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PR 시장은 열린 문? 문제는 ‘레퍼런스’
공공PR 시장은 열린 문? 문제는 ‘레퍼런스’
  • 안해준 기자 (homes@the-pr.co.kr)
  • 승인 2020.09.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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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PR 실태 진단 ①] RFP
정량적 요건, 신생업체엔 장벽
‘레퍼런스 위한 레퍼런스’ 관행처럼 여겨져

국민 세금을 갖고 일하는 정부에게 공공PR은 국민과의 연결고리이다. 국민 생활에 필요한 정책을 알리고 설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공PR은 업계에서조차 케케묵은 문제가 풀리지 않는 분야로 지목된다. 이에 <더피알>은 공공PR의 문제가 뭔지 다각도에서 면밀히 짚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공공PR의 출발점인 제안요청서(RFP)에 관한 이야기다. 

- 사업목적
- 과업범위와 업무내용
- 응모(참가)자격
- 평가항목 및 제출서류 

[더피알=안해준 기자] 공공용역 RFP에서 업체들이 많은 불만을 토로하는 부분이 바로 입찰 참가자격이다. 정량적 평가에 해당하는 응모자격을 충족시켜 해당 과업을 충실히 끌고 갈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업계 용어로 흔히 ‘레퍼런스(reference)’라고 불린다.

상당수 발주기관들은 레퍼런스 체크 목적으로 RFP에서 업체들의 최근 3년간 사업 수행 실적을 기본으로 요구한다. 사업 수행이 완료된 시점의 콘텐츠 결과물이나 납품 실적을 통해 해당 업체의 능력을 확인한다. 물론 경영상태도 평가 기준에 포함된다. 회사채, 어음, 신용평가등급 등 기업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곳도 많다.

에이전시 대표 A씨는 “부처 또는 기관에 따라 수행 실적을 인정하는 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그 중에서 특히 유관 기관에서 과업을 수행한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사업 규모가 크고 충실히 수행한 경력이 신뢰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조달청 대변인실의 김대호 사무관도 “발주기관이 제시하는 주제의 사업마다 그 성격과 평가 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면서 “좀 더 투명하고 사업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업체를 고르는 방향에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몇억, 수십억원에 달하는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평가 항목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레퍼런스가 신생 업체들엔 넘기 힘든 장벽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최근 서울특별시가 공고한 ‘글로벌 안전도시 서울 광고 홍보영상 제작용역’ 사업 공고문을 보면, 최근 3년 이내 1억 6600만원 이상의 사업 실적이 있어야 입찰에 참가할 수 있다.

발주 기관 입장에서 신뢰 있는 기업을 선별하기 위해선 레퍼런스는 필수다. 서울특별시의 ‘글로벌 안전도시 서울 광고 홍보영상 제작용역’ 공고문의 일부. 신청 기업의 수행 실적이 참가자격으로 포함되어 있다.
발주 기관 입장에서 신뢰 있는 기업을 선별하기 위해선 레퍼런스는 필수다. 서울특별시의 ‘글로벌 안전도시 서울 광고 홍보영상 제작용역’ 공고문의 일부. 신청 기업의 수행 실적이 참가자격으로 포함되어 있다.

기본 커트라인이 존재하니 신생 업체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물론 발주처 입장에선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최소한의 검증기준이라지만,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일단 ‘레퍼런스를 위한 레퍼런스 쌓기’가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홍보인 D씨는 “프로젝트가 감당이 안 돼 중간에 업체가 바뀌는 경우도 봤다. 공공 입장에서 어느 정도 허들(huddle)을 두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억대 사업을 수행하려면 억대 레퍼런스가 필요한데 애초 그 레퍼런스는 어떻게 충족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때문에 규모 있는 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입찰에 참가, 대대행 업무를 맡는 것이 대형 프로젝트 레퍼런스를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지난 7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측근이 설립한 회사가 정부 용역을 수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사실 업계에선 일감 몰아주기나 금액에 대한 시비보다 ‘레퍼런스 특혜’라는 시선이 많았다.

신생 회사가 2년 간 청와대 및 정부 행사 20여건을 수주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설령 매출 대비 이익이 낮아 회사 경영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하더라도 차후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관련기사: 정부 홍보 특혜 시비…용역 입찰 구조적 문제 손봐야

한 업체 대표는 “정부 행사 성격과 특성을 고려해 수의계약이 왕왕 이뤄지긴 한다”면서도 “신생 업체가 믿을만 한지 판단이 안 되기 때문에 수행 실적 등의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것인데, 그 업체는 무슨 근거로 중요 프로젝트를 따낸 것인지 모르겠다. 탁 비서관이 아니었다면 단독으로 수의계약을 진행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재의 공공 용역 구조”라고 했다.

다만 최근엔 레퍼런스 문제 개선을 위해 신생업체를 위한 별도 프로그램이 가동되기도 한다. 김대호 사무관은 “‘벤처나라’와 ‘혁신시제품 사업’ 등을 운영하면서 신생업체에 최대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판로를 개척하고 이들의 아이템을 원하는 정부 및 유관기관을 연결해 사업 진행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드물긴 해도 일부 프로젝트에선 신생 업체에 유리한 평가기준을 제시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에이전시 대표 E씨는 “과거에는 레퍼런스 기준이 굉장히 불합리하게 다가왔지만 요즘엔 신생업체에게 오히려 가산점을 주는 사업도 생기는 추세다”며 “아예 신생업체를 뽑기 위한 프로젝트도 있어 이전보다는 그나마 기준이 완화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생 기업의 용역 수행을 위한 조달청의 '벤처나라' 사이트 화면.
신생 기업의 용역 수행을 위한 조달청의 '벤처나라' 사이트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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