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아닌 손가락이 보이는 시청자도 있다
달이 아닌 손가락이 보이는 시청자도 있다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21.03.18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토크] 콘트롤 불가한 날 것의 콘텐츠가 지닌 위험성
내부에서는 알 수 없는 외부 시선에 보이는 민낯
MBC ‘아무튼 출근!’에 출연한 9년차 은행원. 방송화면 캡처.
MBC ‘아무튼 출근!’에 출연한 9년차 은행원. 방송화면 캡처.

[더피알=조성미 기자] 평범한 일상도 남들과 공유하면 콘텐츠가 된다. 주효한 콘텐츠 장르로 자리잡은 브이로그(vlog)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는 스타들이 평범한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미지의 영역을 직접 알려주기도 한다.

기업들도 직원들의 일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회사에 대해 소개하는 직장인 브이로그 콘텐츠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연구소나 생산시설을 비롯해 잘 알지 못하는 직무에 대해서도 영상 콘텐츠로 보여준다.

소비자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대목이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 공개되면서 예상치 못한 이슈를 마주할 수 있다.

MBC가 새롭게 시작한 예능 ‘아무튼 출근!’은 다양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직장인들의 일터를 엿보는 직장인 브이로그를 표방한다. 지난 2일 첫방송에서는 9년차 은행원의 ‘밥벌이’가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연금사업부에 근무하며 영업점에서 고객들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문의에 답해주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업무에 대해 보여주는 채 1분이 되지 않는 장면에서 의외의 것을 보았다. 고객에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직원들이 본사에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은행에 방문해 금융 상품을 권유받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상품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채 판매하는 구조가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창구직원들은 많은 분야의 다양한 상품을 넓게 다루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해주는 이도 있었지만,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시중은행들의 불완전판매로 손해를 입은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금융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확인하는 장면이 된 셈이다.

‘국셔틀’ 논란이 됐던 한국배구연맹의 영상의 한 장면.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국셔틀’ 논란이 됐던 한국배구연맹의 영상의 한 장면.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앞서 한국배구연맹이 배구팬들에게 선수들의 일상을 재미있고 친근하게 전달하고자 제작했던 콘텐츠도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 구단의 식당을 방문해 선수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후배가 선배의 국을 떠다 주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사회전반에서 악습으로 여겨지는 서열문화가 스포츠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팬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결국 연맹은 해당 영상을 삭제하고 구단은 사과문을 내놓게 됐다.

그동안 내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일들이, 단 한 번도 의문을 느껴본 적 없는 것들이 외부의 시선에는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알지 못했던 문제를 깨닫고 개선해가는 것 역시 순기능일 수도 있다.

다만 콘텐츠를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사전에 예측하고 콘트롤 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지적이 언제든 제기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달을 보라하니 손가락을 본다.’ 불경에 나오는 이 말은 표면적인 것에 집착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달이 아닌 손가락에서 본질이 드러나기도 하는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