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현장] 떡볶이 어디까지 풀어봤니
[마케팅 현장] 떡볶이 어디까지 풀어봤니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0.11.12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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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 온라인’ 참여, 성적은…
누구라도 이벤트에 진심이게 만드는 마케팅 장인의 한 수

[더피알=정수환 기자] 한국인의 소울푸드이자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이며, 주 1회 이상은 흡입해야 속이 편안해지는 그 음식, 바로 떡볶이. ‘남자들은 떡볶이를 돈 주고는 안 사먹지만 다른 사람이 사주면 그 누구보다 잘 먹는다’고 누가 이야기했을까. 여기 떡하니 반례가 있는데. 기자의 마음속에도 떡볶이는 ‘영혼의 안식처’ 같은 느낌이다.

여느 날처럼 떡볶이가 먹고 싶어 주문하러 들어간 배달앱에서 ‘2020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 온라인’이 개최된다는 배너를 발견했다. 떡볶이 지식은 몰라도 떡볶이를 먹은 양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오만했을까. 후회가 된다) 자신 있게 티켓을 예매하고 대회에 신청했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은 기자를 마치 수험생처럼 대했다. 처음에는 수험표를 보내주더니, 이내 우승 기원 부적도 첨부했다. 모의고사도 볼 수 있게 했다. 요즘 유행하는 ‘셀프 테스트’를 통해 떡볶이력을 미리 측정하도록 한 것. 결과는 40점. 10문제 중 4개 맞았다. 처참하기도 했고, ‘아니 내가 미스터피자, 한신포차, 바르다 김선생, 놀부 부대찌개, 설빙 중 떡볶이 메뉴가 없는 곳을 어떻게 알아’라며 문제를 탓하기도 했다.

배민이 보내준 수험표와 부적. 수능인 줄 알았다.
배민이 보내준 수험표와 부적. 수능인 줄 알았다.
사전 테스트 결과 40점. 생각해보니 이것도 복선이다.
사전 테스트 결과 40점. 생각해보니 이것도 복선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모의고사 오답을 체크하며 복습을 철저히 했다. 수능이라면 n차례 봤기에 이골이 났지만, 그 n차례 봤던 DNA가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점차 이 시험에 진심이 되어갔다.

수능 시험의 30%가 EBS에서 나온다고 해 EBS 교재를 달달 외웠던 경험. 2010년 이후 수능을 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배민에서 시험에 나온다는 영상을 5개 올려줬고, 마치 그 영상을 EBS 강의인양 열심히 필기했다. 노트에는 ‘관악구 호암로, 미림분식, 506번 버스, 31기 졸업생, 승정원일기, 오빠는 풍각쟁이야, DJ부스, 임국희 여성 살롱’ 등 영상 속 다양한 키워드를 적어나갔다. '일도 바빠 죽겠는데 이게 뭐하는 짓일까' 현타가 종종 왔지만, 이렇게 준비하게끔 만든 배민의 마케팅에 살짝 감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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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이 다가왔다. 떡볶이 떡 4개가 평화로이 누워있는 모습의 11월 11일을 떡볶이의 날로 정했다는 배민. 그날 일과를 마친 후 사무실에 남아, 수능 시험장에서 한 것처럼 노트 필기 되어있는 걸 달달 외웠다. 시험을 10분 쯤 앞두고, ‘제1회 떡볶이 마스터즈’ 기출 문제를 풀어봤어야 했다는 생각, 그리고 후회가 스쳐갔다. 시험을 보기도 전에 재수를 직감했던 2010년의 그날이 떠올랐지만 이내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만을 남긴 채 응시했다. 그렇다. 이건 다가올 불길함에 대한 복선이다.

열심히 필기한 노트.
열심히 필기한 노트.

이윽고 시작된 시험. 당황스럽게도 듣기 문제부터 나왔다. 바삭거리는 ASMR을 들려주며 무엇을 먹는 소리냐고 물어, 주저 없이 ‘김말이’를 찍었다. 영어듣기 문제라며 ‘다음 내용을 듣고 주문자가 주문한 떡볶이 토핑이 무엇인지 맞히시오’라고 문제를 냈을 때는 꽤나 당황했다. 하지만 요 근래 ‘브리핑G’ 코너를 통해 다진 영어실력으로 거뜬하게 문제를 풀었다.

배민이 보라고 한 5개의 영상 속에서도 문제가 몇 개 나왔다. ‘고추장 떡볶이는 한국전쟁 직후에 개발됐다’라든지, 마블링 무늬로 친숙한 떡볶이 접시에 대한 내용, 신당동 떡볶이 집의 역사 등등 익숙한 문제가 나와 자신 있게 풀어나갔다. 반면 변별력을 가진, 소위 ‘이 문제 더럽네’라는 생각이 든 것도 꽤 많았다. ‘밀키트’ 제품을 출시하지 않은 브랜드를 묻는다든가, 떡볶이집 3곳의 공통점을 묻기도 했고, 분식점 수가 가장 적은 도시를 맞춰보라 했다.

