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1-27 15:23 (목)
언론의 ‘젠더 바라보기’, 감수성 왜 부족한가
언론의 ‘젠더 바라보기’, 감수성 왜 부족한가
  • 문용필 객원기자 (essayyj@gmail.com)
  • 승인 2020.12.0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권보도준칙 번번이 유명무실, 기사·칼럼이 되레 ‘도마’
“언론계 전반의 남성중심적 문화, 여전히 문제 의식 못 느끼는 듯”
보도로 2차 피해 유발…성비불균형·뉴스유통 구조 원인

[더피알=문용필 객원기자] 과거 남성 중심의 문화가 팽배했던 한국 사회가 점점 변화하고 있다. ‘성평등’ 혹은 ‘성인지 감수성’이 주요 화두로 자리 잡았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이에 발맞추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올바르게 알려야 할 언론 역시 예외일 순 없다. 그러나 달라진 사회적 눈높이와 시대 감수성에 걸맞지 않는 언론계 관행이 젠더 문제를 돌출시키기는 역설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은 성별과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중략)

언론은 사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성을 상품화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1년 제정하고 2014년 개정한 ‘인권보도준칙’ 일부다.

남성 중심적이었던 한국 사회에 성평등과 인권의식이 점차 자리 잡으면서 시대변화에 부응해야 할 언론의 책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당연한 보도윤리인데 제정 시기가 10년이 채 안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늦은 감은 있어도 이같은 보도윤리가 실제 기사나 언론사 내부에 원활하게 적용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특히 미투(Me Too)운동 이후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언론계의 전반적인 성인지 감수성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일례로 한국양성평등진흥원과 서울YWCA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관련 언론보도(1.1~4.26) 982건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성평등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평등적 보도사례는 9건(0.9%), 성차별적인 보도사례는 150건(15.3%) 발견됐다”고 밝힌 바 있다. 비율 차이가 꽤 커 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언론 혹은 언론인의 성인지 감수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사례가 이어졌다.

MBC는 기자 입사시험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문제 제기자를 피해자로 칭해야 하는가, 피해호소자로 칭해야 하는가’라는 취지의 문제를 출제했다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사과했다. 서울신문은 곽병찬 비상임 논설고문의 칼럼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MBC는 지난 9월 신입기자 필기 시험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 호칭을 묻는 문제를 내 논란에 휩싸였다. MBC 측 사과문
MBC는 지난 9월 신입기자 필기 시험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자 호칭을 묻는 문제를 내 논란에 휩싸였다. MBC 측 사과문

피해상황 묘사·자극적 표현, 관용구처럼 쓰여

<더피알>의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한국 언론의 전반적인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송경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는 “언론사에서도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실시되지만 실제 기사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편집국 내에서 성차별이나 성인지 감수성에 반하는 행위가 존재하는지는 약간 다른 부분”이라며 “성인지 감수성이 체화되지 않은 기사들이 종종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은 “언론이 (성범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는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다”며 “피해사실을 너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거나 피해상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은 삽화나 화면이 들어가는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품위 잃은 언론들의 도 넘은 보도

이선민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언론에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듯하다. 보도 내용뿐만 아니라 취재 전후와 기자들의 일상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며 불법촬영물 유포로 물의를 빚은 이른바 ‘기자 단톡방 사건’을 언급했다. 

지난해 남성 기자들이 모인 익명 단톡방에서 2018년경 불법촬영물이나 성매매업소 정보 등이 공유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이 일었다. 출처: 디지털성범죄아웃
지난해 남성 기자들이 모인 익명 단톡방에서 2018년경 불법촬영물이나 성매매업소 정보 등이 공유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이 일었다. 출처: 디지털성범죄아웃

아울러 “여성단체 등 시민단체들이 (언론의) 인권감수성과 관련해서 많은 문제제기를 했는데 (잘못된) 관행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협회의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이나 ‘인권보도준칙’에만 잘 따라도 문제되는 보도가 나오지 않을 텐데 그게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현직 기자인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디지털콘텐츠부 젠더팀장)는 “성범죄 (관련) 보도의 경우 범죄의 심각성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해야 하는데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거나 불필요한 표현들이 관용구처럼 쓰인다”며 “(여성) 성범죄 피해자는 연약한 존재로, 남성을 특정 동물로 묘사하는 등 여성단체들의 언론 모니터링을 보면 다양한 사례가 있다. 큰 고민 없는 (이같은) 관용적 표현이 (현재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 문제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한국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 배양을 가로막는 환경적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남성기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2019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조사 대상 언론사에서 2018년도 여성기자의 비율은 31.5%로 남성(68.5%)에 크게 못 미쳤다. 약 3:7 정도의 성비불균형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종이신문과 방송은 전년도 대비 여성기자 비율이 각각 3.1%, 8.2% 늘어난 수치다. 물론 모든 언론사의 남성기자 비율이 훨씬 높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데이터만 놓고 보면 언론계 내부에 남성 중심적 문화가 여전하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언론사 조직구조, 여전히 남성중심적

상황이 이렇다면 데스크 혹은 간부급 기자들의 여성 비율도 낮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한국여기자협회가 지난해 ‘연간 여기자’를 통해 발표한 27개 언론사 여성 보직 현황(2019. 10. 5 기준, 31개 회원사 중 뉴스1, 코리아타임스, MBN, MBC 제외)을 보면 임원은 3.5%(4명)에 그쳤으며 국‧실‧본부장은 6.9%, 부국장‧부본부장‧에디터는 18.5%에 불과했다. 부장과 차장은 각각 14.6%와 24.4%였다. 이 정도면 꽤나 높은 ‘유리 천장’인 셈이다.

