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재 기자의 제페토 3일 탐험기
40대 아재 기자의 제페토 3일 탐험기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21.07.21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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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꾸미고 사진 찍으며 재미, 현실세계선 느끼기 힘든 여유 찾아
팔로워‧대화 기능있지만 다른 유저와의 교류 아직 낯설어
한껏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기자의 제페토 캐릭터. 화면캡처
한껏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기자의 제페토 캐릭터. 화면 캡처

[더피알=문용필 기자] 아마 기자의 또래, 그러니까 40대 초중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페토(ZEPETO)’를 묻는다면 “그게 뭔데?”라는 답변이 상당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기억력이 썩 괜찮은 이들이라면 나무인형 피노키오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준, 동화 속 마음씨 좋은 목수 할아버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얘기되는 제페토는 네이버가 만든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10대와 20대, 그러니까 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상의 아바타를 창조해 플랫폼 안에서 마음껏 놀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세계다.
 

자, 개념은 알겠다. 하지만 한번 써보려고 하니 이놈의 나이가 걸림돌이다. 왕년에 귀걸이와 찢청으로 무장하고 거리를 활보했던 X세대지만 이제는 누가 봐도 아재 신세. 뭔가 나와 맞지 않는 장소인 것만 같다. 게다가 요즘 Z세대들의 소통방법도 잘 모르는데 괜히 가상 공간에서 서로 불편해질까 싶다.

하지만 궁금하다. 기사로만 접했던 메타버스, 그리고 제페토. 도대체 어떤 매력으로 인기를 끄는 걸까. 짱짱한 후배기자들에게 트렌드 감각에서 뒤쳐져선 안된다는 명분 하에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제페토에 입성했다.

‘응답하신 생년월일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가입절차 첫 화면부터 등장하는 건 다름 아닌 생년월일 입력. ‘아이 씨’라는 혼잣말과 네이버를 향한 원망이 밀려온다. 사실대로 입력해야 할까. 망설이는 순간 눈에 띄는 안내문 하나. ‘응답하신 생년월일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아아, 용기가 샘솟는다.

제페토 가입의 첫 단계는 생년월일 입력이었다.
제페토 가입의 첫 단계는 생년월일 입력이었다. 화면 캡처

다음단계는 캐릭터 선택이다. 고민이 많아진다. ‘범생이’ 느낌은 싫고 ‘날라리’는 좀 오버다 싶다. 1분 여의 장고 끝에 시크하게 선글라스를 쓰고 ‘아·아’를 손에 든 비니모자 소년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너로 정했다.

가입절차가 끝나자 ‘데일리 보너스’를 받아가라는 팝업이 뜬다.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면서 돈 준다니까 일단 고맙다. 의상 선택을 하러가면서 그제 서야 돈의 용도를 알 것 같다. 7550c. 제페토 월드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 밑천이다.

의상 고르기는 캐릭터 선택보다 훨씬 더 큰 고민을 요구했다. 마음에 들면서도 저렴한 틴트선글라스를 발견했다. 신발은 대학생 때 즐겨 신던 워커스타일로. 여기에 셔츠를 두른 찢청을 매칭하고 머리스타일도 시크하게 바꿨다. 귀걸이도 하나 달고 현실에선 엄두도 못낼 망사 티셔츠까지 올블랙 패션이 완성됐다.

뭔가 뿌듯함이 밀려왔지만 잔고는 확 줄었다. 그래도 메타버스니까 굶어죽진 않겠지. 캐릭터 배경화면도 꾸며봤다. 뭔가 빈티지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무대조명과 커다란 스피커, 그리고 복고풍의 자판기를 매칭시켰다.

캐릭터를 한껏 꾸며봤지만 20대 후배기자의 반응은 '풉'이었다.
캐릭터를 한껏 꾸며봤지만 20대 후배기자의 반응은 '풉'이었다. 화면 캡처

의상과 함께 보니 뭔가 ‘투머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제페토 선배’인 20대 후배기자에게 캐릭터를 보여주니 ‘풉’하는 웃음이 답변 대신 돌아왔다.

하지만 돈을 많이 썼다. 결정적으로 처음부터 또다시 ‘꾸미기’를 시작하자니 귀찮다. 일단 첫날 체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현실 세계에서 할 일도 많고,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

“이런 버릇없는...”

제페토 체험 2일차 목표는 튜토리얼이라고 볼 수 있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자못 비장한 각오로 입장했다. 도서관과 가정집 거실을 합쳐놓은 듯한 공간. 근데 난관이 생겼다. 아무리 터치해도 캐릭터가 움직이질 않았다. 함께 입장한 다른 캐릭터들은 폴짝폴짝 잘만 뛰어다니는데 우리 애는 요지부동이다. 1분 정도를 헤매다 간신히 캐릭터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기자의 손이 투박해서 그런진 몰라도 이후에도 캐릭터를 움직이는데 종종 어려움을 겪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제페토를 즐기자니 침침한 노안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중장년이라면 한번 생각해 볼 대목. 다음부터는 태블릿PC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 

튜토리얼 미션 중 막무가내로 '댑' 포즈를 취해봤다.
튜토리얼 미션 중 막무가내로 '댑' 포즈를 취해봤다. 화면 캡처

미션을 받기위해 양갈래 머리의 NPC(Non Player Character, 비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접근했다. 의외로 간단했다. 점프해서 책장 위 병아리를 찾아달란다. 훗, 이쯤이야.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병아리를 찾기 위해 여러 명의 NPC와 그들이 지시하는 ‘노가다’를 수행해야 했다. 갱년기가 일찍 온 것일까.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밀려온다.