오픈북, 오픈인터넷 테스트이기에 답을 찾아볼 법도 했지만 진검승부를 해보자는 생각, 그리고 동점자에 한해 더 빨리 낸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공지를 보고 김칫국을 벌컥벌컥 마셨다. ‘혹시 늦게 제출해서 상품을 못 받으면 어떡하나’ 싶어서 일단 찍었다.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아 ‘출제자 나와!’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했고,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해 ‘문제 만든 사람 인터뷰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문제는 참신하고 집요했다.

다만 딱 한 문제, 마지막 문항은 인터넷으로 검색해 정답을 입력했다. 이 문제에는 정답자 1명 당 기부금 1만원이 적립되고, 적립된 금액만큼의 떡볶이 쿠폰이 사회 취약계층 아동청소년들에게 기부된다고 적혀있었다. 무조건 답을 맞혀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더피알 기자의 입장에서 더욱 눈길이 가는, 브랜드가 직접 노출되는 문제들도 있었다. 죠스떡볶이, 스쿨푸드, 감탄떡볶이, 삼첩분식 등 다양한 떡볶이 브랜드가 이번 시험에 참여한 모양이었다. 이들 문항에는 모두 ‘이 문제는 협찬사와 함께하는 문제입니다’라는 공지가 나와 있다. 아무래도 뒷광고 문제가 불거진지 얼마 안 돼 조심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협찬사와 함께 한다고 문제에 명시했다.
협찬사와 함께 한다고 문제에 명시했다.

그렇게 준비된 45문제를 모두 풀고 시험지를 제출하니 마음 속 짐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았다. 7시에 시작해 40분 동안 시험을 볼 수 있는데, 정확히 20분 만에 모든 문제를 다 풀었다. 높은 점수는 절대 안 나올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망상을 자주 하는 INFP(MBTI의 한 종류)답게, 떡볶이 쿠폰을 받으면 누구랑 먹을까, 무슨 떡볶이를 먹을까, 김말이는 시켜야 하나 등등 다양한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8시부터는 방송인 김신영과 가수 헤이즈가 라이브방송을 진행했다. 이벤트, 축하 공연 등 다양한 요소가 있긴 했으나 오답풀이가 진행되는 장면에서 수능날 물제풀이를 해주던 EBS가 겹쳐졌다. 당연히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으며 떡볶이 시험 오답풀이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그러면서 틀린 문제에 슬퍼하고 맞춘 문제에 기뻐하는 내 자신이 갑자기 처량했다.

방송에서는 98점으로 이번 시험의 1등을 한 사람도 공개됐다. 떡볶이 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동호회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함께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저런 사람을 상대로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이내 9시, 방송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왔다. 자기합리화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성적이었다. ‘48점’. 평균인 66점은커녕 50점도 못 넘은 것이다. 재수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떡볶이와 순대를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처참한 성적표. 이렇게 못볼 줄은 몰랐다.
처참한 성적표. 이렇게 못볼 줄은 몰랐다.

배민 측은 “올해 배민 떡볶이 마스터즈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새로운 온라인을 통해 모두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짜여져,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한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떡볶이 마니아는 물론 온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실 코로나 특수 상황에서 배민만큼 수혜를 크게 본 브랜드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득을 본 것과는 별개로 합병, 독점 등 여러 부정적 이슈로 인해 본래 가지고 있던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이런 이벤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마 ‘배민’만 할 수 있다. 몸집이 얼마나 커지든 간에 본래 가지고 있던 키치하면서도 B급인 마케팅을 지속하며 MZ세대에게 소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이번 떡볶이 마스터즈의 경우 1000명이 참여했을 정도라고. 코로나로 무기력이 심해지고 있을 즈음, 비대면으로 재미 혹은 자극을 적절하게 준 이벤트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문제를 푼 사람들은 대부분 배민으로 떡볶이를 시켰을 것이기에(배민이 쿠폰도 주었다) 브랜딩 효과도 적절했을 것이다. 혹시나 배민이 유튜브도 하는 줄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그 존재감을 알릴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쪼록 48점이라는 매우 저조한 숫자가 나왔기에 내년을 기약할 예정이다. 점수를 잘 받으려면 문제에 나왔던 전국 각지의 다양한 떡볶이들을 먹어봐야하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많은 사람들이 기자와 같이 생각해 전국 각지로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배민이 내세우는 지역과의 상생인가 싶은, 한 발 더 나간 생각도 들었다. 일단 기자는 지금보다 살이 더 찔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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