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성차별’ 논란과 언론의 묻지마 호들갑
MLB ‘성차별’ 논란과 언론의 묻지마 호들갑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4.09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토크] ‘쌩얼 사수’ SNS 게시물 도마
네티즌 의견 전달 보도 다수…브랜드가 먼저 깐깐한 ‘불편러’ 돼야
논란이 된 MLB의 광고(왼쪽)과 사과문. MLB Korea 인스타그램
논란이 된 패션브랜드 MLB의 광고(왼쪽)와 사과문. MLB Korea 인스타그램

[더피알=문용필 기자]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MLB가 8일 인스타그램에 사과문 하나를 올렸다. 

“성차별로 인지될 수 있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객님들께서 지적해 주신 소중한 의견을 귀담아듣고, 불편해하실 수 있는 콘텐츠를 게시 중단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무슨 문제이기에 정색하고 사과했을까.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광고 콘텐츠가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여성의 하루 일상을 시간대별로 나눠 보여주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볼캡 광고인데, ‘쌩얼은 좀 그렇잖아? 모자는 더 깊게, 하루는 더 길게’라는 카피가 도마 위에 올랐다. 다른 게시물에는 ‘쌩얼 사수!’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볼캡을 깊게 눌러쓰면 화장기 없는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비판이 제기됐다. 여성은 꼭 화장을 해야 외출할 수 있느냐며 성차별로 규정한 것이다. 광고 이미지를 문제 삼는 의견도 있었다.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삿거리를 발굴하는 언론들이 놓칠 리 없었다. 여러 매체에서 관련 기사들이 이어졌다.

특정 브랜드의 마케팅 실수와 네티즌들의 지적, 이를 비판적 논조로 써 내려간 언론, 그리고 해당 브랜드의 사과문까지. 어쩌면 부정적 이슈의 전형화된 프로세스지만 이번 케이스의 경우엔 오버스럽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슈 자체의 경중에 비해 언론의 과잉보도가 논란을 키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비난 폭주’ ‘항의 봇물’ 등 비판 보도의 전형적 표현들이 제목에 포함됐다. 언론 보도만 보면 마치 해당 브랜드가 석고대죄해야 하는 상황으로 느껴진다.

물론 누가 봐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나 윤리적 결함이 있었다면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애경 트리오 50주년 광고에서 ‘50년간 설거지 하는 엄마’를 등장시켰다거나, 뉴욕증시까지 영향을 미쳤던 폭스바겐의 ‘만우절 장난’처럼 말이다.

하지만 MLB가 언론의 융단폭격을 맞을 만큼 큰 잘못을 한 것일까. 불편함을 느끼거나 기분이 상한 소비자도 있을 테지만 이를 보편적 정서라고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해당 광고에 동감하는 의견이 보편적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광고 이미지의 경우 다른 업종이라면 논란의 소지가 엿보이지만 MLB는 패션 브랜드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번 논란에 대한 언론의 보도 형태는 대부분 단편적 상황 중계일 뿐이다. 사과문을 제외한 해당 브랜드의 입장, 혹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룬 언론은 소수였고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 논란의 전개만을 보여주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공격적인 제목까지 곁들여지면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침소봉대될 수 밖에 없다. 네티즌 댓글이 마치 전체 여론인 것처럼 이를 보도하기에 급급했다. 

물론 MLB도 잘못이 있다. 젠더감수성이 사회적 화두가 된 상황에서 마케팅 부서는 물론 최종의사결정권자의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다. 의도치 않더라도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충분히 부정적 이슈로 비화될 수 있는 만큼 아주 작은 불씨를 최후의 기준으로 삼아 광고를 집행했어야 했다. 

안 그래도 젠더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됐거나 실패를 경험한 선행 사례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얼마든지 있다. 기업이나 브랜드도 사회적 의제, 특히 특정 집단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아젠다에 대한 지속적인 트래킹과 깐깐한 필터링이 필요하다.

다소의 노이즈를 감수하고라도 과감한 아이디어를 통해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도 전략에 기반해야 한다. 예상한 반응과 그렇지 못한 반응은 결과가 같더라도 결코 동일하게 평가받을 수 없다. 논란을 사랑하는 미디어의 속성을 염두에 두고 브랜드 스스로 먼저 ‘불편러’가 돼야 돈 쓰고 욕 먹는 불편한 상황에 던져지지 않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