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치킨 게임’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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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1.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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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초유 방송중단 사태로 재송신 분쟁 ‘파국’

▲ 최훈길 미디어오늘 경제·뉴미디어팀 기자
사상 초유의 방송중단 사태가 발생됐다. 1월 16일 오후 3시부터 씨앤앰은 광고를 중단했고, 나머지 MSO(복수유선방송사업자·티브로드, CJ헬로비전, 현대 HCN, CMB)는 KBS 2TV의 재송신을 전면 중단했다.

전국적으로 케이블 가입자 약 1500만 명이 피해를 당했다. 중단됐던 KBS 2TV는 17일 오후 7시부터 정상화됐다. 지상파 3사와 CJ헬로비전의 협상 타결로 28시간 만에 ‘검정 화면’이 사라지게 됐다.

양측의 협상 타결로 일단 재송신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태는 방송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표방하는 지상파와 유료 방송사업자 간에 처음으로 재송신 대가 산정이 이뤄졌다. 이번 협상 결과가 잇따른 유료 방송사와의 협상에서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에 파장이 주목된다.

‘브레이크’ 역할은커녕 갈등 부추기는 방통위

문제는 이번 협상이 여전히 ‘불씨’를 남겼다는 점이다. 올해 12월까지 계약을 맺게 돼 연말 재계약 시점에서 대가 산정을 두고 다시 분쟁이 불거질 수 있다. 방통위가 재송신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고 국회에서 방송법을 개정하는 일도 ‘가시밭길’이다. 위성방송, IPTV쪽도 재송신 계약에서 지상파쪽과 ‘신경전’을 벌일 전망이다.


더욱이 우려가 큰 것은 방통위의 부실한 중재 능력 때문이다. 방통위가 이 같은 ‘파국’을 미리 막을 수 없었는지 고민해볼 대목이다. 수년 간 양측의 협상 과정은 방송사업자 입장에서는 첨예한 다툼일 수밖에 없었다. 협상 결과에 따라 1년에 수백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애초 지상파는 재송신 대가로 280원(매달 가입자 대상, 지상파 3사 총 840원), 케이블측은 100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케이블 가입자를 1500만 명으로 계산하면 지상파측은 1512억 원을, 케이블측은 540억 원을 주장해 양측이 적어도 매년 972억 원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또 수년간의 협상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재송신 분쟁은 지난 2007년 MBC와 CJ헬로비전 등 케이블 3사가 저작권료를 두고 협상을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송사가 제기됐다. 방송사업자 간 ‘힘겨루기’의 역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공방전이 치열했다.

그렇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양측의 극적인 협상 타결은 힘들고, 애초부터 방통위의 중재에 관심이 쏠렸다. 지상파는 콘텐츠 저작권의 문제로서 케이블쪽이 판결 결과에 따르면 될 일이라고 주장하며 방통위의 중재에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나 디지털 방송의 재송신을 곧바로 중단하지 않은 CJ헬로비전은 하루 1억 5000만 원씩 지상파 3사에 지불해야 했고 협상 타결 당시 간접강제금이 약 100억 원에 달했다. 결국 ‘코너’에 몰린 SO가 선택한 것은 극단적인 시청 중단이었다. 방통위가 제대로 중재를 했다면 시청권이 훼손되는 ‘파국’이 일어났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중재의 핵심은 제도 개선안이었다. 제도개선안의 골자는 지상파를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고 하지만 KBS, EBS만 의무 재송신이 되는 상황에서 MBC, SBS까지 이 무료 서비스에 포함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작년 말까지 지상파 재송신 제도 개선안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더욱이 ‘방송사업자 간 치킨 게임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말처럼 방통위는 ‘브레이크’ 역할은커녕 갈등을 부추기는 일을 해왔다.

초유의 사태 빚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 정국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12월 5일 방통위가 지상파 채널을 변경할 때 지상파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한 절차를 폐지해 SO 임의대로 채널 변경을 하게 해 준 것이다. 당시 방통위는 “행정 합리화”라고 포장을 했지만, 지난 12월 종합편성채널의 채널 편성 과정에서 SO와 지상파 간의 ‘힘겨루기’는 더욱 불거지는 양상이다.

씨앤앰 계열 SO인 용산케이블TV는 지난달 KTV와 국회방송, 채널CGV, 스크린을 뒷번호로 밀어내고 채널 7번부터 10번까지를 4개 종편에 배정했다. 또 SO들은 12월 16일 지상파 재송신 협상에서 ‘강성’ 입장을 보인 SBS 채널 번호를 시청 접근성이 낮은 뒷 번호로 변경하는 시설변경 허가 신청서를 방통위에 제출하는 등 채널 변경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1월 10일에는 종편으로 인해 밀려난 지상파 계열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들이 이에 반발해 SO 아름방송을 검찰에 고소하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1월 3일 최시중 위원장의 측근인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의 비리 의혹이 불거진 뒤 5일로 예정된 전체회의를 연기했다. 그 뒤로 최 위원장은 1주일 넘게 언론에 공개된 외부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러다 최 위원장은 케이블측이 재송신 중단을 예고한 16일 강원도 양구의 군부대를 위문 방문했다. 올해 들어 최 위원장이 나서서 업계의 첨예한 재송신 분쟁을 타결하기 위해 나섰다는 얘기는 업계에서 들을 수 없었다. 뒤늦게 방통위는 20일 전체회의에 제도개선안을 상정했지만, 이날 안건을 처리하지 않았다.

시청권 문제에 대한 방통위의 해결 의지가 과연 있었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가 올해에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방송 정책은 ‘격랑’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초유의 사태를 빚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 정국에 일대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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