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현장] 지속가능을 세뇌당하다
[마케팅 현장] 지속가능을 세뇌당하다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0.11.1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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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이케아 랩(LAB) 탐방
이케아 성수 랩
이케아 성수 랩

[더피알=정수환 기자] 꿈과 희망의 나라. 어렸을 때는 놀이동산이 그랬고, 지금은 이케아가 그렇다.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모든 이들의 염원 역시 기자에게도 존재하기에 ‘꿈과 희망의 나라’일 수도 있지만, 것보다는 좀 더 유치한 의미에 가깝다.

말 그대로 놀이동산 갈 때의 설렘을 이케아에서 종종 느끼곤 한다. 넓은 매장 안에 있는 쇼룸은 마치 어트랙션같고, 필요 없는 물품이지만 하나쯤은 기념품으로 쟁여오곤 한다.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위해 특정 ‘존(Zone)’을 찾아가는 것처럼, 사고 싶은 물품을 보기 위해 침실존, 서재존을 찾아다닌다. 이케아에서 파는 음식도 어딘가 묘하게 놀이동산 음식같이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경제적 자립을 아직 못한, 나이만 먹은 기자는 이제 부모님에게 놀이동산이 아닌 이케아를 가자고 조르고 있다.

그런 이케아가 성수동에 팝업스토어 ‘이케아 랩’을 열었다고 하니 당연히 방문 욕구가 솟았다. 해외에만 있던 디즈니랜드가 마치 한국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예전에 썼던 실험실 관련 기사에서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랩(lab)이라는 용어를 팝업 혹은 플래그십 스토어에 많이 쓴다. 그 어원 자체가 실험이기 때문에, 공간 내에 참여자와 세팅된 사안이 존재한다”며 “기업은 체험 형태의 혁신적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고, 소비자 역시 신선한 콘텐츠를 기대하며 공간에 들어선다”고 설명한 바 있다. 랩을 표방했으니 말 그대로 이케아가 얼마나 신선하고 이케아스러운 콘텐츠를 내세웠을까 기대를 하며 성수 이케아 랩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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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부지가 트레이드마크기에 서울에 매장을 내는 것은 엄두도 못 냈던 이케아다. 그래서 당연히 매장 크기가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매장은 더 컸다. 큰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길게 매장이 늘어서있고, 2층에도 비슷하게 공간이 구성돼있다.

1-2층을 관통한 복도 가운데에는 여러 현수막들이 겹쳐 있다. 각 현수막에는 이케아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가치들이 적혀있다.

가운데 걸려있는 현수막들
가운데 걸려있는 현수막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전방에서 “돈과 지구를 아끼세요(SAVE MONEY AND THE PLANET). 일상 속 작은 변화만으로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을 만나보세요. 우리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지속가능해질 수 있도록 간단한 솔루션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있어요”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뒤에도 비슷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공간을 들어가기도 전에 이 공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대충 그들의 의도대로 이케아는 ‘지속가능함을 추구하는 브랜드구나’를 원래 알고 있었지만 다시 머릿속에 인식시킨 뒤, 눈앞에 보이는 ‘숍(Shop)’ 공간으로 입장했다. 참고로 공간은 숍, 팝업, 이케아 푸드 랩, 쇼룸, 인테리어 디자인 오피스 등 총 5개가 독립적으로 구성돼 있다.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이는 코로나로 인해 방역은 철저히 진행되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행동을 요구했는데, QR체크를 하고 온도를 재는 것이야 다른 곳이랑 별 다를 바 없지만, 원활한 이동을 위해 ‘QR코드 인증을 완료하였습니다’라는 문구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QR코드 인증 문구
QR코드 인증 문구

이유인즉 앞서 말한 5개의 공간은 독립된 채로 존재하고, 정해진 루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이 임의로 가보고 싶은 곳을 먼저 방문하기 때문에 모든 장소의 입구에는 QR을 체크하는 직원이 있다. 각각의 공간을 입장할 때마다 QR을 찍는 것은 번거로우니 인증 사진을 찍어 직원에게 보여주면 빠른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숍 안에서는 당연하게도 소형 가구와 라이프스타일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다. 큰 가구들은 인터넷에서 주문할 수 있다고. 의자부터 시작해 전등, 바구니, 텀블러 등 공간을 들른 사람들이 기념해갈 수 있는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한정판으로 판매하는 후드티도 있길래 냉큼 집어왔다.

숍에서는 다양한 물품을 팔고 있다.
숍에서는 다양한 물품을 팔고 있다.

안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지속가능’을 외친다.

입장하니 일회용 플라스틱 수백 개를 겹친 큰 조형물이 보인다. 앞으로 가구 제작에 재활용 소재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이라며, 플라스틱도 그 중 하나라는 설명이 적혀있다.

플라스틱 병으로 만든 조형물

또 각 가구들에는 제작 배경이 적혀 있다. 대나무로 만든 가구 주변에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나무 : 자연이 선물하는 신비로운 소재인 대나무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완벽한 선택이에요. IKEA는 생장속도가 빠르고, 견고하며, 방수 효과가 뛰어난 대나무를 활용해 오랫동안 변함없는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푯말이 놓여있는 식이다. 이런 푯말이 여러 개가 있다.

