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를 위한 이상적 시스템은…”
“‘E’를 위한 이상적 시스템은…”
  • 정수환 기자 (meerkat@the-pr.co.kr)
  • 승인 2021.09.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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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上] 김병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더피알=정수환 기자] 최근 재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를 꼽으라면 아마 ‘ESG’가 아닐까 싶다. 그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분야는 단연 E, 환경이다.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다양한 기업의 친환경 캠페인이나 마케팅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ESG는 처음이라 헤매는 기업들이 많은 상황.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서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참고하면 좋을 한 권의 책이 발간됐다. E 안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인 플라스틱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책을 펴낸 김병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병규는... 소비자의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경영학자이며, 마케팅, 심리학, 뇌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경영학 석사를 마쳤고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경영대학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USC마셜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 한나라 기자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를 출간하셨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집필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앞으로 살게 될 세상을 생각하니 환경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관련 솔루션을 찾아보게 됐는데 기업, 정부, 환경단체 등이 제시하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런 아이디어들이 오랜 기간 실제로 작동하는 건 또 별개 문제더라고요.

소비자 의사결정에 대해 계속 연구하는 사람이다 보니 많은 부분을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데요. 가령 요즘 유행하는 ‘리필스테이션’. 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려면 소비자가 계획을 해야 하고, 제품마다 용기를 따로 다 준비해야 하는 등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좋은 아이디어지만 실제로 작동하기 어려운 솔루션들을 보며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련기사: 다시 쓰고 되돌리고…필환경 위한 실환경 행보

다음으로 환경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 기업을 탓하는 이야기가 많아요. 물론 기업이 환경 문제에 1차적으로 책임이 있는 건 맞지만요. 기업을 (문제 해결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잘못이 있다고 몰아세우기보다는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라고 봤습니다.

환경 문제는 광범위한데요. 플라스틱이라는 한 파트에 집중한 이유가 있을까요.

소비자들이 다른 환경 문제에는 감정적인 가치를 잘 느끼지 못해요. 오존층이 파괴되고 물 부족이 심각해도 보통 본인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해 감정적 동요가 덜해요. 또 다른 환경 문제의 경우 우리가 일시적으로만 경험해요.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이나 홍수 등은 1년 중 아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잖아요. 하지만 플라스틱과 관련해선 끊임없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겪어요. 그래서 다양한 환경 문제 중 플라스틱이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크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중 E에서 가장 관심 갖는 게 플라스틱이란 결과도 나왔고요.
 

그렇다면 기업은 플라스틱 이슈에서 어떤 전략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일단 소비재 기업에 한정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저는 환경 문제에서 소비자 책임을 부각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특히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분리배출 등의 참여율이 굉장히 높거든요. 이 정도면 충분히, 열심히 환경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죠. 지금보다 더 잘하라고 요구하는 건 현실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이제는 소비자들이 별다른 노력을 안 해도 자신이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도록 하되, 그 자체가 환경보호에 도움되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예쁜 가방을 샀는데 이 행위 자체가 환경보호에 기여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소비재 기업은 원래대로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좋은 상품, 상품성 있고 잘 팔리는 제품을 내놓되 그것을 통해 자원을 계속 순환시켜야 합니다. 버려지는 제품을 최대한 스스로 수거해 재활용하는 겁니다. 또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 부산물도 소각되거나 폐기될 확률이 높기에 역시 수거하고, 여력이 되면 본인들이 생산하지 않은 폐기물도 수거해 재활용 과정을 진행하고, 이를 다시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죠.

즉 기업은 그저 계속 본인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는 자신이 사고 싶은 제품을 사고. 그렇게 생산과 소비 활동 자체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과정 속에서 자원을 계속 순환시키는 겁니다. 소비자들도 굳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기업도 이익을 포기할 필요 없이 자원으로 순환되는 것, 제가 구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입니다.

이케아, 파타코니아, 메소드, 아일린 피셔 등 많은 사례가 해외 위주에요. 119레오, 플리츠마마 등 책에서 언급된 우리나라 브랜드의 경우 신생 브랜드고요. 국내와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길래 해외에서 좀 더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걸까요.

기업의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은 결국 시장의 니즈에 맞춰서 변화합니다. 미국같은 경우 이미 1970년대부터 사람들이 기업의 환경 파괴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린워싱(Greenwashing)이란 단어도 8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요. 이를 비난한 역사가 벌써 40년이나 된 것이죠.

한국은 관련 용어가 최근 들어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기업이 그냥 마케팅적으로 ‘그린’한 이미지를 만들어도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고요. 한국 기업들은 이런 자원순환 시스템을 만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됐던 거죠. 물론 최근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 역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가 아로마티카입니다. 재활용 병, 유리 등을 사용해 화장품 용기를 만들고 내용물 역시 친환경인데요. 이 브랜드의 인지도가 굉장히 빠르게 상승하고 있고 매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로마티카를 필두로 앞으로 관련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 예상합니다.

최근 눈여겨보시는 흐름이나 사례가 있을까요.

사실 일반 소비재 기업이 자원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어렵습니다. 수거, 재활용 등 여러 단계가 있는데, 단계마다 영세한 개별 사업자들이 존재하죠. 또 현재 재활용 원료의 단가가 소비재 기업이 사용하기에 부담되기도 합니다. 새 플라스틱에 비해 재활용 플라스틱이 1.5배 이상 비싸거든요. 이렇듯 하나의 개별 브랜드가 자원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많은 부담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소비재 기업에 자원순환 시스템을 공급하는 B2B(기업 대 기업 간 거래)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어요. 특히 SK종합화학, 롯데케미칼과 같은 국내 기업들이 자원순환 시스템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보고 최근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자원순환 시장 자체가 성장하면 재활용 원료에 대한 공급 단가도 낮아지고, 더 많은 브랜드가 쉽게 자원순환을 접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전보다 쉽게 환경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재활용에도 브랜딩이 필요합니다”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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