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배려’라 쓰고 그들은 ‘성희롱’이라 읽는다
그는 ‘배려’라 쓰고 그들은 ‘성희롱’이라 읽는다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20.10.13 16: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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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소규모 기업·스타트업에도 필요한 사회적 감수성
직원 통한 이슈 발생 빈번, 조직문화·오랜 관행 돌아봐야
소규모 기업이더라도 조직 문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소규모 기업이더라도 조직 문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고객 상담 후) 나는 여자만 할인해줘. 남자는 절대 안 해줘.

 

(식사를 할 때마다) 제 수저 놔주시면 저한테 마음 있다는 걸로 오해할 거예요.

[더피알=안선혜 기자] 셰어하우스와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한 중소사업장 대표가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농담조를 섞은 해당 발언들은 얼핏 분위기 완화용 스몰토크로 들릴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희롱에 가까운 성차별적 언사로 읽힌다. 

더피알에 이같은 내용을 제보한 직원 A씨 역시 그랬다. 그는 “최근 겪었던 일들은 너무나 미묘했는데, 성희롱과 친절 그 사이의 애매함에서 여직원들을 이용했다”며 “법적으로 문제를 삼을 수 없는 범위 내에서 여자 직원들은 여자로서의 수치심, 하대를 겪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사장은 여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난 바람둥이라 (왕년에) 헌팅으로 여자들은 쉽게 꼬셨죠. 안넘어오는 여자가 없어요”, “여자들이랑 일하면 마음이 편하고 남자들은 너무 싫어요!” 등의 말을 하는가하면, 여성의 자궁 문제까지 논의(?)했다고 한다.  

A씨는 “(성희롱 등의 문제가) 대기업에서 발생해야 (외부로) 터지는데, 다른 (작은 규모) 회사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을까 싶다”며 “갑을관계에서 더이상 피해를 덜 보는 그런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에 제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희롱성 발언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 업체 사장은 더피알과의 통화에서 “(제보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며 “수저를 챙겨주거나 물을 따르지 말라는 의도였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면) 앞으로 무슨 대화를 나누겠냐”고 황당해했다. 

자궁 관련 이야기도 “난소에 혹이 있어 치료를 받았다는 직원이 있어 딸 아이도 유사한 증상으로 병원에 가야 해 이야기해 줄 것이 있는지 물어봤을 뿐”이라 말했다. 

본인은 의도가 전혀 없었고 불쾌감을 줄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사안이나, 고용주의 일상적 발언에 대해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여럿이었던 셈이다.

중요한 건 높은 성인지 감수성이 요구되는 요즘과 같은 때에 몰랐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사회적 민감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고, 높아진 기준이 적용되는 대상은 비단 규모 있는 기업에 한정된 건 아니다.

▷관련기사: 둔감해도 ‘죄’, 소셜 이슈 민감도 높여라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인 셀레브의 전 대표는 내부 폭로를 통해 직원에 대한 욕설과 여성도우미를 동반한 강압적 회식 등이 외부로 알려지며 결국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성인지 감수성·다양성 존중과 같은 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다. 특히 셀레브처럼 특정 분야에서 이미 유명세를 탄 기업들은 이슈 발생시 언론의 주목도도 높아진다.

비교적 비즈니스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업장일지라도 성장을 꿈꾸는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식의 이슈 발생 패턴을 눈여겨봐야 한다. 전·현직 직원들에 의한 내부 폭로로 기업윤리나 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고, 과거 행위나 잘못이 소환돼 현재형 위기로 발화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사내 성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한샘의 경우도 사건 발생 당시가 아닌 10여개월이 지난 후 네이트판에 게시한 글을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다. 한샘이 연평균 20%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중 발생한 위기였다.

각종 커뮤니티나 SNS 등 온라인 채널이 늘어나면서 개인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문턱이 낮아진 점도 주목할 요소다. 특히 이같은 일들은 내부자 입을 통해 발화해 이슈 파급력을 키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젊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직원 가운데 M·Z세대 비중이 높다. 사회·문화적 민감도가 높고, 부당한 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직원들이 다수라는 이야기다. 수익 모델 구축에만도 힘에 부치는 게 스타트업의 현실이지만, 호시절이 다가왔을 때 이를 온전히 누리려면 적어도 드나든 내부고객(직원)이 반감을 갖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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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2020-11-05 15:58:54
현 시점을 꿰뚫는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