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실천을 왜 ‘협의’하나
언론윤리 실천을 왜 ‘협의’하나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6.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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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언론윤리헌장 실천 위한 협의회 발족
윤리실천은 단체가 아닌 일선기자와 언론의 당연한 몫, 실질적 방안은?
지난 1월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윤리헌장 선포식. 뉴시스
지난 1월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윤리헌장 선포식. 뉴시스

[더피알=문용필 기자] ‘실천을 협의한다.’ 중간데스크 입장에서 만약 후배 기자가 이런 표현을 사용한 기사를 내놓았다면 한소리 했을 것이다. 이게 무슨 애매한 말이냐고. 실천을 하면 하는 거고, 협의를 하면 하는 거지 실천을 어떻게 협의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애매한 표현이 담긴 명칭의 언론계 조직 하나가 오늘(16일) 발족식을 가졌다. 이름은 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대표적인 언론 조직·기관뿐만 아니라 민주언론시민연합·언론인권센터 등 유관시민단체들까지 모였다.

협의회는 기자협회와 인터넷신문협회가 제정·선포한 ‘언론윤리헌장’의 숙지와 실천을 도모하기 위해 구성된 단체다. 지난 1월 19일 발표된 언론윤리헌장은 13인의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이 4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9개의 보도윤리 원칙과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겨있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멸칭이 관용구처럼 자리잡은 ‘언론 불신 시대’에 보도윤리를 체계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고 필요한 움직임이다. 기존의 많은 윤리강령이나 보도준칙들이 있지만 달라진 시대상에 맞게 이를 정비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헌장을 숙지하고 실천하기 위해 기라성같은 언론단체들이 모여 협의체까지 만들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실천협의회라는 명칭까지 붙여서. 보도윤리는 언론인이라면, 또 언론사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굳이 협의체를 만들 필요 없이 각 언론사와 기자단체가 실천하고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언론단체들이 이를 잘 감시하면 될 일이다.

물론 기자나 언론사 입장에서 보도윤리를 지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매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트래픽에 따라 광고 수익이 좌지우지되고, 또 포털이 뉴스유통 경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언론계 현실을 생각하면 언론사 입장에서는 당장의 생존이 더 급하다.

하지만 이런 딜레마를 느끼는 것이 어찌 언론뿐일까. 다른 산업분야 역시 지켜야 할 공동선(善)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언론은 더욱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기사에 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사회적 이슈의 발원점이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굳이 윤리실천을 위한 협의회까지 만들었다는 건 그간 보도윤리 실천노력이 부족했음을 언론계 스스로가 자인하는 꼴이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자성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의 공유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건 협의체가 아닌 일선 언론사나 기자 스스로의 몫이고 책임이다.

협의회를 만들었다고 해서 윤리헌장이 잘 실천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앞으로의 활동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윤리실천을 위해 유관단체들이 할 수 있는 ‘액션’은 한정돼있다. 기자협회나 인터넷신문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언론사들도 많다. 학계나 시민단체들이 객관적 입장에서 좋은 의견을 내놓겠지만 기자들과 언론사에 대한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다. 위반시 제재할 강제적 장치도 없다. 

언론사들과 기자들이 윤리헌장을 제대로 실천하길 원한다면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본다. 매체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일선 기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윤리와 헌장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지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필요하다면 언론단체들이나 언론사 대표들이 한 데 모여 강력한 규제방안을 만들 수도 있다. 과거 각 언론사와 언론단체에서 만들어진 숱한 보도윤리준칙이나 헌장들이 왜 유명무실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대형 언론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독자위원회나 옴부즈만 제도를 확대하고 여기서 나온 의견들의 실무적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각 언론사나 기존의 언론단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협의체를 만들어 언론계가 얼마나 보도윤리를 고민하고 있는지 보여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무릇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언론윤리실천은 일선 언론인과 언론사 스스로가 주도권을 잡고 조타를 해야 옳은 방향으로 항해할 수 있다. 협의체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혼내도 당사자들의 각성이 없다면 현실화되기 어렵다. 이왕 중지를 모아 만들어진 협의체인 만큼 좋은 결과를 내길 바라지만 또다른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건 아닌지 마음 한 켠에 우려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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