데스크와 간부급 기자들이 매체 및 보도의 방향성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한국 언론의 상황에 비춰볼 때 간부급의 성비불균형은 자연스럽게 언론사의 성인지 감수성 둔감화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최진주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은 “유교적,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상황에서는 젠더감수성이 좋은 보도가 나오기 어렵다. 그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 언론사 조직 자체는 위계가 강하지 않나”라며 “보도뿐만 아니라 조직 자체도 젠더 밸런스를 갖추고 민주적으로 (언론사를) 운영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남성 기자들이나 언론사 간부들이 성인지 감수성에 둔감하다고 싸잡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데이터가 하나 있다.

기자협회가 지난 8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자들의 34.2%는 현재 근무하는 언론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낮다’는 의견은 27.9%였다. 하지만 여성기자들로 한정하면 48%가 ‘낮다’고 응답했다. 연차별로도 차이가 있었다. 21년 이상 기자들은 52%가 ‘높다’고 답했지만 5년 미만 기자들은 41%가 성인지 감수성이 ‘낮다’고 봤다. 즉, 여성이거나 젊은 기자일수록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에 문제가 있음을 더 크게 인지하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 상암 MBC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전MBC 김지원(가운데) 아나운서가 발언하는 모습. (자료사진) 뉴시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지난해 10월 서울 마포구 상암 MBC본사 앞 광장에서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전MBC 김지원(가운데) 아나운서가 발언하는 모습. (자료사진) 뉴시스

이윤소 팀장은 “인권이나 성평등에 관심이 많은 일선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더라도 최종단계에서 검토하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그러한) 노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며 “뉴스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은 사회적 한계가 있다”고 봤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양성평등 위해 조직문화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

또 한 가지 원인은 한국 언론계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뉴스 유통구조다.

대부분의 뉴스 소비가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통해 이뤄지다 보니 대형 언론사, 소형 언론사 할 것 없이 조회수를 높이려 성인지 감수성에 반하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윤소 팀장은 “포털뉴스 랭킹이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극적으로 (제목이) 향하게 된다. 단지 언론뿐만 아니라 미디어 환경 자체가 전반적으로 성평등 해지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을 나타냈다.

이러한 문제는 언론사의 콘텐츠 전략 부족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 ‘뉴스 콘텐츠’라는 표현이 쓰이는 시대이긴 하지만 적어도 언론기사는 흥미 유발형 콘텐츠와는 차별화돼야 한다. 지나친 엄숙주의는 지양하더라도 기사의 퀄리티나 참신한 기획 등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이제 ‘트루체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조회수에 매몰된 기사는 뉴스의 품질 뿐만 아니라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까지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뉴스 소비자의 언론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언론사들의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성평등 요구↑…‘게이트 키퍼’ 등장 고무적

그럼에도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려는 언론계의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정연 젠더데스크는 “새내기 언론인들 중에는 성평등을 상식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 이들과 함께 조직이 구성되고 운영돼야 한다. 그들을 비롯한 내‧외부적인 (성인지 감수성) 요구가 있다”며 “언론사가 참 안 바뀌는 조직이긴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 측면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2018년부터 기사 내 성별표기 방식을 개선했다. 성별표기가 없어도 이해에 지장 없는 기사엔 굳이 이를 표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비슷한 시도는 경향신문에서도 나타났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경향신문은 지난 7월 기사작성 원칙 등을 담은 스타일북을 발행했는데 성별을 꼭 알려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별 미표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울러 ‘처녀작’ 대신 ‘첫 작품’, ‘저출산’ 대신 ‘저출생’ 등 성평등과 맞지 않는 단어들도 바꾸도록 했다.

KBS는 각종 성비위 관련 상담과 조사를 전담하는 성평등 센터를 오픈했고, MBC와 SBS 노조에는 성평등 위원회가 꾸려졌다. 서울신문은 서울젠더연구소를 발족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장면은 ‘게이트 키퍼’의 등장이다. 한겨레와 서울신문 등이 만든 젠더데스크 제도가 그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몇몇 언론사에서) 젠더 관점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젠더 에디터 등의 제도를 운영하거나 (젠더) 전문플랫폼 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며 “기사를 쓸 때 남성 중심적 조직에서는 이슈 발굴, 보도 태도 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도입하는 제도”라고 바라봤다.

그렇다면 젠더 전담 부서는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이정연 젠더데스크 “젠더 관련 이슈가 있을 때 기사발제나 기획발제를 함께 논의하고 편집회의에 참여해 성평등한 관점을 더욱 반영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한다”며 “성범죄 관련 기사를 (살펴봐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도 있고 표현상의 문제나 개선해야 할 점이 있으면 해당 부서장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구성원들 의견을 수렴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데 반영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한겨레, 디지털 성범죄 끝장낸다?

다만 김수아 교수는 “젠더 에디터 제도와 같이 개인의 판단을 요구할 경우, 조직 전체의 감수성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보다 전사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선민 강사는 “(젠더) 기구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권한을 줘야 한다. 데스크 차원에서도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송경재 교수는 “외부적으로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있다”며 “언론사가 자사 인지도 조사나 독자 만족도 조사에 성인지 감수성 관련 질문을 포함한다면 편집국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송 교수는 “아직은 (성인지 감수성이 완전히) 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이를 필터링하고 외부 지적사항을 언제든 수용할 수 있는 문화와 편집국의 유연한 분위기가 필요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윤소 팀장은 “신입기자 뿐만 아니라 데스크도 교육을 받으면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