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 PI’에 3년째 돈 쓰는 고용노동부, 정책홍보 일환?
‘장·차관 PI’에 3년째 돈 쓰는 고용노동부, 정책홍보 일환?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21.01.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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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500만원 배정, 고용부 측 “중소업체 참여 위해 (SNS) 과업 나눈 것”
주요 부처 대부분 디지털 소통 업무 안에 PI 활동 포함, 영상 제작
전문가 “국내 기관장 및 부처·센터 홍보 남발되는 경향 강해”
고용노동부 유튜브에 게재된 이재갑니다 코너 영상
고용노동부 유튜브에 게재된 '이재갑니다' 코너 속 영상 장면. 

[더피알=안선혜 기자] 고용노동부가 장·차관 활동을 담은 영상 홍보 용역을 3년째 별도로 발주하고 있다.

국민에게 수혜가 돌아가는 정책 홍보가 아닌, 기관장 개인 홍보에 국민 세금을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경기침체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고용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는 활동이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주한 ‘2021년 고용노동부 장·차관 활동 홍보영상 제작’을 위한 사업제안요청서에는 “고용노동 정책 방향 및 성과 등을 영상에 반영·확산하고 기획 영상 등을 통해 기관장 MI(Minister Identity·장관 정체성)를 효과적으로 구축”한다는 사업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해마다 역점 과제는 다르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양방향 소통 강화’라는 취지에서 장·차관 참석 행사·간담회 등 현장 행보를 비롯해 기획 영상 제작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고용노동부 유튜브 채널에는 ‘이재갑니다’와 같은 고정 코너를 통해 이재갑 장관의 현장 방문이나 행사 참여, 간담회 모습을 담아 전달하고 있다.

기관장 영상 홍보 용역이 별도로 발주되기 시작한 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한 이듬해인 2019년부터로, 올해까지 매년 지속되고 있다. 첫 용역은 7000만원으로 시작해 지난해엔 8000만원, 올해 사업은 9500만원 규모로 책정됐다.

장·차관 현장 영상을 담는 용역과는 별개로 고용노동부는 2억5000만원 규모의 SNS 운영 용역을 발주하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비롯해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운영과 정책기자단 운영·관리 업무가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 측은 장·차관 활동 홍보영상 용역이 특별히 장관 이미지 구축을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디지털소통팀 관계자는 “기관장뿐 아니라 현장의 여러 활동을 국민 눈높이에서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디지털 소통에서 영상에 대한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데다, 발주 금액이 2억2000만원이 넘어가면 큰 기업들의 참여로 영세한 중소기업은 길이 막히기 십상이라 현장 행보 영상만 따로 발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증가한 금액 또한 한 달에 8편 이상의 영상을 찍는 업무를 고려했을 때 인건비 부담을 토로하는 업체들의 사정을 고려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기관장 홍보영상 제작을 별도 용역으로 발주한 건 18개 정부 부처 중 고용노동부가 유일하다. 다만, 보건복지부의 경우 SNS채널 컨설팅 사업을 맡기면서 복지부 기관장 PI(President Identity·대표 정체성) 개발과 이를 활용한 채널별 운영 컨설팅을 과업 중 하나로 의뢰하고 있다.

별도 용역을 내지 않았다뿐이지 다른 부처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업에 장관 동정이나 PI 차원 콘텐츠 개발을 포함시키지 않은 부처들도 실제 채널 운영에 있어서는 기관장을 등장시킨 콘텐츠들을 다수 제작한다.

기관장이 영상에 출연해 부처의 주요 정책 아젠다를 알릴 수는 있지만, 주와 부가 뒤바뀌는 현상은 주의해야 한다. 정책 홍보를 명분으로 단순 동정에 별도 예산이 크게 투여된다면 재고가 필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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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부의 경우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어디에도 장관의 동정을 알리는 게시물은 없다. 용접공으로 일했던 90세를 넘긴 할머니들과의 인터뷰를 담거나 코로나 상황에서 휴일에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팁을 전달하는 등 정책 캠페인 차원에서 기획한 영상들과 현장을 위한 안전 메시지 위주로 구성돼 있다.

다른 나라들도 장관의 공식 기자회견이나 정책 회의 내용을 담은 영상은 게재하지만,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기관장들이 정책에 숟가락 얻기식으로 별도 기획이 들어간 영상에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최홍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일전에도 박능후 전 장관이 등장한 보건복지부 추석 포스터를 비롯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타임지 광고 등을 둘러싸고 세금을 이용해 개인 PI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는데, 기관장뿐 아니라 부처 자체를 홍보하는 경우도 많다”며 “가시성을 높이고 기관 커뮤니케이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전략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남발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공공기관들이 기관장 PI나 기관 자체의 업적을 알리는 데 공을 들인 건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정치에 기반을 둔 각 지자체장들이 필요에 의해 활용한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정부 차원에서 유튜브 소통을 강화하면서 각 부처나 기관 등에서도 유튜브용 콘텐츠 제작에 필요 이상으로 골몰하고 있다.  

최 교수는 “정부 기관별 필요한 공공메시지로 신뢰 받아야지, 그에 앞서 예산을 따로 편성해 기관장이나 부처 내지 센터에 대한 홍보를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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