모습을 유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 짠하기도 해요. 저도 아이를 키우지만 내가 땀 흘려 떳떳하게 벌지 않은 돈으로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싶지는 않거든요. 같은 부모 입장으로서 어느 땐 연민을 느껴요.

"언론이 위법적인,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지금까지 법적 다툼을 계속히고 있다." 사진: 화상 인터뷰 화면
"언론이 위법적인,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지금까지 법적 다툼을 계속히고 있다." 사진: 화상 인터뷰 화면

디지틀조선은 배상금액이 꽤 큰 편이에요. 여러 언론 중 본보기로 삼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디지틀조선일보만 걸지 않았어요. 다른 언론사 23곳에도 소송을 제기했어요. 100% 전부 승소했고요. 디지틀조선의 배상액이 큰 것이라면 그만큼 그들이 큰 잘못을 한 것으로 법이 판단한 게 아닐까요?

스포츠서울의 경우 처음부터 진정성을 보여서 예외로 했어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대표 격인 분이 ‘잘못했다’ ‘죄송하다’ ‘부끄럽다’ 말씀하시며 어떤 방식으로든 제가 원하는 대로 다 조치를 취하겠다고 해서 사과문으로 대신했어요. 그 결과 정말 세세한 내용과 그들 잘못에 대한 명확한 워딩이 사과문에 들어갔죠. ▷해당 사과문 보기

다른 언론들도 스포츠서울처럼 두 손 들고 나왔다면 소송까진 안 갔을 수도 있겠네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사과문을 게시하건 뭘 하건 애초 합의할 생각이 없었어요. 다만 조선일보가 사과한다면 조선일보에 한해선 소를 취하할 의향이 있었어요. 물론 조건은 있죠. 저를 다룬 보도의 지면과 시간만큼 저에게 지면과 시간을 달라고 할 참이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왜 조선일보만 특별대우인 거예요?

다른 (군소)언론사가 배상금으로 경제적 타격을 좀 입는 데 비해, 조선일보는 6000만원이든 6억원이든 물어준다고 해서 크게 흔들릴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럴 바엔 올바르게 기억될 기회를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조선일보)이 저에 대해 썼던 기사의 지면 그대로, 시간 그대로 저 역시 말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으면 해요. 아까 얘기한 올바르게 기억될 권리 안에는 피해자가 잘 말할 수 있는 기회도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제가 여러 인터뷰를 하고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오롯이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몇몇 언론이 ‘피해자 홍가혜’의 상황과 문제를 지속적으로 깊이 있게 다룬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랬죠. 지금도 정말 감사해요. 다만 그 역시 제가 겪은 일의 일부이고, 그조차 자기네들(언론사 논조) 방향성과 맞았던 거예요. 그래서 특정한 부분이 더 부각이 됐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모든 미디어의 속성 같아요. 오랜 기간 부딪히고 싸우며 저도 어느 정도 미디어를 이해하게 됐거든요. 사실 그래서 더 기자님을 찾은 것이기도 해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히 다뤄줄 수 있는 분이겠다 싶어서. 예전에 쓰신 기사가 ‘왜 이 사람이 피해를 본 만큼 충분히 (교정해) 보도하지 않느냐’가 주 골자였잖아요. 그 부분이 너무 와 닿았어요.

요즘 언론 오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다시 또 진행되고 있어요. 언론보도로 인해 크게 피해 본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거에도 징벌제가 있었다면 본인도 좀 덜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렇진 않은 거 같아요. 징벌제 도입한다고 실질적으로 언론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물게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언론보도(로 인한 개인) 피해에 대해 많으면 5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배상 판결이 나는 수준인데, 그보다 10배 많아도 1억원 정도예요. 자극적인 기사로 엄청나게 돈놀이하는 언론들에 1억이 대수일까요? 제가 직접적으로 (오보) 피해를 입어봤고, 그로 인해 법의 판단 과정을 겪어봤기 때문에 더 회의적인 것 같아요.

사실 2014년에 악플러 고소하고 언론사 상대로 소송 준비하면서 저도 징벌제 도입을 주장했었어요. 분명 필요한 제도라는 것에 동감합니다. 있어야죠. 그래야 언론이 조금이라도 자중할 테니까요. 하지만 기대하는 것만큼의 실질적 효과를 가져오진 못할 거라고 봐요.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언론사 징벌적 손배제, 이번엔 통과?

악플로도 고생하셨죠. 여전히 못된 댓글이 많나요.