한창 미션을 수행하는데 누군가가 나를 팔로우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미션이 끝난 후 나도 예의상 맞팔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일째 체험이 끝날 때까지 나는 이 캐릭터와 조금의 친분도 쌓지 못했다.

미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사진 찍기’였다. 현실세계와는 180도 다른 내 모습을, 그것도 잘 꾸며진 ‘젊은 공간’에서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후 다른 공간에 입장해서도 주구장창 사진을 찍어댔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제페토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내친김에 TV에서 힙합퍼들이 자주 하던 ‘댑’ 동작으로 사진을 한 컷 찍어 프로필에 업로드했다 아, 이것도 유행이 좀 지난건가?

미션을 마쳤다면 이제는 제대로 제페토 월드를 탐험해 볼 차례. 랜덤으로 입장한 곳은 밤의 해변가. 혼자서 고즈넉하게 산책(을 빙자한 뜀박질)을 해본다. 버기카도 몰아보고, 옷 입은 채로 바다에 몸을 담가보기도 하고, 배치된 악기를 연주해보기도 한다. 근처 대형스크린에 등장한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영상 소리에 밀려 잘 들리진 않았지만.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영상화면 앞에서 악기를 연주해봤다.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영상화면 앞에서 악기를 연주해봤다. 화면 캡처

제페토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던데 아직 누군가에게 말을 걸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무리 가상세계라지만 뭔가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서다. 그런데 악기를 연주하는 내 머리 위로 두명의 캐릭터가 점프를 한다. 현실 목소리로 “이런 버릇없는...”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그렇지. 이런 꼰대근성으로 친구 만들기는 무슨.

“안녕하세요...(침묵)”

이틀째까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였을까. 업무와 집안일, 그리고 만성피로를 핑계로 며칠간 제페토를 찾지 않았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작심 삼일’은 채워야지. 새롭게 의욕을 갖고 앱을 터치해본다.

먼저 제페토를 시작한 후배기자는 제페토에서 가장 재미있는 요소가 ‘게임’이라고 했다. 그래서 몇몇 게임맵에 입장해봤다.

첫 번째는 스키점프였는데 점프 타이밍을 잘 잡지못해 눈바닥에 거꾸러졌다. 현실이었다면 최소 전치 4주는 나올 것 같다.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종목은 어린시절 ‘야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사격게임. 그나마도 처음엔 요령을 몰라 버벅거렸지만 몇 분 되지 않아 누적점수를 채우고 상품을 받았다.

현실세계 공항에선 이러면 안된다.
현실세계 공항에선 이러면 안된다. 화면 캡처

들어갈만한 맵이 없나 찾아보다가 공항을 발견했다. 해외여행이 쉽지않은 지금같은 시국에 그리워지는 장소다. 제페토의 장점은 맵 미리보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냥 맵 이름만 보고 입장해서 실망할 확률을 줄여준다.

공항 입구에 동물인형이 서 있기에 말을 걸어보니 운세를 봐준단다. 공항에서 운세라. 뭔가 뜬금없는 조합이지만 공짜로 봐준다니 마다할 이윤 없다. 하지만 올해 운세가 그리 좋지는 않은 걸 확인하고 쓸쓸히 발걸음을 옮겼다. 비행기도 타봤는데 적어도 비즈니스 클래스는 되는 것 같다. 이런데서 좌석등급이나 따지다니. 속물같으니라고.

추전해주는 장소를 위주로 맵 탐험을 하다가 능동적으로 가볼만한 장소를 찾기로 했다. 올림픽이 얼마 안남아서인지 대한체육회가 만든 ‘팀코리아 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한국을 빛낸 체육영웅들의 사진도 전시돼 있었는데 ‘아재’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옥에 티 하나를 찾아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레슬링 은메달리스트인 장창선 선수의 종목이 ‘프로레슬링’으로 표기돼 있던 것. 봐라, Z세대들이여. 이것이 아재의 관록이다.

이제 어느정도 제페토에 익숙해졌는지 재미요소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찌빌라’를 찾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슬라이드도 탔다.

구찌빌라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구찌빌라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화면 캡처

팍팍한 현실생활에선 느껴보기 힘든 여유가 있었다. 이런 것 때문에 MZ세대가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년들도 충분히 메타버스를 즐길 수 있는 요소다. 단, 너무 빠져들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여전히 다른 유저와의 소통은 어려웠다. 때마침 누군가가 대화를 신청하는 게 아닌가. ‘나이가 들통나면 안돼’라는 강박관념을 안고 대화에 나섰다. 서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만 주고받은 후 적막감이 감도는 분위기.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뭔가 말하려는 찰나, 작별인사를 남기고 상대방은 사라졌다. 지인이 아닌 이상 앞으로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3일 동안 제페토의 이모저모를 살펴봤지만, 그 짧은 시간에 모든 기능과 재미를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생각날 때 종종 들를 것 같다. 다음에는 다른 옷도 한 번 입어봐야지. 방 만들기 기능도 있으니 여기서 지인들과 모임을 갖거나, 회사 동료들과 가상 워크숍 같은 회의를 해도 괜찮겠다 싶다. 어때, 더피알 (기자)친구들. 우리 함께 메타버스 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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