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와 친해지려다 ‘꼰대문화’ 역주행 촌극
MZ와 친해지려다 ‘꼰대문화’ 역주행 촌극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21.08.09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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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지난 4월 와썹맨 콘텐츠 재조명
경직된 조직문화 드러나…앱스토어 리뷰 별점으로 비판 가중
농협상호금융은 지난 4월 와썹맨과 협업 콘텐츠를 진행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영상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농협상호금융은 지난 4월 와썹맨과 협업 콘텐츠를 진행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영상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더피알=조성미 기자] 와썹맨이 지난 4월 공개한 ‘농협상호금융’과의 협업 영상이 주말 사이 역주행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에서의 역주행은 빛을 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버린 콘텐츠를 재조명하는 긍정적인 의미지만, 이번 사례는 좀 다르다.

해당 콘텐츠는 와썹맨이 워크맨 콘셉트를 차용해 농협상호금융의 신입사원이 되는 내용이다. 방송인 박준형이 상호금융 디지털 채널부에서 일하며, 농협상호금융의 스마트뱅크 ‘콕뱅크’의 (이용자) 천만 달성을 위한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과정에서 박준형은 ‘콕’이라는 서비스명과 로고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지만, 상사로부터 “해결방안도 다 제시할 거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다. 이에 굴하지 않고 본인의 아이디어를 설명하자, “퇴근하기 전에 하나 만들어 갖고 오세요”란 지시를 받는다.

회사생활의 리얼리티를 살렸거나, 재미를 위한 드라마틱한 설정이겠지만 이 장면을 통해 오래된 조직의 ‘꼰대문화’를 확인했다는 반응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의견을 제시하면 바로 불편한 기색을 나타내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일이 주어지는 ‘회사생활의 나쁜예’가 고스란히 담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상 콘텐츠가 공개된 당시에도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선 ‘순화하고 편집해서 저정도’ ‘예능을 가장한 내부고발’ ‘안좋은 점만 부각해서 홍보영상을 찍으면 어떡해…’라는 반응이 올라오기도 했다.

디지털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콘텐츠가 TV를 떠난 MZ 시청층에 소구되고, MZ 소비자를 잡으려는 기업(광고주)의 필요에 따라 협업해 브랜디드 콘텐츠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광고적 느낌을 최소화하고 리얼리티를 보여주기 위해 브랜드보다는 예능 콘셉트에 무게가 실린다. 이 때문에 때로 회사가 감추고픈 민낯이 드러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노이즈 상황에 휘말리기도 한다.

농협상호금융 편의 경우 하고픈 말을 참지 못한 것이 독이 된 케이스다. 박준형이 새 로고 디자인 작업을 하던 중 팀장님이 디자인에 반영할 사항들을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50만원까지 수수료 없음’ ‘계좌번호를 몰라도 휴대폰 번호로 송금 가능’ 등을 로고디자인에 반영해달라는 요청이다. 이에 박준형은 수많은 혜택을 나열하는 것보다 앱에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심플한 디자인을 강조하며 대립한다.

그런데 디자인에 다 남아낼 수 없었던 이 문구들이 앱스토어 사용자 리뷰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하루 500만원까지 이체가 가능한 점이 너무 편리해요’ ‘이벤트도 많고 포인트도 아주 유용해요’ ‘자동이체.수수료도 안들고 아주아주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등 홍보문구를 옮겨 놓은 듯한 리뷰와 함께 별 다섯 개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구글플레이 내 NH콕뱅크 리뷰. 별 한 개와 별 다섯 개의 온도차가 극명하다.
구글플레이 내 NH콕뱅크 리뷰. 별 한 개와 별 다섯 개의 온도차가 극명하다.

워크맨 콘텐츠의 역주행도 이 리뷰 때문이다. 농협상호금융은 지난 2일 NH콕뱅크 가입자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리뷰 파도타고 쿨하게 콕 응원하자!’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용자의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지만, 경품을 받으려는 이용자들의 5점 만점 평가가 줄을 잇는다. 이 때문에 와썹맨 영상과 오버랩되며 네티즌들 사이에선 경직된 조직문화를 희석시키려는 ‘별점조작’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게 앞서 와썹맨 영상에서 박준형은 작업을 완료하고 대표이사 프리젠테이션까지 진행했다. 영상 속 대표이사는 활용 방안을 고민해보겠다는 피드백을 남겼지만, 현재 앱스토어의 아이콘은 이전과 동일한 디자인이다. 로고 교체는 어렵더라도 와썹맨 아이디어를 이벤트성으로라도 반영하는 모습을 기대한 시청자 반응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결국 앱스토어 별 한 개 평가와 함께 ‘답정너’ 같은 조직문화를 지적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와썹맨 콘텐츠 댓글창도 비슷한 상황이다. 경직된 조직문화 안에서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혹평까지 오간다. 이미지 쇄신과 화제성을 높이기 위해 앞광고를 하고 오히려 회사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는 마케터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비단 농협뿐만 아니라 요즘은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기업에서 예능 콘텐츠를 통해 자사의 조직문화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하지만 과정에서 조직 내부에선 이상할 게 없는 일도, 제 3자 시선에선 불편하게 여겨지는 지점이 종종 포착되기도 한다.

문제는 다음이다. 이를 일부 ‘불편러’들의 트집으로 치부하는 것을 경계하고 필요시 조직문화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적절히 반영하는 ‘쓴소리’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상에서 브랜디드 콘텐츠를 선보이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 안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지금이라도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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