네. 언론이 잘못된 기사를 쓰니까 악플이 달리고, 댓글이 붙을 만한 자극적인 것들을 찾아내 자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니까 더 악플이 생기는 그런 사슬 같아요. 이 문제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구하라씨가 사망했을 땐 제 고통이 되살아난 것처럼 정말 온 몸이 다 아프더라고요.

지난해 악플 문제로 김용민씨가 진행하는 T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김용민씨가 묻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좀 생뚱맞게 들렸을지 몰라도 ‘우리가 일상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고 했어요. 여기 계신 김용민씨부터 바뀌어야 한다고요.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사람들은 왜 악플을 달까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일상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사진: 화상 인터뷰 화면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일상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사진: 화상 인터뷰 화면

김용민씨가 당황하셨겠네요.(웃음) 어떤 의미에서 일상의 언어를 바꾸자는 건가요.

언제부턴가 기사나 방송이나 할 것 없이 너무 튀려고 자극적인 표현들을 서슴지 않는데, 미디어를 통해 그런 폭력적 언어에 노출되다 보니 일상의 언어도 더 과격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말로 사람이 사람을 찌르는 악플 문제도 개선이 안되고… 좋은 대답이 좋은 질문에서 나오듯이 평소 사용하는 좋은 말이 좋은 말을 낳는다고 생각해요.

평범했던 삶이 방송뉴스에서의 몇 마디로 완전히 뒤엉켜 버렸잖아요. 중요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소식까지도 범람하는 뉴스의 홍수 시대에 저 같으면 인터넷도 가급적 안 하고 뉴스의 ‘뉴’자도 생각하기 싫을 것 같아요.

처음엔 그랬는데 다 적응이 되더라고요.(웃음)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다’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는데요. 근데 곰곰이 생각하니 저에게 해당하는 얘기 같기도 해요. 운이 굉장히 나빴지만 또 운이 좋기도 했거든요. 사람들의 관심에서 도저히 멀어질 수 없는 대형 이슈에 놓여 있었기에 사회적 감시 속에서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억울한 일을 덜 겪게 된 측면도 있으니까요.

뉴스를 보다가 ‘내가 기자가 될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언론고시 같은 거 다 보고 진짜 정식 기자요. 특히 MBN에 입사하고 싶어요. 제가 (세월호 때 인터뷰로) 시작한 곳이니까. 아무도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안 할 때, 비록 저는 일반 시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자 역할을 했으니까요.

지금도 그 생각이 유효해요?

네. 언제든지. 준비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 인터뷰에서 내년에 성평등 강사 자격증을 딸 계획이라고 언급하셨던데. 올해도 얼마 안 남았는데 취득하셨어요?

아니요. 아직 못했어요. 정말 사정이 있어서 미루게 됐는데 또 이상한 허언증 논란 이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웃음)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어요. 현재 한부모 가정이라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요, 어느 날 어깨쪽 회전근개에 이상이 생겨 새벽에 응급실 갈 일이 생겼어요. 그때 위급 상황에서 도움받을 지인이 주변에 한 사람은 있어야겠구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퇴원 후 사촌동생도 있고 친한 언니도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죠. 그랬더니 20분이면 갔던 성평등 교육 센터가 2시간 거리로 너무 멀어진 거예요. 아직 아이가 어리기도 해서 잠시 계획을 미뤄둘 수밖에 없었어요.

대화를 마무리하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그냥 홍가혜’의 요즘 일상을 물었다. 이십대 중반에 하고 싶었던 일을 서른셋이 된 지금에서야 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에 소속돼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림 전시도 했고 출판사와 에세이 출간 계약도 했습니다. 사실 직업이 좀 여러 가지예요.(웃음) 원래 하고 싶은 일이 너무너무 많은 사람이거든요. 지금은 요리에 빠져서 레시피 연구하고 쿠킹클래스도 열면서 더 바삐 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김치를 너무 많이 담궈 힘들어 죽을 뻔 했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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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 2020-09-08 06:22:48
홍가혜씨 격하게 응원합니다!!!!!!!

윤도연 2020-09-08 00:22:54
홍가혜씨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요.

기레기가 문제 2020-09-07 22:39:06
사람 매장시켜놓고 사과 한마디 안하는 언론들. 답이 없다

여진호 2020-09-07 21:57:41
정독하게 한 기사입니다. 가혜씨 항상 응원하고, 이런 기사를 써 주신 강미혜 기자님도 응원합니다. 큰 기자 되시겠습니다. 꼭 그리 되실겁니다.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