대나무를 사용한 제품 앞에 붙어있는 푯말.
대나무를 사용한 제품 앞에 붙어있는 푯말.

구경을 하는 와중, 위화감이 드는 내용도 보였다. ‘기분이 좋아지는 지구’가 주제인 푯말에는 “IKEA는 공정한 임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환경에서 제품이 생산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IKEA 제품을 구입하시면 그 제품의 생산 노동자들이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답니다. 이러한 노력에 함께 동참해주세요”라고 적혀있다.

사실 최근 이케아의 이슈 중 하나는 ‘이케아 한국법인’ 직원들이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꿈의 직장으로 여겨지던 이케아의 배신이랄까. 각각 필요한 상황에 따라 한국 기준과 세계 기준을 번갈아 내세우니, 응당 노동자들이 누려야할 권리를 못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해외 이케아는 제품 제작에 있어 저런 부분까지 신경 쓰며 노력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소중한 ‘내부 고객’인 직원들 케어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일까. 까르푸도 그렇고 왜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기준이 바뀌는 것인지, 씁쓸함이 감돌았다.

조금 답답한 마음에 바람도 쐴 겸, 나와서 2층으로 향했다. 쇼룸부터 들렀는데, 완연한 연말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보통 이케아의 쇼룸을 보면 ‘내 집에 배치하고 싶다, 이런 인테리어로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팝업스토어의 쇼룸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우리 집에 들이기엔 하나같이 과한 소품들이었다.

2층 쇼룸의 모습.
2층 쇼룸의 모습.

설명을 보니 스웨덴 스칸디나비아 전통 스타일을 구현해놓았다고. 이 설명을 듣고 공간을 다시 보니 이케아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이케아의 뿌리를 설명하는데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많은 브랜딩 공간을 봐왔지만 아예 제품을 팔지 않았던 아모레성수를 제외하고는, 가장 판매에 무심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하긴 판매는 일반 매장에서 이미 잘 되고 있을텐데, 접근성이 좋은 서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메시지를 느끼기만 해도 그만 아닐까.

맞은 편 공간은 인테리어 디자인 오피스였다. 실제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왠지 애처로워 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고, 일하는 자신을 집요하게 구경하는 상황에서 과연 일이 제대로 될까 싶었다. 입구에서 QR코드를 찍어주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공간은 인테리어를 상담해주는 공간으로 초반에만 오픈을 해 놓았다고. 추후에는 예약을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어서 편해지기를 바라며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2층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2층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사람이 꽉 차 있어 먹을 엄두도 안 났던 푸드 랩을 지나고, 팝업 공간으로 향했다.

입장하자마자 어마어마한 초록 언덕과 흰색 언덕이 가자마자 반겼다. 설명을 들으니 플라스틱과 버려진 나무 조각들을 잘개 쪼개 산으로 형상화했다고. 그리고 이를 재활용해 만든 제품(의자)도 함께 전시돼있다.

플라스틱과 나무조각으로 만들어진 산들.
플라스틱과 나무조각으로 만들어진 언덕들.

또 각 거울에는 QR코드와 함께 지속가능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QR코드를 통해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케아가 말하는 지속가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 마지막 공간에 오기 전까지도 이케아는 계속 지속가능만을 이야기한다.

바깥 복도에는 이케아가 추구하는 여러 가치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들은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고, 나무라는 소재를 좋아하며,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 가스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또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최소화하며,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를 위하며, 비건을 위한 제품도 만들고 있고, 100% 지속가능한 면섬유만을 쓴다.

이케아는 계속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케아는 계속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말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다. 지구를 지키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100번을 말해도 모자람이 없는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100을 말하는 건 듣는 사람이 조금 힘들지 않겠나. 맞는 말이어도 자꾸 들으면 지겨운 부모님의 잔소리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이케아가 원래 어떤 회사인지 기자가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로 이 곳을 찾아와 기존 이케아에 대해 모르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런 노골적인 외침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케아는 지속가능 외에도 다양한 매력, 다양한 콘텐츠를 지닌 기업인데 계속 지속가능만 외치니 안타까웠다.

또 ‘랩’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과연 그 이름에 맞는 공간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랩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공간이라면 대부분 제공한다는, 소비자가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콘텐츠도 없었을뿐더러 획기적이며 실험적인 콘텐츠도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오로지 ‘지속가능한 우물’이다. 일본 하라주쿠 이케아의 ‘가상 인플루언서’같은 신기한 모습을 기대하고 갔지만 볼 수 없었다.

▷관련기사: [브리핑G] 일본 이케아엔 인플루언서가 산다

모든 기업에서 지속가능이 화두다.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건 이미 자명한 사실이고, 그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 역시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모두가 지속가능만을 외쳐 다른 콘텐츠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케아의 이번 공간이 그랬다. 다채롭지 않은 공간은 더 이상 놀이동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케아 랩 공간 안의 기자는 지속가능이란 풀리지 않는 숙제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방과후 나머지공부에 당첨된 학생 같았다.

안 그래도 요즘 계속 환경과 지구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약간의 ‘유희’를 기대한 팝업스토어 공간에서조차 이를 생각해야하니 서러울 수밖에. 이케아가 계속해서 어른들의 네버랜드가 되어주길, 나의 원더랜드가 되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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